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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Jul 02. 2020

왜냐하면 맛있으니까!

[마르쉐 영국연수기_19] 레스토랑 그룹 슈퍼8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농가와의 연결, 레스토랑들간의 협업으로 만드는 메뉴들. 

그것이 가능한 구조. 왜 이런걸 하냐고? 쿨하게 툭, 맛있으니까

농장에 가는 날, 새벽부터 준비하고 나섰다. 언제나 스릴만점 숙소도 며칠동안 안녕! 레스토랑쪽 일행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소호 근처 길가. 기다리고 있으니 흰색 벤을 타고 이번 투어의 가이드 겸 동행, 킬른Kiln의 쉐프 김송수와 매니저 페니 Fanny, 스모킹고트Smoking Goat의 헤드쉐프 마이클 Michael과 총괄매니저 루크Luke가 왔다. 우리는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빠르게 벤에 탔다. 영국인들의 성격인건지 업계의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이후 투어는 이 ‘빨리빨리’의 연속이었다. 이동은 무조건 빠르게, 우리가 탄 벤은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물 흐르듯 날아다녔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상케했던 베스트 드라이버 루크 최고! 게다가 내내 마이클의 음악 선택이 탁월해서, 벌어지는 입을 추스르지 못하고 정신없이 조는 와중에도 또렷하게 귀가 즐거웠다! 기대했던 농장 투어가 시작됐다.

전편들에서 얘기한 대로 이들이 속한 레스토랑들은 Super 8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농가와 협업하며 재료를 찾고 소통과 신뢰를 기반으로 서로 시너지를 내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좋은 생산자를 찾고 계약 재배 방식에 고정적인 가격으로 선주문하여 농가가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게 돕고, 공급받는 재료들을 최대한 다 사용하기 위해 이 3개의 레스토랑이 협업하여 메뉴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가격이 높은 자연방목 돼지 농가와 협업하는 대신 그 돼지고기의 모든 부위를 3개의 레스토랑이 나눠서 다 사용하는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경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레스토랑들은 이러한 스토리를 내세워 홍보하기보다 이렇게 모든 부위를 다 사용하면서 적정한 가격으로 맞추고, 그냥 ‘맛있어서’ 사람들이 찾기를 바란다고 한다. 

농가 방문은 이 그룹의 중요한 정기 일정으로, 스모킹고트의 헤드쉐프 마이클이 농가와 소통을 담당하고 있어서 1주에 한번은 농가를 방문하고, 전체 직원들은 1년에 1~2번 방문하고 있다. 헤드쉐프로서 일을 하면서 차로 3~5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매주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농장을 같이 다니는 동안,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지는 마이클이 일하는 방식을 엿보면서 이래서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는 농부들과 친밀하게 대화하고 열정적으로 재료를 탐구하고 바로바로 요리하며 메뉴를 실험했다. 이렇게 얻어지는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레스토랑의 주방으로 고스란히 전달되고 바로 손님들의 식탁에도 정식 메뉴로 올려지는 구조라고 한다. 이 쉐프에게는 농가 방문이 요리를 위한 일이 아니라 요리 그 자체인 것 같았다.


이 농가 방문을 연결해준 김송수 요리사가 한국에 있던 시절에도 마르쉐 농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생생히 보여주었던 것처럼, 지금 한국에서도 이렇게 농가와 함께 요리를 시작하는 쉐프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한사람의 손님으로서, 고마운 일이다.    

고스니 팜의 농부 프레디. 고스니 팜 이야기는 다음화에!

이들은 농가 방문시 농부들과 소통하며 농가에서 어떻게 농사가 이뤄지고 있는지, 불만은 없는지, 새로운 생산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지금 생산하는 것이 최고 품질이 아니라면 좀 더 좋은 품질로 생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유기적인지, 동물학대는 없는 것인지 등등을 점검한다고 한다. 


새로운 농가를 만날 때는 생산물이 좋은 것을 넘어서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본다. 보통 레스토랑의 재료 구입은 이미 생산된 재료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런던의 레스토랑에서 밤 11시에 ‘이 부위 보내주세요’ 발주하면 다음날 새벽에 물건이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편의성보다도 중요한 것은 함께 좋은 과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이 어떤 고기를 원하는지를 요구할 수 있는데, 돈을 투자할테니 이렇게 키워달라거나 품종 등에 대해 요청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맛’을 추구할 수 있다.

마이클은 이렇게 예를 들어 설명해주었다. 


농가를 방문하면 우선 농부가 생각하는 좋은 기니파울 guinea fowl(호로새 - 닭목에 속하는 조류)이 무엇인지 묻고 농부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한다. 그리고 먼저 농가가 기존에 생산하는 기니파울을 주문해서 받아본다. 일정 기간 사용해본 뒤 그 결과를 피드백하면서 같이 일해 볼 마음이 있는지, 완벽한 기니파울를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 등 의사를 타진한다. 이때 사용해본 결과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거나 농부와 바로 협의가 되지 않아도 구매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받는다. 그러면서 레스토랑이 원하는 품질의 기니파울이 어떤 것인지, 이것을 현재 이 농가에서는 왜 얻을 수 없는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판매 가격이 얼마여야 그렇게 생산이 가능한지 등등을 논의한다. 

스모킹고트 Smoking Goat

이렇게 좋은 요리를 만들려면 원재료 가격이 너무 비싸지게 마련이다. 그걸 상쇄하기 위해 모든 부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영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부위들이라도 킬른과 스모킹고트가 태국 요리 기반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이 점에서 수월하다. 농가와 계약생산 관계로 가면 구매와 관련한 시간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가격도 함께 줄어들 여지가 생긴다. 도매상은 생산품의 단가가 중요하지만 레스토랑은 조리된 접시를 판매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10마리 구매로는 서로 생산성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17마리라면 가능할 수 있다. 17마리가 너무 많다면 이웃 레스토랑에 소개하기도 한다고. 


예를 들어 기니파울의 경우 일반적으로 1.5kg 까지 키우는데 3kg로 키우려면 너무 오래 키워야하고 가격이 비싸진다. 이때 레스토랑은 가슴살, 다리살, 뼈, 날개를 나누어 4개의 요리로 만들어 이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수익을 맞추기 위한 기획이 가능하다. 이때 농부는 3kg까지는 어렵고 2kg까지는 키울 수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레스토랑에서는 지방이 필요하고 3kg을 원하지만 2kg이라도 구매하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라고 한다. 

마이클은 농가에서는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레스토랑은 여러 가지 융통성이 있다며 농가와 같이 과정과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계속 강조했다. 

션 농부의 농장에서. 루크, 페니, 마이클

예를들어 이후 방문할 션 오닐 Sean O'neil 농부의 굿 어스 그로워스 good earth growers 농장에서 레몬그라스를 계약재배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통화로는 계속 잘 자란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한 레몬그라스를 보니 종이 다른, 먹을 수 없는 종류의 레몬그라스였다. 이런 경우에도 로스가 100%가 생기지만 레스토랑쪽에서 모두 부담을 했다. 실패였고 손실이 생겼지만 농가와의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또 예를들어 채소볶음의 재료인 채소를 일주일에 90kg 쓴다고 하면, 농가에서는 한 달에 몇kg 일년에 몇kg을 레스토랑에서 구매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농장에 공간과 인력이 언제 얼마나 더 필요한지도 산출할 수 있게 되면서 비즈니스와 관련한 장기계획이 가능해진다. 레스토랑이 이런 구조를 같이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관계맺은 농가의 생산물을 구입하면서 수익구조가 악화되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유통비용과 생산비용을 바꾸어야 하는데 농부 쪽에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농부가 생산비용을 줄이는 것은 생태적인 문제에 달렸기 때문에 불가능하고, 비용을 줄이려면 유통비용을 줄여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유통비용을 줄인다는 것의 의미는, 농부가 아니라 레스토랑이 책임을 진다는 것!


마이클은 독립적인 농부들에게 리스크는 대체로 자본, 날씨 등 농가 스스로 바꾸기 힘든 문제이니, 이 식재료를 다른 곳에서 대체 불가능할 경우 레스토랑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책임져야하고 한다고 했다. 리스크를 레스토랑이 책임지면 농부는 하고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그는 1000개의 그냥 그런 것 보다는 10개의 좋은 것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농부도 예술가처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션의 농장에서 바로 수확한 채소들

그의 말을 들으며 몇년 전 장수군에서 만났던 토마토 농부님이 생각났다. 비닐하우스에서 흙에 토마토를 키우는 젊은 귀농인이었다. 농부님은 토마토를 정말 건강하게 맛있게 키워도 유통에 넘기려면 소비자에게 판매될 때까지 물러지지 않고 단단해야 하니까 덜 익어서 맛이 없을 때 수확해야 한다고 했다. 농부님은 아무리 맛있게 키워도 당당하게 맛있는 토마토의 맛을 보여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이는 우리가 만나온 많은 과실 농부님들의 공통적인 마음이었다. 


사실 말그대로 땅의 힘으로 자라 무르익어서 그 맛이 정점인 과채와 과실은 곧 무른다. 소비자들은 그런 ‘맛’을 원하면서도 그런 ‘상태’는 원하지 않는다. 결국 그 모양을 해치지 않기 위해 덜 익었을때 따게 되고, 부족한 맛을 보충하기 위해 일괄적인 단맛을 주입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장의 과실들이 고유의 향과 맛 그리고 식감 보다는 꿀당도만 자랑하는 현실이 된다. 


내가 농부시장 마르쉐 일을 시작한 해에 방문했던, 유기농 토경 딸기를 오래 키우신 홍성의 농부님도 말씀도 생각난다. 단맛만이 아닌, 원래 딸기의 맛과 향을 느껴보라고, 그걸 알아야 한다고. 혹시 우리는 원래 과일의 맛을 잃어버린게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기농 딸기를 키우려고 물도 인위적으로 많이 주지 않는다고 하셨던 그 농부님은 소비자들이 알아주지 않아 그 귀한 딸기 농사를 접으셨다. 마이클의 말을 들으며, 토마토 농부님의 말이 떠올랐다. 


“저희 토마토 정말 맛있거든요. 자부심이 있어요. 이 맛을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유통은, 결국 소비자는 예쁜 걸 원해요. 안타까워요. 농부도 맛있는 채소를 키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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