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학교에서는 비상근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퇴근해서도 ‘학교가 태풍 피해를 받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에 편히 잠을 자지 못했다.
‘아 다행이다.’
우리 동네가 축복받은 동네인가 보다.
아침에 일어나니 태풍이 지나간다는데 비가 오지 않고 있다.
“여보. 비 안 온다. 만세!”라며 좋아하고 있는데
방금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들이 “아빠 비 안 와요?”라며 아쉬워한다.
이유를 들어보니. 어제 태풍이 와서 학교에 10시까지 가면 되는데 지금 비가 오지 않으면 학교에 9시까지 가야 될 것 같아서란다.
거참. ‘우리 아들 아직 어리네 어려.’
아직까지는 태풍 피해보다는 학교 안 가는 것이 더 중요한 나이인가 보다. 이런 게 연륜의 차이인가? 마치 군대에 가기 전에는 눈 오면 러브스토리의 한 장면을 생각한다면(아들 시점) 군대에 가서 눈 오면 가슴 깊은 곳부터 욕이 나오는 것과 같은.(나의 시점)
일단 학교 피해 상황이 궁금해 8시에 출근을 한다.
어? 출근을 하는데 학교 통학 지도를 하는 선생님도 없고, 통학하는 학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전날 10시까지 등교한다는 통지는 없었는데.. 아마도 학생들은 10시까지 등교를 하라고 했나 보다.’
교무실로 갔더니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이 벌써 나와 계신다.
“교감 선생님 오늘 애들 10시까지 등교인가요? 애들이 안 보이네요.”
“네. 어제 학부모님들이 계속 물어보시기도 하고, 교육청에서 저녁에 태풍으로 학생 등교 시간을 10시까지 강력히 권고한다고 해서 10시까지 등교하라고 했어요. 강력히 권고한다는데 따라야죠.”
"강력하게 권고했다니 그냥 하라는 얘기네요. 하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커피를 마신 후 학교를 돌아본다.
일단 유치원으로 향한다. 어제 폭우로 인해 유치원 건물에 누수가 생겨 우리 시설 주무관님이 비를 홀딱 맞고 조치를 한 곳이다. 다시 살펴보니 물이 샌 흔적이 있지만 괜찮은 것 같다. 마침 시설 주무관님이 오셔서 함께 물이 새는 곳이 있는지 학교 곳곳을 돌아본다. 누수가 생긴 곳은 사진으로 찍어 두고 추후 보수 시 참고할 자료로 남겨둔다.
태풍이 언제 왔었냐는 듯 신나게 놀고 있는 유치원 꼬맹이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모래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다.
많은 비가 내려서인지 세상이 한결 깨끗해졌다.
청명한 하늘과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니 태풍으로 인한 비상상황이 종료가 된 듯하다.
이번 힌남노 태풍으로 인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만하면 큰 피해 없이 지나가 다행이다.
"안녕하세요~"
유치원 선생님이 행정실 문을 열고 예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온다.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보았더니 유치원 아이들이 손수 빚은 송편이란다.
아침에 유치원 순찰 갔을 때 오늘 아이들이 송편을 만드는데 "실장님도 같이 만드실래요?" 했던 그 송편이다.
태풍을 이겨내고 만들어진 made in 유치원 꼬맹이표 송편
"포장도 너무 이쁘게 해 오셨네. 그냥 주셔도 되는데."
"행정실만 특별히 포장해서 주는 거예요. 초등학교 교무실은 그냥 떡만 줬어요."라며 직원들에게 떡 주머니를 하나씩 건네주고 총총총 유치원으로 돌아가신다.
포장지를 뜯고 안의 송편을 살펴본다.
"이거 떡집에서 따로 만든 거예요?" 우리 막내 주무관이 물어본다.
"아니야. 애들이 직접 만든 거야. 별 모양 조개 모양 레퍼토리가 다양하네."
아이들이 정성스레 만들어준 이 송편이 태풍으로 몸고생 맘고생 한 우리 직원들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며 한 점 입에 넣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