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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mf Mar 29. 2023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어느 날, 남자친구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냈다. '너의 이름은'을 제작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평이 괜찮은 것 같다며...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한번 더 카카오톡 메시지로 평이 괜찮은 것 같다고 2탄이 확정이라는 말을 던진 남자친구. 이 정도인데 영화 보러 가자고 안 하면 나는 눈치를 밥을 두 공기 말아먹은 거다. 마침 메가박스 영화티켓이 있었고 바로 예약 완료했다.


드디어 당일, 남자친구와 나는 북촌 한옥마을에서 저녁을 먹고 홍대 메가박스로 이동했다. 한 손에는 아이스 얼그레이티와 한 손에는 갈릭버터와 와사비마요 반반맛 팝콘을 들고 상영관에 입장했다.그날따라 팝콘이왜 이렇게 맛있던지... 먹다 보니 상영관이 점차 어두워졌다.


뜬금없지만 난 영화관의 소등과정이 참 맘에 든다. 어둠의 크레센도가 아주 적절하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이 영화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문으로, 세세한 줄거리 서술은 생략한다.)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를 만난다. 그의 뒤를 쫓아 산속 폐허에서 발견한 낡은 문. 스즈메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자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쳐오고 가문 대대로 문 너머의 재난을 봉인하는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는다. 재난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나타나 소타를 의자로 바꿔 버리고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 재난을 막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던 중 어릴 적 고향에 닿은 ‘스즈메’는 잊고 있던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네이버 줄거리 참조-


누군가 나에게 이 영화를 본 한마디 소감을 묻는다면

"투머치(Too Much)" 이다.

극 중, 스즈메가 소타를 부를 때 적어도 4번 이상을 연달아 부른다던지, 문을 닫을 때 주문을 길게 외운다던지 하는 감성이 나에겐 다소 과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영화 중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엄마가 어린 스즈메에게 의자를 만들어주었는데,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스즈메가 한 말.


"나는 언제부터 이 의자를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된 걸까?"


세월이 흐르며 익숙해지는 것을 소중하지 않다고 착각해 버리는 경우,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며 점차 무심해지는 것들이 많다. 정말 관심 있고 궁금해서 물어봤던 것들이 인사치레나 상투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그렇게 진심은 무심에 가려져 바래진다.


감독은 '문'이라는 장치를 통해 그 잊혀진 것들을 마주하게끔 했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고통, 소중한 일상의 평범한 목소리,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


언제든 문만 열면 바로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는 이렇게 망각된 것들이 유랑하는 세계이다. 어쩌면 미미즈는 바래진 것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일 수도 있다. 그것들이 나오지 못하게 또 다시 문을 닫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감정의 재난으로부터 안전할까.


스즈메는 온 힘을 다해 부르고, 온 마음을 다해 염원했다. 어쩌면 내가 스즈메의 애타는 부름, 진심 어린 애도가 담긴 긴 주문을 과하다고 느낀 것 역시 내 마음속 진심들이 회색빛의 무심으로 가려져 있었기에 그런 것은아닐까. 간절한 부름은 몇 번이나 반복되는 게 당연하고, 진심 어린 애도의 과정 역시 쉬울 수 없다. 그 온 마음과 온 힘을 나는 감당하기 벅찼고, 그 버거움에 다소 슬퍼졌다.


이 영화는 나에게 투머치 Too Much, 너무 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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