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영국연수기_20] 고스니 팜1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레스토랑과의 협업으로 가능한 돼지 농사와 그로 인해 가능한 밀 농사.
다양성을 최대한 살아있게 하는 순환 경작
3시간 남짓 달려서 한적한 농촌의 고풍스러운 건물 마당으로 들어섰다. 크고 운치있는 농가에서 젊은 농부, 프레드Fred Price가 걸어나왔다. 아마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치지 않았을까? ‘앗, 미남이 나타났다!!!’
우리는 미리 고스니 농장 Gothelney Farm에 가면 똑똑한 젊은 농부가 있다는 말을 살짝 들은 터였다. 범상치 않은 인상의 프레드는 잠시 인사를 하고 곧바로 농장으로 안내했다. 집 주변으로 굉장히 큰 농장이 펼쳐져있었다. 마당 바로 앞은 커다란 돼지들이 한가롭게 오가는 풀밭이었는데, 슈퍼8 레스토랑들에서 이 돼지들을 받고 있었다.
가족의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5년이 되었다는 프레드는 농장 전체 운영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는데, 미리 요약하자면 이 농장 전체가 돼지와 밀을 함께 키우는 순환 농사를 하고 있었다!
프레드는 같이 농장을 돌며 본인의 철학과 농장 경영 방식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영국 농촌에서도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비료 투입량이 많아졌는데도 수확량은 증가하지 않고 정체되었다고 한다. 프레드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궁금해졌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은 토양의 미생물·곤충·동물들의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유기물이다. 밀을 생산하고나면 토양의 유기물들은 사라진다. 생산력을 유지하기 위해 화학비료를 투입하면 생태계 균형이 깨지고 그런 먹이사슬을 이루는 생명들이 사라진다. 그러면 계속 더 많은 비료를 투입하지만 땅은 계속 안좋아지는 악순환이 생기면서, 결과적으로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은 후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농장도 화학비료를 더 많이 넣는 방식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인위적인 투입이 나쁘다고 안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질소와 탄소를 땅으로 넣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이는 얼마나 다양한 종을 재배하는가와 연결된다고. 그리고 돼지가 바로 이 전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순환을 이루고 이익을 창출한다고 한다.
이 농장은 매년 경운하고 다양한 원종씨앗들을 뿌려서 채소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초지를 만든다. 흙을 파보면 작은 풀의 실뿌리 주변으로 떼알구조가 치밀하게 만들어져있다. 이런 건강한 흙이 되려면 자연의 순환이 중요한데, 살충제나 제초제 같은 인공적인 투입은 좋지 않다. 10년 전에는 토양의 비옥도가 떨어져서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비료를 더 뿌렸었지만, 지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프래드는 내내 땅에서 자라는 식물의 다양성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치커리, 수수, 아마란스 등등 20-30종의 풀과 작물을 키우는데 , 모든 다양한 것들이 각각의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이 풀들은 저절로 자라는 것도 있지만, 이 다양성 비율을 위해 매년 씨앗을 뿌리는데, 30%는 질소를 생산해주는 풀. 30%는 치커리 같은 허브들, 나머지는 다양한 특성을 가진 곡물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 모두 국내 씨앗들은 아니고, 땅에 맞는 좋은 원종 씨앗을 계속 찾고 있다고 한다.
수천년 동안 진화하면서 풀은 현명하고, 저마다 특별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어서, 각자 땅에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고. 우선 뿌리 내리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흙에 영양이 다 다르게 간다고 한다. 그리고 각 식물마다 질소의 양이 다르고 산성/알칼리성 산도도 다르다. 그래서 다 같이 심으면 미네랄, 박테리아, 탄소 등 모두가 같이 살면서 땅이 굉장히 건강해지는 것이다.
이곳은 지난 7-80년 동안 같은 작물을 키우면서 그에 맞춤하여 같은 화학 비료나 제초제 등을 사용해왔더니 거기에 적응한 잡초가 창궐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3년간 번식력이 더 강한 루썬 lucern (alfalfa라고도 한다)을 심고 키우고 베고 했더니 그 잡초가 사라졌다고. 내년 봄에 밀을 심으면 그 잡초는 더 이상 안나올 거라며, 프래드는 이 루썬이라는 풀이 굉장히 좋다고 강조했다. 루썬은 1년에 4번 잘라서 사용 가능한데 뿌리가 깊게 내려가고 탄소저장능력도 탁월해서 화학비료를 안쓰려면 이걸 기르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프래드는 이 루썬과 다른 뿌리의 풀을 25%정도 섞어 키워서 흙에 다양한 영향을 주며 토양을 더 비옥하게 만들어준다. 건강한 땅에서는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중의 질소를 고정시켜서 루썬의 뿌리에 동글동글하게 붙어있다는데, 프래드가 땅을 파서 보여준 루썬의 뿌리에는 아직 없었다. 그 이유는 오랜 관행 농업 영향으로 땅이 많이 단단해졌기 때문인데, 이 땅에서도 점차 잔뿌리가 늘고 뿌리혹박테리아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고스니 농장의 땅은 무척 비옥해서 뿌리가 깊숙이 들어간다며, 프래드는 농장을 이동하면서 계속 곳곳의 땅을 파서 보여주었다. 맑은 날씨에 드넓은 농장을 걸으니 기분이 좋아져서, 진한 빛깔의 촉촉한 흙에서는 왠지 향긋한 냄새도 나는 듯 했다.
프래드는 이렇게 생태계가 만들어진 흙을 뒤집어버리는게 좋은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서, 장기적으로 5년 정도 땅을 비워둔채 풀이 퇴적되면 자연적으로 비옥해지는 방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면 경작을 하지 않고 생산하는 것이라고! 10년 전에는 매년 뭔가 투입을 하고 작물을 거뒀는데 지금은 땅이 힘을 키울 수 있게 하고 작물을 거둔다고 한다. 프래드는 이런 방식을 ‘땅의 리듬’을 생각하며 하는 것이라고 했다.
농부의 말은 비록 영어로 말하고 통역해서 듣긴 했으나, 뭔가 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농사 농(農)이라는 한자는 노래 곡(曲)과 별 진(辰)이 합쳐진 글자로,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농사를 별의 노래라고도 일컫는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농부가 농사에 대해 말하는 것은 노랫말이 되고 시가 될 수도 있겠다. 이후에 만난 션 오닐 농부는 땅도 물처럼 흘러서 그 흐름에 맞추어 할 수 있는 작은 손도구들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땅의 리듬을 타고 물 흐르듯, 춤을 추듯 짓는 농사라! 아름답다!!
프래드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들을 몇가지 들려주었다.
영국은 카놀라유 생산이 많아 유채를 많이 기르는데, 작년부터 씨앗에 뿌리는 농약이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발아과정에서 벌레들이 다 먹어버려 완전히 파괴된 농장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 농장의 유채는 괜찮았는데, 아마도 땅의 다양성과 건강함 때문에 가능하지 않나 싶다고.
또 농장의 여러 밭 중에 유난히 해충 피해를 입은 밭이 있는데, 다른 곳들에 비해 작물이 다양하지 않은 그 밭으로 해충이 몰리면서 덕분에 다른 밭들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농사를 안 짓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양성이 많은 공간일수록 농작물 해충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에 프래드는 앞으로도 농사를 짓는 밭과 안짓는 밭으로 공간을 다양하게 쓰고 싶다고 한다. 프래드의 할아버지때는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경운기로 모든 땅을 경운을 했다는데, 이제는 그런 땅은 그냥 묵혀두며 자연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농장을 나누어서 순환하며 경작하는데, 돼지들이 순환하며 그 곳에 자라는 풀을 먹는 다고 한다. 이것이 이 고스니농장 농법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후 소개할 다른 농부들도 이와 같은 순환 구조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돼지가 모든 풀을 잘 먹는 것은 아니고 영양소가 높지만 돼지가 안좋아하는 풀도 있어서 고민하며 풀을 키우는데, 겨울에는 알팔파 키우는 곳으로 돼지를 옮겨준다. 겨울이 되면 식물이 에너지를 뿌리에 저장하는데, 겨울에는 땅 위의 탄수화물 영양소가 충분하지 않으니 돼지들이 풀 뿌리를 먹는다고 한다. 돼지들이 뿌리를 다 먹어버리면 땅이 손상되고 이 시스템이 깨지니까 그 주기에 맞춰서 옮기는 것이다. 돼지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풀을 먹으면서 그 풀의 영양소가 땅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땅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동물이 먹는 자극이 땅에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땅을 구획하고 돼지가 돌아가면서 머무르게 하는게 이 농장의 중요한 농법이다.
치커리 밭은 뿌리가 탄수화물을 땅에서 뽑아내기 때문에 좋은 곰팡이가 생기는데 이것이 땅을 건강하게 만든다. 또한 이 치커리를 많이 먹기 때문에 돼지들에 기생충약을 안줘도 된다고 한다. 관행 농장에서는 사료 안에 늘 약이 섞여있으나, 이 농장에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만 치료용 약이나 주사를 준다고. 돼지들이 먹고 나면 치커리를 포함해 풀들이 조금 남는데 그 정도 풀이 있어야 벌레가 컨트롤이 되어서 밀농사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치커리를 판매해서 수익이 나는것은 아니지만, 돼지와 밭을 완벽하게 해줌으로써 이미 돈을 만들어 주는 셈이라고.
돼지가 있지만 풀밭이 무척 깨끗한 이유는, 돼지가 여기에 똥을 싸면 벌레들이 분해를 해서 땅으로 돌려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땅을 비옥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데, 프래드는 겨울에 이 똥들이 완전 금덩어리같은 존재가 된다며 웃었다. 이 농장에서는 똥의 분해 속도도 무척 빠른데, 살충제를 안 쓰기 때문에 24시간 후에는 곰팡이가 생기고 미생물들이 생겨서 바로 없어지진다고 한다. 살충제를 쓰면 이런 벌레들이나 미생물들이 전혀 없는 것이고, 농장의 순환에서 이 다양한 생물들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이 모든 구조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고스니팜의 농법을 보며 유기농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몇해전 연예인이 직접 키운 채소를 작은 동네 시장에서 팔면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유기농 인증을 받지 않은 채소이기 때문이다. 마르쉐에서도 인증을 받지 않은 농부들이 유기적인 방식으로 키운 농산물을 설명할 때 유기농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현재 위법사안이라는 것에 대해 자체 교육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농사방식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몇몇 농부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도 했다. 그만큼 현재 ‘유기농’이라는 단어는 인증제도와 동일어로 쓰인다. 그러나 유기농은 단순히 농기술이나 인증이 아닌, 이러한 자연의 순환 그 자체, 유기적인 관계 그 자체일 것이다. 농부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연과 맺는 관계를, 우리는 이번 연수에서도 볼 수 있었다.
프래드는 이렇게 다양성이 중요하고 그 다양성 자체로 건강한 땅을 만들어가는 중이라면서, 농장 윗쪽 숲을 가리켰다. 이 지역은 오랜 관행농으로 종다양성이 없어진 농장들이 대부분인데, 저 숲처럼 역설적이게도 몇백년 전 인클루저 됐던 곳들은 보존되어 있어서 월등히 다양성이 살아있다고 한다.
그렇다. 자연은 그대로 두면 다양성의 힘으로 스스로 회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간다.
이 몇달, 코로나19로 인간들이 멈추니 공기가 맑아지고 산에서 들, 바다에 동물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계속 된다. 이 세계에 침입자는 인간이었구나 느끼면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는 사람들도 많다. 최대한 손이 덜 가게, 최대한 자연 그대로 짓는 농사를 이어가는 농부들이 있다. 스스로 먹거리를 길러 먹기 어려운 도시에 살면서도 우리는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이라, 한국에도 영국에도, 세계 곳곳에 그런 작은 농부들이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다.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