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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믿었던 것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때

by 김미영

어릴 때 방학이면 줄곧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 댁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선 도시가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눈을 뜬건지 감은건지 헷갈릴 정도의 칠흑같은 암흑 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얼마전 워크숍때문에 간 강원도 숲속에서 어린시절 한토막에 있던 그 암흑을 다시 경험했다. 절대적 시각정보를 잃어버린 상태였다.모두가 잠든 어둔 밤, 물 한 잔 마시러 주방으로 갈 때 눈이 아직 적응하기 전 잠깐동안 그 칠흑같은 어둠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둠의 끝이 어디인지 아득해 한 없이 넓게 느껴지다가도 바로 눈앞에 무언가 장애물이 있을 것 같은 두려움에 멈칫하게 되는 순간은 누구라도 한번쯤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가장 잘 아는 공간이기에 분명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내 눈을 믿을 수 없어 괜히 손을 휘이 저어가며 어둠을 더듬게 된다.


최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뮤지엄 산’은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안도 타다오만의 미니멀한 디자인과 노출 시멘트 공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강원도 산세의 능선, 초록이 우거진 숲을 배경으로 어느새 높아진 푸른 하늘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너무나 인위적인 건축물로 인해 천혜의 자연환경을 더욱더 절감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그곳에서 난 또 다른 종류의 그 어둠, 절대적 시각정보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했다.


제임스 터렐은 빛과 공간을 탐구하는 미국의 설치 미술가이다. 뮤지엄 산의 제임스 터렐관에는 그의 대표작 중 스카이 스페이스, 디비젼, 호라이즌 룸, 간츠펠트, 웨지워크가 전시중이다. “본다는 것은 감각적인 행위이다. 그것에는 달콤한 맛이 있다.”고 말하는 그의 표현매체는 오로지 빛이다. 빛을 이용한 그의 작업들은 정신적 수련을 중요시하는 퀘이커교의 철학과 만나 명상 속에서 깊은 사색을 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었던 다섯 가지의 전시는 모두 빛에 따른 착시를 이용하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공간은 ‘간츠펠트’였다.


간츠펠트는 독일어로 ‘완전한 영역’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진다. 심리학에서는 시청각자극이 완전히 차단할 때의 현상을 말하기도 하는데 시청각 감각이 모두 차단되면 뇌는 거짓신호를 만들어서라도 완전한 감각박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절대적 고요, 절대적 암흑의 시청각감각이 차단되는 그 순간을 참기 어려워한다. 대화가 중간에 끊어져 침묵이 오갈때,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암전상태 등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전시에서 나는 이런 시청감감각이 차단되는 혹은 변형되는 과정속에서 꽤나 완전하다고 믿었던 나의 감각에 대해, 무엇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모조리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방 안에 들어서니 벽 앞에 제단처럼 계단이 만들어져 있고 그 위에 정사각형의 붉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스크린인줄 알았던 그 정사각형은 또 다른 엄청 큰 공간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이것이 첫번 째 착시이다. 이후 빨려 들어가듯 사람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 안쪽에 만들어진 다음 공간에 들어섰다. 맞은편으로는 또 다시 커다란 스크린이 보이고 양 옆으로 모서리가 둥글려진 직육면체의 공간엔 은은한 파스텔톤이 다양한 색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오로지 빛을 이용해서 안개가득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양 손을 눈 옆으로 펼쳐 가림막을 만들어 양옆을 보면 끝도 없는 공간이 펼쳐진다는 설명을 들었다. 모두가 각자의 눈옆을 가리고는 숨쉬는 것조차 잊은 듯 조용히 이쪽 저쪽 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역시 손으로 주변 사람들을 가려 벽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신기하게도 보였던 벽이 사라지고 공간이 끝도 펼쳐졌다. 마치 하늘의 중앙 어딘가에 서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얼마전 태평양 바다를 옆에두고 지평선까지 펼쳐진 모래사장 어딘가에 서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는 것이 맞는지 의심을 하게 된다. 계속된 이 놀라운 경험 속에 있다보니 앞이 어디인지 뒤는 어디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내가 선 바닥이 아래인지 위인지도 분명하지 않은건 아닌가 하는 모든 것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정작 나를 정신들게 한 것은 걷다가 마주한 발의 감각, 모서리가 둥글려져 벽과 마주한 몸의 감각이었다. 눈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발이 눈앞의 벽과 마주한다. 우리의 오감중 시각이 차지하는 비율을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90%까지도 보는데 그런 시각을 의존할 수 없는 순간을 맞는 경험은 꽤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삶의 방향이 흔들릴 때가 있다.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이 맞는 길이었나? 내가 해 왔던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하는 일이 확실한가? 내가 보아 왔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의 진짜 모습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커져만 간다.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이 희미해진다. 뚜렷이 보였던 것들, 혹은 뚜렷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안개 속에 파묻힌다. 내가 맹신했던 모든 것이 흔들리면 지금 보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서 있는 곳이 앞인지 뒤인지, 똑바로 서 있는 것인지조차 가늠이 안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신호에 의해 나의 위치와 가야할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구름이 가득낀 하늘을 날아야 하는 파일럿은 실제로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고 한다. 내가 착시로 보았던 끝도 없는 공간이 그들에겐 착시가 아닌 말 그대로 현실인것이다.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 건지, 높이는 어느정도인지, 어느 방향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빠르게 가고있는지, 비행기가 기울어져 엉뚱하게 아래를 향해가거나 위를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등등 눈으로 얼마든지 예측가능했던 것들은 절대적 시각박탈을 갖게 한다. 이렇게 방향 등 공간감각을 상실했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이 관성에 의한 자신의 감각을 의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의 예측은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고.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삼는 지표는 무엇인가? 바로 계기판이다.


비행기에는 식스팩(Six Pack)이라고도 불리는 가장 중요한 계기판 여섯개가 조종석 가운데에 설치 되어있다. 이 여섯개의 계기판은 가장 기본으로서 어느 비행기의 조종석이던 같은 순서 대로 설치 되어있다고 한다. 이 계기판들을 내가 이해한 수준으로 살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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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s://cafe.naver.com/ch47d1/22938?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Y2FmZS1wcg.eyJhbGciOiJIUzI1NiIsInR5cCI6IkpXVCJ9.eyJjYWZlVHlwZSI6IkNBRkVfVVJMIiwiY2FmZVVybCI6ImNoNDdkMSIsImFydGljbGVJZCI6MjI5MzgsImlzc3VlZEF0IjoxNzI3MTY2MTYzNzQ5fQ.IGmh66uIwL-HKEhPXaPP684IEndDeXKpD01IDE3Fa-A


첫번째는 비행기가 얼만큼의 속도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속도계 (Airspeed Indicator, ASI)가 있다. 너무 느리면 하늘을 날 수 없고 너무 빨라도 비행기는 위험에 처한다. 특히 하강시 너무 빨라지지 않아야 한다고. 두번째는 자세계 (Attitude Indicator, Al)이다. 마치 하늘과 땅을 구분해 수평선(혹은 지평선)으로 보이도록 생긴 자세계는 비행기가 좌우 어떤 기울기로 있는지를 보여준다. 비행을 할 때 땅과 평형상태를 이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선행을 위해 비행기의 한 쪽 날개를 아래로 기울였다면 밖으로 보이는 수평선의 기울기와 계기판안의 수평선의 기울기가 일치해야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비행기가 어떤 높이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고도계 (Altimeter, ALT)가 있다. 바늘이 막 흔들리고 있다면 일정한 높이로 비행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중이라고.


다음 속도계 아래 위치한 턴코디네이터 (Turn coordinator)는 선회의 비율을 보여준다. 표준 선회(이것을 안전한 선회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는 2분에 걸쳐 360도를 도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행기가 180도를 도는데 1분, 1초에 3도를 도는 것이 표준이다. 비행기의 날개 기울기와 비행기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표시하여 얼마의 시간에 얼만큼의 회전을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너무 빨리 돌아도 너무 느리게 돌아도 비행기는 위험에 처한다. 다섯번째 방향계(Heading Indicator, HI)는 360도 방위를 기준으로 현재 비행기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알려 준다. 바람 등의 영향을 받아 실제 비행방향과 비행기머리가 향하는 방향이 달라 질 수도 있다고 한다. 마지막 고도계 아래에 위치한 수직속도지시계 (Vertical Speed Indicator, VSI)는 비행기가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고 내려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여섯가지의 계기판은 조종사가 자신의 시각정보를 의지할 수 없을 때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우리의 삶가운데에서도 비행기의 식스팩과 같은 계기판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맞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우리가 바로 서 있는지 확인해보자. 자세계를 통해 비행기가 수평선과 평행을 맞추듯이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나의 좌우를 흔들어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때때로 삶은 내가 원치 않는 이유로 나를 무너뜨릴 때가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전에 나를 기울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속도는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남의 시선, 남의 강요로 인해 무리한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알맞은 속도는 어느정도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방향을 향해 가는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행기는 결국 종착지를 향해 간다. 이런 과정은 종착지가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가 결국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계기판도 소용이 없다. 가는 여정에 있어 종착지가 변경될지언정 우리는 오늘의 종착지를 정하고 그곳을 향할 수 있어야 한다. 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가고 싶은 곳이 없다면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자신의 자세와 삶의 속도를 살펴보면 삶의 주체가 진정한 자신인지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았다면 지금의 자리에서 어떤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선회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선회가 필요하다면 다시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할 것인지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름 속에서도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한 비행기처럼 우리도 언젠가 지금 상상하는 그 자리에 웃으며 도착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여정의 첫 걸음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몸에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이 얘기까지 하면 너무너무 길어지니까 이번 글은 지금쯤 마무리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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