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단순화될수록 창이 건네는 대화도 길어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의 언어에 귀 기울인다.
윤슬이 반짝일 때 바다의 즐거움을.
안개가 자욱한 회색 물결은 바다의 슬픔이.
청아한 에메랄드빛에는 바다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듯하다.
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에 창이 어린다.
반복되는 지리한 일상 속에서 예민해진 삐죽한 부분도 이 창 하나의 존재로 뭉텅하게 순해진다.
부엌에서 살림을 하다가도 문득 마음에 작은 창을 내기 위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린다.
갖은 소음과 자극을 돌돌 말아 설악산과 청초호가 두른 풍경 속으로 던진다.
자연과 잠시나마 하나가 된다. 마음이 가장 놓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음의 창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내면의 나는 한꺼풀 더 열린다. 창 바깥을 들여다볼수록
시선은 바깥이 아닌 내부로 향한다. 이런 성향을 내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창문을 열면 바깥세상만 가득 들어오던 때가 있었다. 모든 기준이 세상의 틀에 닿아있었고 이는 세상과 가까이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고 동아리 활동과 과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이력서의 자기소개서마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라는 7글자로 나를 정의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외향적이었다기보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내성적. 내향적이라는 단어가 사회생활에 불리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고, 나름 부푼 꿈을 안고 있던 나는 사회가 원하는 단어를 은연중 자신에게 밀어 넣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외향적 성향으로 스스로를 믿으며 살아왔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집에 와서 혼자 마음 앓이를 하던 때가 잦았다. 정작 그 시절에는 이유를 앓지 못했다.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 필연적인 아픔이었으리라. 겉으로 태연한 척 웃으며 대화를 마치고 와서도 돌이켜 볼 때면 마음에 여럿 걸리는 가시로 불안과 함께였다.
많은 이들과 함께 만나면 쾌활하게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가면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밀려오곤 했다.
비울수록 집 곳곳 물건이 떠난 빈자리는 늘어간다.
이제는 차 있는 공간보다 비어있는 공간에 더 익숙하다.
물건이 떠난 빈자리는 음악이 끝나고 남는 침묵과 같다. 음악이 다녀간 자리에 음악은 없지만 여운이 가득 깃드는 것처럼 물건이 다녀간 자리에 물건은 없지만 가벼운 침묵이 공간을 드리운다.
음악이 끝나도 멜로디가 귓가에 한참을 서성이는 것처럼 물건들이 떠난 만큼 가벼워진 공간의 침묵이 맴돌곤 한다.
가만히 앉아 이 침묵의 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 물건들의 아우성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고요한 공간의 본질이 선명해진다. 물건이 자리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공간이 가지는 영속성이 상기된다.
좋고 예쁜 물건들로 집을 가득 꾸며 보려는 마음보다 공간 자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된다.
공간을 이루는 선들과 본연의 쓰임이 돋보이도록 공간을 다듬는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동안 내가 나를 꾸미려던 마음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나를 화려하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들여놓았던 내면 속 많은 장식품들을 하나 둘 분해해 갔다. 사회의 시선, 기준에 부합되기 위해 하던 노력들 대신,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워낸 용기는 나의 내면 속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지만 모호하고 보이지 않아 손에 만지지 않던 것들까지 드러내어 주었다. 물질적인 물건을 비울 때마다 마음속 껍데기들도 하나씩 탈거해 갔다.
문득 어린 시절의 처음을 떠올려보면 수줍게 웃고 있는 소녀가 있다. 나의 본래 성향은 내향적인데 나는 자랄수록 점점 나의 수줍음을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아를 숨기고 대중적인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해 나는 오래도록 나 자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미니멀라이프와 내향인은 닮은 구석이 있다.
둘 다 내면으로 향한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비워낼수록 물질세계로 뻗어나가던 감각은 공백이란 문을 열고 안으로 흘러간다.
외부와의 동행과 시선을 걷어낼수록 타인에게 쏠려있던 마음은 온전히 나라는 세계 안으로 잠잠히 잠식해 간다.
둘은 '나'라는 접점으로 만나 바쁜 일상 속 느린 여유와 작은 빈틈들을 나의 두 손에 포개 올리곤 한다.
외부가 복잡하고 방대한 것보다 아담하지만 단순할수록 머릿속은 맑고 안락하다.
이는 물질세계나 인간관계나 하나처럼 내게 같은 모습이다.
하루 속 분명 존재하지만 잘 잊히기 쉬운 것들이 있다.
가족이 머물던 자리에 남아있는 따스한 온기나 서로를 향해 전하는 작은 믿음 같은 것들.
비움과 내향적 성향은 삶에 잘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들을 내게 되뇌고 있다.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물건처럼 물리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물성이 아니라 손에 만져지진 않지만 내면을 단단히 곧추세우는 무엇이라고.
그 무엇을 위해 오늘도 물건을 비우고 그 물건이 떠난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