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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 jour de huit Nov 18. 2020

Paris에 봉쇄령이 내려지고,

날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휙- 지나갑니다.

올해 초만 해도 한국에 있는 연일 들려오는 중국발 바이러스 소식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잠들기 전에 한참이나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한 해가 마무리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씩씩한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있고 이제는 상황이 한참 역전되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보는 뉴스에 자꾸만 프랑스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너른 광장에 꼿꼿이 선 에펠탑 처럼 고상해보이기만 하던 프랑스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입자의 움직임에 하루에만 확진자가 몇 만명이 훌쩍 넘고, 사망자가 한국의 확진자수보다 훨씬 높으며, 어느 때는 밤 9시 이후에 못 돌아다니게 통금령이 내려졌다고 하고, 또 어느 순간 모두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봉쇄령도 내려졌다고 하니 겪어보지 않은 어마어마한 일은 뉴스로 듣는 부모님의 마음은 몇 번이고 쿵- 내려앉으셨을겁니다. 정작 그 상황속의 나는 한국의 상황이 좋아져 안심하고 나니, 이 곳 프랑스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뉴스 따위야 뭐 '내가 조심하면 되지' 싶어 그닥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가족이 그렇구나 싶습니다. 나 아닌 당신이 더 걱정스러운 사이.


너무 큰 일은 잘 실감이 나지 않고, 너무 큰 숫자도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요. 하루 확진자가 1만 명을 넘어섰다고 할 때는 '만 명이라니!' 하며 움찔하고 걱정되다가도 그 수가 6만을 넘기는 날이 생기고보니, 대체 매일 그만큼씩 확진자가 생긴다는건 얼만큼의 일인건지 가늠이 안되어 두려움도 주춤합니다, 뭐 얼만큼 두려워야 하는건지 말이죠.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활동에 유의하라'는 말에 주머니 속 마스크를 챙기는 일은 일상적인데, 어느 순간 갑자기 모두 셔터를 내려버린 가게들로 휑한 거리를 혼자 지나며 전국의 거리가 이런 모양일 '봉쇄령'을 마주하는 일은, 몸소 겪고 있으면서도 실감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무튼, 이런 상황 속에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시간표가 주어졌고, 정해진 몇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업무를 집에서 처리합니다. 우선은 달리 서재가 없던 우리 집에 사무공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우선 급한대로 부부의 TV방이자, 남편의 게임방으로 사용되던 작은 방을 사무공간으로 골랐습니다. 테라스에 두고 사용하던 야외용 테이블을 들여와 테이블보를 휘이- 두르고 노트북과 스탠드를 올려놓으니 꽤 그럴싸합니다. 무엇보다 커다란 통창을 마주하고 있어 뷰 만큼은 사무실 보다 좋습니다. 살짝 느슨한 책상다리 나사 때문에 키보드를 치다가 팔에 힘을 주면 책상이 조금 흔들리는 단점이 있지만, 나름 괜찮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서로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니, '내가 여기서 딴짓 안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나름 전달하기 위해 평소에 안하던 노력을 하게됩니다. 오늘의 예정 업무를 메일로 남긴다던지, 일을 하는 중간중간 굳이 상사에게 평소같았음 그냥 넘어갔을 세부 사항을 전화로 컨펌받고 보고하며 일을 처리한다던지, 퇴근시간을 조금 넘긴 시점에 보고서를 메일로 보내어 '집이라고 함부러 일찍 퇴근하지 않고, 무려 이 시간까지 일했음'을 생색내보기도 합니다. 곧 연말이고 인사평가철인데 아무래도 재택근무로 꽤 긴 시간을 보내야하니 '나의 성실한 근로'를 어떻게든 어필해보려는 내 얕은 수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재택으로 가능함에 놀랐습니다. 기를 쓰고 아침일찍 통근열차에 시간맞춰 올라타지 않아도, 출근부터 퇴근시간까지 꼬박 내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유연하게 하루의 할당된 업무를 해내는 데에 무리가 없음을 새삼 느낍니다. 아무래도 얼굴을 봐야 편한 일들도 있는데, 대면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 둘 찾아내게 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에 있어도, 이 시간을 지켜 일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업무에 문제가 없겠군. 내가 한국에 있어도 말야'. 봉쇄령이 또 몇 달씩 길어진다면, 정말 한국에 가볼까요.


재택근무로 인한 변화 중에 가장 좋은 점이자 조금 귀찮은 점은 '점심시간' 입니다. 집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간단한 재료로 좀 더 건강하고 저렴하게, 든든히 한 끼를 금방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샌드위치 가게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지 않아도 괜찮고 뭘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도 훨씬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혼자 먹는 식사가 아닌 남편을 함께 챙겨줘야하는 끼니인지라 아주 나 편한대로만 간단히 할 수 없어 조금 귀찮은 날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동하거나 줄을 설 필요가 없으니 점심식사가 빠르고 홀가분하게 끝납니다. 식사 다음은 '산책' 입니다. 프랑스의 봉쇄령 기간 중에는 하루에 한 시간, 자택 반경 1km 이내의 거리에서 산책이나 운동이 가능합니다. 봉쇄령으로 외출에 많은 제한이 생기자 실내에만 있기 답답했던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이 하루 한 시간의 운동 및 산책 시간을 꼭 지킵니다. 걷기를 좋아하지 않던 우리 신랑조차 하루 한 번의 산책을 즐거워하고, 운동과 거리가 멀던 사람들이 일부러 조깅을 시작했을 정도니까요.

다시 오후 근무시간이 시작되고, 집중해서 몇 가지의 일을 끝내고 나면 꼭 스스로 '나 이제 퇴근!' 이라고 외칩니다. 공간의 이동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으니 의식적으로라도 퇴근을 명명하고 일과 여가시간을 구분해줘야 겠다 생각합니다. 의식적으로 노트북을 닫고, 거실로 걸어나와 기지개를 켭니다.


저녁 식탁을 두고 마주앉아, 코로나19와 봉쇄령때문에 깨닫게 된 필수적인 것과 비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신랑과 이야기 합니다. 프랑스는 필수적인 시설 및 업체를 제외하고 모두 폐쇄된 상태인데 그 필수적인 업체에 '신문 가판대', '와인가게', '빵집' 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봄에 한 차례 있었던 봉쇄령과는 달리 이번 겨울철 봉쇄령에는 '학교'도 필수로 문을 열었고, '자동차 수리점', '가정용품점(우리나라의 '철물점' 처럼 공사, 수리용 물품을 파는 곳)'도 필수업체로 문을 열었습니다. 반면에 신랑과 나는 '미용실'도 꼭 문을 열어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정기간동안 전국의 모두가 애매한 헤어스타일을 어쩌지 못하고 일관되게 지저분한 머리로 방치하는 것은 정말 별로입니다. 집에 있어도 결코 너저분한 추리닝 차림으로 있지 않는 프랑스 인들이 미용실을 비필수업체로 구분한 것도 신기한 일이다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슈퍼마켓이나 식료품 점에서도 와인과 빵을 파는데, 굳이 와인 전문점과 빵집을 별도로 문을 열게 한 것은 식사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머리는 더벅머리일지언정, 와인은 마음에 드는 빈티지로 골라다가 맛있게 먹어야만 한다는 의지인걸까요.


생활에 있어서도 필수와 비필수가 자연스레 구분지어집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잠시 미룰 수 있는 비필수적인 일이지만, 하루 종일 집 안에 붙어있어야 하는 신랑과의 케미는 필수 중의 필수입니다. 조금 더 이야기 나누고, 적당히 조율하며, 적극적으로 배려해봅니다. 재택근무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집에 갇히는 상황이 되면 컴퓨터(노트북)와 전화기(휴대폰)은 완전 필수입니다. 온라인으로 생필품을 배송 시키거나 온라인 결제를 하는 일이 잦아지니 인터넷 뱅킹과 이체 시스템도 우리 부부에겐 필수이고, 밖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햇빛과 바람을 양껏 누릴 수 있는 테라스와 통창도 중요합니다.

그간 주변과 맺은 여러 관계들에 지쳐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소노 아야코 작가의 책을 여러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말 물리적인 거리를 두고 자연스레 소원한 관계들을 걸러낼 계기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는데, '거리'를 두고 나니 수월한 것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인지 차라리 나에겐 이 시간이 조금의 여유가 되기도 하는데, 창 밖으로 거리가 조용한 걸 지켜보자니 굳게 내려진 셔터 뒤로 쌓여가는 한숨소리도 들리는 듯 합니다. 문을 닫아야만 했던 작은 한숨들의 무더기 위에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봅니다.


늘 북적이던 프랑스 파리에서 봉쇄령을 맞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개성을 뽐내던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모습은 적막함을 넘어 조금 슬프고, 피곤스럽게만 느껴지던 관광객의 북적임이 사라진 도시는 외로워보이기도 합니다. 늘 회색빛이던 센 강 마저도 푸른 빛을 되찾는 한적한 시기인데, '푸르다-' 하고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날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휙 지나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고 좋아지는 것들도 많은데, 코로나에 만큼은 지나는 날들이 게으른 느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다 휘릭 지나갑니다.  


백 명이 넘는 확진자가 몇 일째 계속된다는 이유로 한국도 지자체별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를 조절해가며 조심하는 중이라는 뉴스를 봤습니다. 이 곳의 6만 명 보다 한국의 100명이 더 걱정스러운 것은, 그 곳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일겁니다. 이 글을 한국에서 읽는 모든 분들도, 혹은 프랑스보다 상황이 안좋은 어느 나라에 계신 분들도 모두 무사하고 안전하시기를. 모두의 무사와 안녕을 비는 이 마음이 조금의 효험이라도 있기를.


From.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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