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하 Mar 01. 2024

비우면 보이는 것들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의 존재 가치를 알기 어렵다.

그들이 곁을 떠나고 내어주었던 자리가

비고 나서야 그 사람의 진짜 가치를 알 수 있다.

계속 생각나는 사람인지

쉽게 잊히는 사람인지는

그가 떠난 뒤에야 결정된다.


물건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 곁을 둘러싸고 있을 때는 그 가치를 알기 어렵다.

그것이 곁을 떠나고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비고 나서야 그 물건의 진짜 가치를 알 수 있다.

진짜 필요한 물건인지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물건인지는

그것이 사라진 뒤에야 알게 된다.


둘의 공통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많은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곁의 사람들이나, 곁의 물건들이나 

관계 맺고, 소유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고

집의 공간을 내어주어야 한다.

인맥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 소모도가 많이 필요하게 되고,

물건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집의 공간이 많이 줄어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엄마가 이사했다.

엄마 혼자이셔서 이틀 내내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가 이사를 도왔다.

남편은 아이 둘을 돌보고,

나는 종일 이사 현장에 있었다.

16년간 거주한 집에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비울 것과 남길 것을 정해야 했다.

평생 절약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엄마의

가전가구는 16년 전 그 집에 이사 온 날짜로

멈춰있었다. 

옷장에는 엄마가 시집올 때 해온 50년 된 

이불, 몇십 년 된 이불들과

몇 년간 입지도 않은 옷들이 가득했다.

베란다에는 잡동사니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최근에 수명이 다해 바꾼 TV와 침대,

이불 조금, 옷 조금, 식기류 조금만 남기고 

나머지 모두 비웠다.(19년 된 에어컨은 엄마가 

비우지 못하게 했다)


성인 5명은 족히 들어갈 것 같은 초대형 자루

2개에 산처럼 쌓여있는 짐들을 보고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왜 이렇게 짐을 쌓아두고 살았어?"

"언젠가는 쓰겠지 싶은 생각에

아까워서 못 버렸지. "


3.5인용의 큰 카우치 쇼파에서 작은 3인용 쇼파로,

850L 양문형 냉장고는 500L 소형으로,

가로 320의 붙박이장은 가로 160 옷장으로,

기다란 TV장식장 대신 벽걸이 TV(사진은 시공 전)로,

식탁은 사용하지 않아 없애고 거실에 평상만 두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 집이 이전 집보다 넓지?!"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 30평에서 24평으로 이사 왔어"

그랬더니 엄마가 그래?! 하면서 놀랬다.

내가 봐도 이전집보다 더 넓어 보였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무소유>, 법정 스님




엄마의 수많은 짐들을 비우고 나서야 

엄마를 둘러싸고 있던 물건들의 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본가에 짐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도 눈에 익은 풍경이라 그 크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 한 중심에 살고 있던 엄마도 

물건들에 자신의 공간을 내어줌에 익숙하기에

그를 인지하지 못했다.

다 비우고 이사를 와서야 알게 되었다.

16년간 엄마가 얼마나 많은 것들에 

얽매여 있었는지,

30평 집의 대부분 공간을 짐들에 

내어주고 있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물건을 소유함으로 얻어지는 기쁨은 잠깐일 뿐이고, 그만큼 물건에, 돈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구나'

'무소유란 소유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며, 소유한 물건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구나.'


3년 전 같은 제목으로 쓴 글에 썼던 문장들이다.

결혼과 동시에 미니멀라이프에 입문해

벌써 9년 차가 되었다.

물건을 비우고 집이 넓어지고 쾌적해지고

집이 좋아지고 

집과 함께하는 하루가 좋아지고

하루가 좋아지면서 

삶의 질이 올라갔다.

이 모든 선순환을 엄마에게도 꼭

전하고 싶었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엄마는 새집이 

더 넓어진 집이 좋다고 계속 이야기한다.


만 하루도 안되어 대량의 물건을 다 비우고

그 물건들의 진짜 가치를 목도한 이 경험은

만8년간 비움생활을 해온 나에게도 큰 각인이 되었다.

거대한 산과 같던 포대자루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얽매여 있는가?

라는 생각과 함께

정작 삶에 필요한 물건은 얼마 되지 않음을

여실히 절감했다.

또 동시에 이사가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도.


엄마가 이사 들어갈 때는 이사 나올 때보다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그만큼 짐이 줄어들자 

이사시간도 줄고, 이사도 간편했다.

앞으로 나의 모토는 이사가 편한 라이프로 정했다.

언제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마음가짐처럼,

해방되는 가벼움

벗어나는 유연함

즐거운 소박함을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일 하며 행복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