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에 사는 ADHD중학생의 시험공부 이야기
자유학년제 1년이 지나, 드디어 2학년 첫 번째 시험을 보게 되었다.
국어와 과학, 2과목이었다. '알아서 공부하겠지~ 엄마 아빠인 우리가 둘 다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했고, 우리 아이인 걸?'이라는 믿음과 논리가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공부는 해야 되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가 공부를 스스로 했고 잘했으며, 우리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 아이니 말이다. 그렇게 당연한 믿음으로 시험공부를 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중간고사 전날까지 교과서를 펴보지도 않았다. 아니, 교과서 자체를 집에 가져오지조차 않았다! (내 아이 맞아??? 얘는 도대체 공부 왜 안 하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
학원마저 때려치운 상태라 학원주도형 공부마저 불가능했다.
눈치채신 분들 계실 거다. 티라노씨의 영어 공부 이야기다. '영어도서관'까지 합치면 중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모든 영어학원이 중단되었다. (참고글 : 07화 영,수를 강조하던 교사의 자녀학원선택, 과연 옳았을까?) 학원주도형 공부마저 불가능하다면 엄마주도형 공부라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난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이기에 공부에 관한 조언을 구할 사람은 각 과목 선생님들과 전교 등수 안에 드는 제자들까지 넘쳐났다.
문제는 공부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강한 논리로 맞받아치며 거부한다는 사실이었다.
"티라노야 이제 시험공부해야지~"
"공부 왜 해야 하는데?"
"좋은 대학 가려면 특히 주요 과목은 중학교 때부터 잘 잡아두어야 해."
"대학을 왜 가야 하는데? 엄마 아빠가 대학 나왔다고 해서 나까지 왜 가야 하는데?!"
"연구들에 의하면 학벌이 높을수록 초봉이 다르고, 연봉상승 기울기 자체가 다르대!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싶어? 돈 없으면 먹고 싶은 것도 잘 못 먹고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건 연구 결과일 뿐이고 다 그런 건 아니잖아. 확률상 그렇다는 거지 다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는 게 뭐가 어때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마음고생은 덜 할 수도 있잖아."
"......"
논리 정연하기로는 탐구토론대회 1등 감인 티라노씨였다. 공부 안 하는 아이들 논리가 다 똑같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서로 말을 맞춘 것처럼 말이다. '이를 어쩐다... 꼭 공부를 논리로 설득해서 시켜야 하는 건 아니잖아? 다른 방법으로 설득해 볼까?'라는 미친 생각이 번뜩 들었다.
도파민이 부족한 ADHD아이에게 도파민을 자극하는 미친 제안을 했다.
"90점 이상이면 5만원, 80점 이상은 3만원, 70점만 넘어도 1만원 용돈을 줄게! 어때?"라는 게 나의 제안이었다. ('교사가 돼가지고 너무 한 거 아니냐,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는 건 비교육적이다'라고 너무 나무라지 말기를... '오죽 공부를 거부하면 저랬을까' 정도로 이해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미친 제안을 들은 순간 전전두엽에서 도파민이 나온 게 확실하다.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의 눈이 번뜩일 정도로 매우 반짝인다. (난 아들바보인가 보다. 이 모습마저도 귀여워 보이다니..) 그렇게 우리의 악마 같은 계약은 성사되었다. 고작 기말고사를 2주 앞둔 시점이었다.
시험공부할 과목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전 과목을 다 하기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 티라노는 ADHD라, 하루에 집중이 가능한 시간은 일반 중학생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었다. (나도 공부하다 말고 딴 짓하지 말라는 잔소리 좀 해봤으면...ㅠㅠ) 수학은 학원주도형 공부를 하고 있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남은 과목 중 우리는 2과목을 택했다. 꼭 해야 하는 영어, 그리고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게 가능한 과학이었다. 중간고사를 안 본 대부분의 과목들은 교과서의 절반이나 시험범위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말고사 2주 남은 시점에 문제집을 뭘 사면 좋을지, 동료 영어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영어선생님은 문제집을 꼭 집어 알려주셨다. '문제집을 이제야 산다고?? 지금 6월 중순인데???'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날로 영어선생님이 찍어준 문제집을 사서 시작했다. 학교프린트를 위주로 문제집까지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하루에 1시간~1시간 반 영어공부를 했는데, 한 과목을 그 이상 공부하는 것은 집중력 문제가 있는 티라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어와 과학을 합쳐 평일엔 2시간, 주말엔 3시간 정도 공부를 했다. 당연히 완벽한 엄마주도형 시험공부였다.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프린트물을 보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게 중요한 건지는 보였다. 그렇게 영어와 과학을 끼고 직접 다 가르쳤다. 다행히 예전에 배웠던 문법을 다 기억을 했다. 티라노씨는 '교과서 문법은 쉬워~'라고 말하기도 했다. 옆에 내가 앉아 있고 프린트나 문제집을 읽고 풀기를 반복했다. 마치 고액과외 선생님처럼 말이다.
놀랍게도 학원도 안 다니는 아이가 벼락치기로 영어를 90점을 넘겼다.
그런데 과학과 수학시험을 의외로 너무 못 본 것이었다. (못 본 과목 점수 공개는 하지 않겠다.ㅋ) 수학과 과학 시험이 어렵기로 전국에서 소문난 학교였다. 영재고나 과학고를 준비하는 아이들 조차 수학 90점을 넘기지 못하는 수준의 난이도였다. 게다가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과학공부량으로는 이 학교 과학시험을 잘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 나름은 한다고 했고, 과학교사인 내가 아이를 끼고 가르쳤는데도 아이 과학점수가 저 정도인 게 참 자존심이 상하고 속상했다. (그간 어렵게 낸 걸 반성하며 '복직하면 시험문제 절대 어렵게 내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에겐 영어성적이 있어 다행이었다. 학원도 제대로 다닌 지 오래된 아이가 벼락치기로 90점을 넘겨 뿌듯하고 기특했다. '예전 과외와 학원에서 했던 공부가 아직 남아있구나.'싶기도 했다. 물론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다 A인 것,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늘 그 이외에 속하는 일이 더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내 아이가 그 안에 속했다는 게 뿌듯한 거다. 금쪽이 부모는 '금쪽이 내 자녀가 이번엔 다수에 속했다'는 이 마음 한 가지 만으로도 몽글몽글해지며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렇게 수학은 완벽한 학원 주도형 공부가, 나머지 주요 과목은 완벽한 교사엄마 주도형 공부가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말이다.
다음 편에서는 학군지에 사는 교사엄마를 둔 ADHD중학생의 '완벽한 엄마 주도형 공부'가 불러온 결과에 대한 글이 이어집니다.
공감과 위로가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늘 노력합니다. 저와 티라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