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 드라마 ‘종이달’을 보았다.
한참 보고 있던 와중에 나에게 꽂힌 대사가 있다.
대사는 이러하다.
“난 원래 왼손잡이인데, 사람들이 자꾸 밥 먹을 때마다 왼손잡이냐고 묻는 게 싫어서 그냥 오른손을 써요. 근데 무의식 중에 왼손으로 젓가락을 잡을 때가 종종 있어요. 나는 왼손잡이일까요? 오른손잡이일까요? “
물론 요즘에는 좀 덜한데, 불과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20년 전만 해도 친구 중에 왼손을 쓰는 친구가 있으면 다들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필이 뭉개지지 않게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종이에 글을 쓰는 왼손잡이 친구의 손모양을 매우 유심히 관찰하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아마 나의 눈빛이 상당히 불편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렇게 종종 보편적인 상황에서 남다르거나 다소 독특 혹은 이상하다고 여겨질 때 불편함을 느낀다. 마치 해명해야 할 의무감을 떠안는 느낌이랄까.
설명하기 힘들고, 설명할 이유가 없는 것들을 ´해명‘ 으로 바꾸어야 하는 노력을 할 때, 그 노력에서 당사자들은 얼마나 많은 무력감과 박탈감을 느낄까. 사람들 앞에서 의식적으로 오른손을 쓰는 왼손잡이의 젓가락질에는 얼마나 많은 한숨이 집힐까.
이건 마치 비바람이 거센 날, 옆에 있던 등신대가 쓰러져서 발을 내리치는 것, 혹은 분리수거통에서 꺼낸 통조림 뚜껑날에 손을 베이는 것처럼 충분히 예측가능한 상황임에도 피하기 어렵고 일어날 때마다 언짢고 아프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피하려면 애써 비 오는 날 한적한 곳으로 걷고, 통조림날을 통조림 안에 쑥 집어넣는 식의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과연 등신대와 통조림 날, 그리고 왼손잡이에게 왼손잡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뭐가 다를까? 당사자들은 애써 의식적으로 피해야만 하는 걸까? 나를 의식적으로 숨기고 조심해야 하는 수밖에 없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건 마치 지구에 거센 비바람을 없애달라거나 통조림캔을 부드러운 털로 만들어달라거나, 혹은 왼손잡이에게 왼손잡이냐고 더 이상 묻지 말라달라는 터무니없고 어려운 요청을 해야만 하는 일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