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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사람 Nov 02. 2023

나이 들어 결혼하면 좋은 점

서른네살 동갑 부부가 결혼을 했다.

'결혼할 사람은 한 눈에 알아본다'는 말을 듣고 과연 그럴까? 했었다.

보자마자 전류가 통하고 후광이 비치는 그런 느낌일까 했는데 나의 경우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지금의 남편을 처음 소개받고 나서 '이 사람이랑 사귀면 결혼까지 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류가 통한다기보다 책임감과 가치관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으로 말미암는 확신이랄까. 사실.. 나이들도 있고 하니 ㅋㅋ 34살이 된지 10일 만에 처음 소개팅을 받은 우리는, 34살의 10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들고 결혼하면 좋은 점


1. 시간낭비 하지 않고 결혼 할 사람이면 바로 결혼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사계절은 다 겪어봐야 그 사람을 안다고, 너무 급하게 하지 말라는 조언들도 많지만.. 오래 살면서 경험해보니 몇 년을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르는 거더라. 결국 오래 겪는다고 그 사람을 더 알고, 덜 겪는다고 그 사람을 덜 아는 건 아니라는 결론. 

나이가 찼는데 간 본다고 몇 년 천 년 연애만 하자고 하는 사람보다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기간을 오히려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과는 깊은 대화가 통하는 좋은 데이트 메이트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2. 예물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어느정도 맞추는 게 가능하다.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드레스가 화려해야 하는 것도 전혀 없었다. 다만 반지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포즈 할 때도 반지는 절대 사 오지 말라고 했었다. 같이 보러 가자고.

나이 먹어서 결혼하면 좋은 점 중 아주 큰 장점은 예산에 치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랄까?

그래도 둘 다 직장생활한지 좀 됐으니까 모아둔 돈이 있으니 내가 갖고 싶은 반지를 고르는 것이 좀 덜 미안하게 된다. 


다이아 반지로 7.1부 트리플 E에 GIA 감정서를 보유한 꽤나 비싼 것으로 골랐다. 사실 예산에 치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아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건 아니긴 하다. 사실 좀 덜 반짝여도 1캐럿으로 사고싶은 마음이 컸는데 이 나라는 예물샵에 샘플이 종류별로 없다... 그냥 알아서 느껴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껴 본 것 중에는 제일 예뻤던 7.1부로 선택했다. 


3. 부모님 도움을 덜 받고도 결혼식 다운 결혼식을 할 수 있다.

원래도 사회생활 한 후로는 부모님 도움은 받지 않고 싶었는데 특히나 결혼도 그랬다. 예물, 예단, 꾸밈비 등 서로 주고 받는거 없기로 하자. 우리도 안 받고 우리 하고싶은 결혼식으로 하자! 

다행히 부모님들이 너희들 하고싶은대로 해라 하시는 부모님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다. 일부 부모님들은 도움을 주지 않으셔도 참견을 많이 하시는 경우가 있다고 들어서 그렇게 되면 어쩌나 싶기도 했는데 참견을 하지 않으셨고, 도움도 거의 주지 않으셨다 ㅎㅎ 


뒷이야기)

-하지만 시어머니는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신 분이어서 다이아 세트랑 진주 귀/목걸이를 주시긴 했다. 한국 부모님들은 다이아 결혼반지는 평소에는 장농 구석에 숨겨두고 특별한 날에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셔서 다이아 세트를 주시면서 잘 숨겨두고 커플링을 하고 다니라고 하셔서.. 나는.. 남편에게 다이아 반지 받은 것을.. 아직도.. 시댁에는 말을 못했..다..ㅋㅋㅋ 

그리고.. 어머니의 취향은.. 나랑.. 매우 다..르..다...? 그것도 그렇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본인이 쓰시던 다이아반지를 리사이징 해서 주셨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사고 싶으셨는데 명목 없이 사기는 뭣해서 나중에 며느리 물려주겠다며 사신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거 살 돈으로 내 반지를 1캐럿으로 했으면 더 좋았겠다 허허허 라는 배부른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부모님은.. A라고 말하면 정말 A라고만 알아듣는 스타일..ㅋㅋ 양가 도움 안 받을거야! 했더니 정말 아무것도 안 해주셨다 ㅋㅋㅋ 그게 나쁘진 않지만 시댁에서 조금 해 주셔서 사실은 좀 부담이 되었다. 그냥 안 하기로 했으면 안 했으면 좋겠는데 ㅠㅠ 그렇다고 시댁에서 했으니 우리도 도와줘 라고 하고 싶진 않았다. 안 하기로 한거니까!


여튼, 이렇게 안 받거나 덜 받을 수 있는 것도 늦게 결혼해서 우리가 모아둔 재산이 어느정도 있고, 또한 주변 친구들을 통해서 본 경험치들이 있어서 먼저 선수쳐서 절충을 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4. 성격을 갈고 닦은 후 결혼할 수 있다.

난 아직도 모가 난 성격의 소유자 이지만, 20대의 나는 모가 났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또한 모가 난 것을 조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유해진다고, 동그라미가 된 것 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단점을 인지하고 그것을 부드럽게 만들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상대방이 나에게 해 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느낄 수 있게 되고 나도 보답하고자 노력하기도 하며 그렇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나름 수련하며 보냈다.


주변에서 결혼하면 서로 맞춰 가느라고 고생길이 훤하다고 했는데, 젊은 나의 성격으로 결혼을 했다면 그 맞춰가는 길이 얼마나 더 어려웠을까 싶다. 지금도 앞 길이 구만리에 착한 사람이 되려면 멀었지만, 나의 모남을 단지 모남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능성으로 바라봐 주는 남편이 있는 덕에 오늘도 조금 더 동그랗게 갈린다.


일찍 결혼하면 좋은 점도 물론 있겠고, 늦게 결혼하면 안 좋은 점도 물론 있지만,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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