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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Apr 24. 2023

Shut up and

Run

“야, 너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언니 엄청 날씬해졌어. 무슨 일이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말이었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살이 많이 쪄있었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말들이다.


“밤마다 뛰거든.”



그러면 다들 반응이 똑같다.



“아……..”




달리기 시작한 지 정확히 두 달하고 보름이 되었다. (2021년 6월) 이제 10km는 기본으로 달리는 체력이 되었다.  “당신 이러다 하프도 하겠는데?” 하며 남편이 엄지척을 날린다.



달리기를 하는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내게 일어났다. 일단 몸무게의 변화이다. 3년간 웨이트, 줌바, 스피닝을 할 때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변화였다. 2~3kg는 빠졌다. 그리고 러브핸들의 실종사건!! 옆구리, 뒷구리, 앞구리의 살이 사라졌다. (앞구리는 남아있다. 양심상 이게 없어졌다고는 못하겠다.) 코로나로 집콕을 하면서 차곡차곡 페이스트리 쌓듯 쌓아놓았던 지방, 레깅스를 입으면 꼴 보기 싫게 옆으로 툭 튀어나왔던  옆구리 살이 달린 지 한 달 만에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그날의 감격을 내 어찌 잊으리. 그리고 지방에 묻혀 자취를 감추었던 복근이 드디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야!! 3년 만이니 우리??



달리기에 매료되어 일주일에 최소 다섯 번을 온 맘을 다해 달렸다. 작년 8월에는 매주 한 번씩 하프마라톤을 뛰었더랬다. 그때 체지방이 엄청 감량되어 복부지방률이 0.69, 기초대사량 1,400kcal가 나왔다.

‘숨만 쉬어도 살이 쭉쭉 빠지는구먼’, ‘ 이 정도면 하늘도 날겠어.’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역시 입방정을 떨면 아니 되었던 것일까?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0월부터 발을 디디기만 해도 정수리까지 찌릿찌릿 전기가 오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 또 시작되는 것인가 족저근막염’

몇 년 전에 왼쪽을 겪었던 터라 바로 느낌이 왔다.

그러면서 찾아온 우울감.



‘ 못 뛰는 건가? 아니 못 걷는 건가? ’



일상적인 걸음도 쉽지 않은 상황까지 오고 나서야 달리기를 멈췄다. 이대로 접어야 하는 건가. 마음이 80m 지하 암반으로 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 이토록 평범한 미래 ’에서 김연수 작가님은 그런 말을 했다. ‘ 삶에 완전히 패배했다는 것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제 다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달리기 하나 못했다고 삶에서 완전히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엔 패색이 짙었다. 뛰고 싶은데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주저앉을 때마다, 뛰고 싶은 마음 하나로 무리하게 뛰고 온 후 며칠을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완전히 패배한 것만 같은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해를 넘기도록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달리기를 포기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슬픔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달리기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했다. 몰입의 즐거움, 성취감, 살아나는 감각들.. 어느 때보다 거친 호흡을 내뱉고 싶었다. 심장은 터질 것 같지만 그때 비로소 느껴지는 살아있음에 대한 확신을 다시 맛보고 싶었다.  그립고 그리웠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었다. 달렸다면 눈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알아차렸으리라. 들이마시는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을 가장 먼저 느꼈으리라. 온몸에 수분을 말려 쪼그라들었던 나무의 줄기와 가지들마다 수분이 차오르고 새순이 돋는 것을 가장 먼저 눈으로 보았으리라. 흐린 빛으로 서 있던 나무들에서 터져 나오던 다양한 빛깔의 꽃들, 죽어있는 것만 같던 산책길에 불어오던 생명의 바람으로 인해  세상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또 보았을 것이다.

 



달리기는 달리기 그 자체로도 내게 기쁨을 주었지만 달리면서 만난 세상과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세상 안에서 달리지만 내 안에서 달리는 나를 마주했다. 나와 세상에 대한 생각과 가치, 태도가 변하는 것을 매일 경험했다. 달리기 실력만큼 생을 살아내는 실력도 늘어났다. 꽃과 나무가 자라듯 나도 자라고 있었다. 성장이 일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 중 하나가 ‘쉼’이라는 과정이다. 족저근막염으로 인해 달리지 못했던 그 시간이 내게는 ‘쉼’의 과정이었다. 달리고 싶은 열망은 더 강해졌지만, 건강하게 달리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한 것을 몸은 말해주고 있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지속해야 할 때와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힘이 생겨났다. 다른 사람은 뛰는데 왜 난 걷기만 해야 하냐고 전전긍긍하던 지난날의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스타트라인에서 피니시라인까지 뛰어가지만 누군가를 상대로 경쟁하며 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 자신이 낼 수 있는 스피드로 가면 되는 것이다. 피니시라인에 들어오는 시간차만 있을 뿐 결국 들어오게 돼 있다. 중간에 멈췄다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뿐이다. 또 굳이 같은 라인에서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달리지만 겨루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달리기 라인에서 승자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리고 이것은 삶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달리기는 그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러니 아등바등하지 말기를. 그리고 당장 나가 달리시길.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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