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 모르게 피식...
"올여름 초유의 폭염 오나… 평년 비슷·더 더울 확률 80%"
기상청이 6~8월 3개월 장기전망을 내놓고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4계절 중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여름. 난 여름 더위에 유독 취약하다. 더위, 추위 모두 타긴 하지만 가을, 겨울은 좋아하는 반면 봄은 그냥 그렇고 여름은 너무 싫다.
5월부터 찾아든 이른 더위에 주말 외출을 앞둔 나는 얼른 반팔부터 챙겨 입었다. 일교차가 있으니 얇은 긴팔 겉옷을 입긴 했지만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면서 어느새 긴팔 겉옷은 천덕꾸러기처럼 나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홍대입구역에서 2호선을 갈아타려고 긴 환승 통로를 지나려는데 볕 좋은 5월 주말이니 사람이 많은 건 당연지사...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특유의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으려니 이마와 목이 살짝 끈끈해졌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멀었건만 벌써부터 살짝 지치기 시작하려던 찰나....
무빙워크 벽면에 줄지어 선 광고판 사진 중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배경의 옐로우, 블루, 화이트와 핑크 핑크한 선명한 컬러의 조합...라코스테 광고 사진이었다.
20대 청년이 자신과 동일한 상의를 입은 할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저절로 눈길이 갔다.
청년의 시선은 할머니의 배를 향하고 있다. 치마 속에 당당히 상의를 넣어 입으신 할머님의 패션 센스(?)
환승 통로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치던 나는 이내 걸음걸이를 살짝 늦추곤 광고 사진을 스윽 눈으로 훑었다. 짧은 찰나에 전달된 사진 한 컷에 담긴 많은 의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나라에 라코스테가 처음 진출한 건 1985년이라고 한다.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 간접적으로 해당 브랜드에 노출된 채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 한 컷이 주는 의미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유행을 타지 않는 폴로 티셔츠의 전통... 남녀노소 모두 애용하는 패션. 비록 바지 속에 넣어 입는지, 아니면 빼서 입는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아이템...
하지만 사실 나는 폴로 티셔츠를 선호하지 않는다. 칼라가 있거나 목폴라티처럼 무언가 단정하게 목을 조이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나의 옷장을 열면 라운드나 V네크라인이 대부분인데 라운드 네크라인의 경우도 답답하지 않게 적당히 파인 옷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광고 사진이 나의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킬 일은 없을 테니 나에게만큼은 본연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른 더위에 살짝 지친 나에게 미소를 선사했으니 의도하지 않은 선한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마주한 사진 한컷에 살짝 올라오려던 짜증이 이내 사라졌으니 말이다… 이마는 여전히 끈끈했지만 마음의 불쾌지수는 쑤욱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