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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디 Sep 12. 2020

옛 선배의 조언

사과하는 습관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꺼내기 힘들었던


그렇지만 이제는 꺼내놔야 하는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이유는

내 안의 부끄러운 마음들을 겉으로 꺼내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것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 생각을 숨김으로써

외부적으로 받게 되는 자극은 거의 없었지만


내 안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그때그때 풀었다면 꼬이지 않았을 실타래가

어디서 언제부터 꼬였을지도 가늠 안될 정도로

마구 꼬여서 나를 괴롭히게 되었고


그 괴롭힘이 대인관계와

내 사회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제부턴가 사물을, 사람을,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방어적으로 보고


그러므로 인해 관계에 있어서도 점점

고립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팀장님께서 나에게 조언을

해주셨다.


"너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00 선배가

이젠 너와 이야기할 마음이 생긴 모양이야.

한번 먼저 연락해볼래?"


두려웠다.

처음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왜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지?

피해받은 건 나였던 것 같은데

왜 내가 항상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돌아봤을 때

그 생각은 틀린 생각이었다.


그 선배와의 관계에서

내가 항상 먼저 연락했었던 적도 없고

내가 피해받은 적도 없고

내가 항상 먼저 손을 내밀었던 적도 없었다.


조심스레 메신저로 연락을 해봤다.


다행히 선배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내가 용건을 말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번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을 뿐이었는데,

오히려 먼저 밥을 사주겠다며

본인의 시간과 자원을 흔쾌히 나에게 허락해주었다.


선배와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선배는

단도직입적으로 나를 왜 찾아왔냐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단도직입적인 게 불편하면 미안하다고.

하지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고.

배려있는 모습은 잃지 않았다.


선배가 너무 고마웠다.

사실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내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는데, 차마 미안해서 말을 못 꺼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평소라면 차분하지 않았을 나이지만..

이번엔 차분히

나에 대해서 선배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말로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배 그때 왜 나 싫어했어요?"

라는 질문이었다.


선배는 담담히 조언해줬다

"너랑 나랑 비슷한 점이 뭔지 아니?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본인이 생각한 대로 일이 안되면

방어기제가 커지고

공격적이 되지.

그러니까 너랑 나랑 많이 부딪쳤던 것 같아.

근데 나도 부서를 옮기고 보니까

많이 내려놔야겠더라.

내려놓으면 훨씬 살만하고 훨씬 나아.

그리고 내려놓는 방법에는 '사과'가 탁월해.


너나 나나

확 돌아서 공격적으로 다다다다 할 수 있거든.

성향적으로.

물론 그걸 고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게 바로 될 수 있겠니

둘 다 마흔 거의 다 돼가는데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한 번에 고친다는 건 불가능해.


사과를 해.

최대한 확 돌지 않게 노력하되.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사과를 하는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

너도 사과를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

난 그동안 사람들에게 사과를 많이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배의 말을 생각해보니

선배에게는 화를 내놓고

사과를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선배도 기분이 안 좋았을 텐데

그러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없을 텐데


난 선배를 내 맘대로 재단했었나 보다

저 사람은 내가 화를 내도

나를 신경 안 쓰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되겠지


하고 나만의 방어기제를 발동하면서 말이다.


숨을 한번 골랐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선배. 많이 늦었지만....

말하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때..... 제가 죄송했어요.

저의 사과를 받아주시겠어요.?"


아닌 척하고 싶었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수는 없었다.


선배는 살며시 미소 지었고


내 마음속 엉킨 실타래는

그렇게 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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