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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 jour de huit Oct 28. 2020

중간쯤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도 나쁘지 않구요.

누가 나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나는 중간에 사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할겁니다. 내게 '그래서 중간에 사는 삶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다시 한 번 '중간입니다. 좋고 싫음의 중간이요.' 하고 대답할겁니다.


원래부터 이렇게 중간즈음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중간'이라니, 어째 좀 어정쩡하고 미지근한 느낌입니다. 열심히 고민하지 않은 사람의 대답같은 느낌이고,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 쉽게 휩쓸리는 사람의 흔한 말 같습니다. 잔머리를 굴려 어느 편이 유리할지 재어보다가 결국은 슬그머니 중간에 서서 눈치를 보며 살궁리를 하는 사람의 변명같기도 하고, 용기 없는 사람의 얕은 소신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26도의 미지근한 온도도 차거나 뜨겁다고 나눌 수 없지만 엄연히 26도라는 이름과 위치를 가지고 있고, 100m 달리기의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50m 지점도 시작이다 끝이다 나눌 수는 없지만 엄연히 한 지점입니다. 한 때 나의 '중간'이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만 같아 답답하기도 했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각도를 조금 비틀어 보았을 뿐인데 그 '중간'도 나름의 이름과 위치, 역할을 갖게 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중간에 사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신다면...


한국에서 자란 토종 서울러로 스물다섯해를 살다가,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파리지엔 직장인으로 살아온지 아홉해입니다. 한국에 휴가를 갈 때면 '드디어 집에간다!' 하고 설레었다가 막상 도착한 한국의 낯선 모습들에 적잖이 당황하고 집에 온 것인지, 다른 도시에 여행을 온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어정쩡한 며칠을 보내고 파리에 다시 돌아오면 그제야 '드디어 우리집이다!' 하고 안도하는 아이러니. 내 집을 떠나 내 집으로 되돌아오는, 여행하듯 살고 삶을 살듯 여행하는 것 같은 그런 '중간' 입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10년차 입니다. 1~2년차 새내기도 아닌 것이 2~30년 근무한 선배들 앞에선 명함도 못내미는 주니어, 한 직장에서의 10년이 꽤 대단한 경력같았는데 막상 우리 회사에서의 10년차는 흔해빠진 '중간' 입니다. Latte is horse 를 밥먹듯 말하는 선배들과 꼬박꼬박 말대꾸(그들은 '대답'이라 하지만)를 하는 90년대생 새내기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궂은일, 펑크난 일은 다 해야하는 '중간'입니다. 노련하게 위기를 넘어서고, 뻔뻔하게 배짱을 부리는 선배들을 존경의 눈으로 입 벌리고 바라봐야만 하고, 실수라고 귀엽게 포장되는 일이라곤 없어 아무래도 업무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가장 많은 '중간' 입니다.


늘 선례를 앞세워 따라가는 가장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회사에서 일하면서, 마음만은 자유와 창작, 창의적인 생산과 최초의 시도를 갈망합니다. 그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워낙 성격이 그렇습니다. 고3때도 책상을 박차고 나갈 용기는 없으면서, 수능공부보다 열심히 에세이, 여행서들을 탐독하며 한 평의 세상 속에서 세계를 맛보는 일탈을 하던 나의 감성은 회사원이 되어서도 여전합니다. 그래서 일을 맡아 하다가 중간중간 나의 감성을 녹여보는 허튼 시도도 자주 합니다.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입니다.


그리고 나는 파리생활 6년차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2년의 연애끝에 결혼했고, 내 남편의 직업은 성악가입니다. 한국에서였다면 공공기관의 월급쟁이인 나와 성악을 전공해 오페라 공연을 하곤하는 신랑, 우리의 심적/물리적 거리가 꽤나 멀었겠지만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예술가를 만나는 일은 서울시내에서 걷다가 떡볶이 트럭을 만나는 것 만큼이나 일상적이고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내가 하는 살림은 정규적인 회사원의 삶과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둘 다 녹여내야하는 '중간' 입니다. 회사원의 규칙성과 예술가의 불규칙성이 부딪히기도 하고 타협하기도 하는 그 중간입니다. 지출은 언제나 규칙적이고 정기적인데, 수입이 그렇지 않아 매일, 매달의 가계부 쓰기가 새로운 창작이 되곤하는 '중간'입니다.


무엇보다, 나는 쿨한 사람도 아니지만 열정적인 사람도 아니고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닐테지만 그렇다고 사회생활 가운데 아주 존재감이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게 성격 좋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하면서, 내 속이나 편하자고 못되게 굴지도 못하는 사람, 그래서 중간쯤 되는 사람 말입니다.


남들은 어느쪽이든 분명한 곳에 머물러 있는데, 나만 가운데 둥둥 떠서 부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외롭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나 처럼 '중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중간' 이라는 말이 주는 불안함 때문에 그때 그때 편리한 어느 한 편을 선택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모두가 어느 중간쯤에서 오늘도 밥먹듯 고민하며 밀고, 당기고, 갈등하고, 화해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이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가, 또 내일은 반대쪽으로 조금 더 기울고 하며 이 두터운 '중간' 지점에 우리 모두가 모여있음을 느낍니다.


내 삶이 꼭 뚜렷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마음이니까요. 그래서 오늘 나는 나의 '중간' 됨을 긍정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 즈음에서 내 생활이 아우를 수 있는 이들과 함께 나눌만한 이야기들을 생각해봅니다. 이제 브런치를 시작했고, 글감을 조금 더 열심히 끌어모아야 할테니까요.


세 번째 글이 되는 시점에는, 이렇게 나의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한 발짝 더 다가가보고 싶었습니다.


P.S. 꾸준함에 있어서도 '중간' 즈음 하는 내가 브런치 글쓰기에 있어서 만큼은 '꾸준한' 축에 들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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