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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13. 2020

미혼, 무직의 30대 : 고양이를 싫어할 권리

작고 약한 것들에 다정할 의무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혹은 나의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집엔 당연하게 개가 있었다.


길에서 데려온 아이도 있었고 이모가 키우던 강아지가 새끼를 낳아 받아온 아이, 엄마가 동물을 예뻐하는걸 동네가 다 알다 보니 본인은 더 못 키우겠다고 온 아이, 어느 날 불쑥 엄마가 애견 샵에서 데려온 아이 등등

출신도 종류도 다양한 개들이 그렇게 우리 집의 나이 들어도 한없이 아기인 강아지 막내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동물을 좋아하는 엄마가 거두지 않는 동물이 있는데 그게 고양이였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심하기도 하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좋아하지 않아서기도 했다.

이유를 붙이자면 계속 붙일 수 있을 다양한 이유들로 우리 집에 고양이가 막내로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나는 고양이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좋아하지 않는다에 가까운 거 같지만 키울 거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할 테니 싫다고 해두겠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하지만 뉴스에서 길 고양이 밥에 농약을 탄다거나, 고양이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거나 하는 불편하고 속상한 소식을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감정으로 욕을 한다.

고양이끼리 싸우는 것은 괜찮지만 고양이를 상대로 사람이 힘을 휘두르는 것은 너무나도 비인도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걸 보며 항상 궁금했다. 아무 무기 없이 같은 고양이과인 호랑이 앞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아니겠지. 비겁분자라는 게 그런 거니까.


나는 꽤나 작은 키의 여자로 단순히 길을 걸을 뿐인데도 다양한 이상한 사람을 만나왔다 하지만 180이 넘는 키와 몸무게도 내 약 두배인 남자 사람과 있을 때는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자기보다 약자에게는 망설임 없이 힘을 휘두르며 강자에겐 한 없이 약해지는 사람들을 보며

저들의 힘은 지키는 힘이 아니고 과시하며 자아도취에 빠진 행위의 일환일 뿐이구나,

그들 눈엔 고양이도 사람인 나도 그저 그들보다 약한 작은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그저 운이 좋게 지구별에 사람으로 태어나 만물의 영장이랍시고 으스대지만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상이 아니듯 고양이로 태어난 것도 죄가 아니다.


감정이란 게 그렇게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싫어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넘어 행위라는 건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니 나보다 작고 약한 것들에 다정한 것이 인도적인 게 아닐까?


엄마는 항상 개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사람이랑 똑같다며 언제나 아껴주었다.

개들도 엄마를 닮았는지 가장 최근에 강아지 별로 돌아간 막둥이는 참새들이 밥을 뺏어먹으러 와도 얌전히 구경만 하고 옆집 고양이가 놀러 와서 같이 놀기도 하던 녀석이었다.

작고 약한 것들에 다정하다는 건 그런 거겠지.


본인보다 작고 약한 것을 대상으로 한 나쁜 뉴스의 가해자들 혹은 일상의 가해자들이 언제라도 꼭 눈눈이이의 속죄를 받는 날이 오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Dear THERE, 200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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