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DHD 중학생, 엄마주도형 시험공부가 시작된 이유

학군지에 사는 ADHD중학생의 시험공부 이야기

by 그림크림쌤

자유학년제 1년이 지나고 드디어 생에 첫 학교시험을 보게 되었다.

국어와 과학, 2과목이었다.

'알아서 공부하겠지. 엄마 아빠인 우리가 둘 다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했고, 우리 아이인 걸?'

이런 믿음과 논리가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공부는 해야 되는 거니까. 그리고 부모인 우리가 공부를 스스로 했고 잘했으며, 우리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 아이니 말이다. 그렇게 당연한 믿음으로 시험공부를 하길 기다렸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중간고사 전날까지 교과서를 펴보지도 않았다. 아니, 교과서 자체를 집에 가져오지조차 않았다!

'내 아이 맞아??? 얘는 도대체 공부 왜 안 하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시험인 기말고사가 다가왔다.

지난 시험을 통해 티라노에겐 자기주도 학습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어는 학원주도형 공부마저 불가능했다. 티라노는 중 1을 마지막으로 모든 영어학원이 중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엄마주도형 공부라도 시켜야 했다. 이대로 손 놓고 지켜만 볼 수 없었으니까. 마침 난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이기에 공부에 관한 조언을 구할 사람은 각 과목 선생님들과 전교 등수 안에 드는 제자들까지 넘쳐났다.


문제는 공부해야 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동기부여는커녕, 강한 논리로 맞받아치며 거부한다는 사실이었다.

"티라노야 이제 시험공부해야지~"

"공부 왜 해야 하는데?"

"좋은 대학 가려면 특히 주요 과목은 중학교 때부터 잘 잡아두어야 해."

"대학을 왜 가야 하는데? 엄마 아빠가 대학 나왔다고 해서 나까지 왜 가야 하는데?!"

"연구들에 의하면 학벌이 높을수록 초봉이 다르고, 연봉상승 기울기 자체가 다르대!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싶어? 돈 없으면 먹고 싶은 것도 잘 못 먹고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출처 : '중졸 월급 144% 오를 때 대졸 186% 인상'기사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그건 연구 결과일 뿐이고 다 그런 건 아니잖아. 확률상 그렇다는 거지 다 그렇게 사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는 게 뭐가 어때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마음고생은 덜 할 수도 있잖아."

"......"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한 논리 정연으로는 탐구토론대회 1등 감인 티라노씨였다. 공부 안 하는 아이들 논리가 서로 말을 맞춘 것처럼 다 똑같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를 어쩐다... 꼭 공부를 논리로 설득해서 시켜야 하는 건 아니잖아? 다른 방법으로 설득해 볼까?'

불현듯 미친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무리 해도 동기가 생기지 않는 ADHD아이에게 도파민을 자극하는 미친 제안을 했다. "90점 이상이면 5만 원, 80점 이상은 3만 원, 70점만 넘어도 1만 원 용돈을 줄게! 어때?"라고 제안한 것이었다. (현직 교사엄마가 '오죽하면 그랬을까'라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소망한다.)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의 눈이 번뜩일 정도로 매우 반짝인다. 미친 제안을 들은 순간 전전두엽에서 도파민이 나온 게 확실하다. 그렇게 우리의 악마 같은 계약은 성사되었다. 고작 기말고사를 2주 앞둔 시점이었다.


시험공부할 과목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전 과목을 다 하기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티라노는 ADHD라서 하루에 집중이 가능한 시간은 일반 중학생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았다. (나도 공부하다 말고 딴짓하지 말라는 잔소리 좀 해봤으면...ㅠㅠ) 수학은 학원주도형 공부를 하고 있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남은 과목 중 우리는 2과목을 택했다. 꼭 해야 하는 영어, 그리고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게 가능한 과학이었다. 대부분의 과목들은 중간고사를 치르지 않았기에 시험범위가 너무 많아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기말고사 2주 남은 시점에 문제집을 뭘 사면 좋을지, 동료 영어선생님께 여쭤보았고, 영어선생님은 문제집을 꼭 집어 알려주셨다. '문제집을 이제야 산다고?? 시험 얼마 안 남았는데???'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날로 영어선생님이 찍어준 문제집을 사서 시작했다. 학교프린트를 위주로 문제집까지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하루에 1시간~1시간 반 공부했는데, 한 과목을 그 이상 공부하는 것은 집중력 문제가 있는 티라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어와 과학을 합쳐 평일엔 최대 2시간, 주말엔 3시간 정도 공부를 했다. 완벽한 엄마주도형 시험공부였다. 내가 영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프린트물을 보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게 중요한 건지는 보였다. 그렇게 영어와 과학을 끼고 직접 다 가르쳤다. 옆에 내가 앉아 있고 프린트나 문제집을 읽고 풀기를 반복했다. 마치 고액과외 선생님처럼 말이다. 다행히 티라노가 예전에 과외와 학원에서 배웠던 문법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어떨 땐 티라노씨는 '교과서 문법은 쉬워~'라고 말하기도 했다. 예전에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놀랍게도 학원도 안 다니는 아이가 영어를 90점을 넘겼다.

그런데 과학과 수학시험을 의외로 너무 못 본 것이었다. 수학과 과학 시험이 어렵기로 전국에서 소문난 학교였다. 영재고나 과학고를 준비하는 아이들 조차 수학 90점을 넘기지 못하는 수준의 난이도였다. 게다가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과학공부량으로는 이 학교 과학시험을 잘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 나름은 한다고 했고, 과학교사인 내가 아이를 끼고 가르쳤는데도 아이 과학점수가 저 정도인 게 참 자존심이 상하고 속상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영어성적이 있어 다행이었다. 학원도 제대로 다닌 지 오래된 아이가 벼락치기로 90점을 넘겨 뿌듯하고 기특했다. '예전 과외와 학원에서 했던 공부가 아직 남아있구나.'싶기도 했다. 물론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은 다 A인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늘 그 이외에 속하는 일이 더 많은 아이였기 때문에, 내 아이가 그 안에 속했다는 게 뿌듯했다. 난 교사이기 이전에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에 '티라노가 이번엔 다수에 속했다'는 이 마음 한 가지 만으로도 몽글몽글해지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렇게 수학은 학원 주도형 공부, 나머지 주요 과목은 완벽한 교사엄마 주도형 공부는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keyword
이전 08화학군지 중학생이 된 ADHD아이의 수행평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