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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llare J Mar 06. 2020

뾰족한 발끝의 시작

 ‘발레’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뭘까요? 대부분 접시처럼 쫙 펼쳐진 치마(튀튀/Tutu)를 입고 한쪽 다리를 뒤쪽 허리춤까지 들어 올린(아라베스크/Arabesque) 무용수를 떠올리곤 합니다. 또는 팽이처럼 핑그르르 몸을 돌리거나 아슬아슬한 자세로 중심을 잡는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아마도 무용수의 발은 모두 발끝으로 서있을 겁니다. 광택이 나는 특이한 신발을 신고서 말이죠. 우리가 상상하는 무용수의 발끝을 세워놓은 이 신발이 바로 발레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포인트슈즈’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토슈즈(toe shoes)'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포인트슈즈(pointe shoes)’입니다. 프랑스어로 ‘뾰족하다’는 뜻을 가진 이 슈즈는 말 그대로 발을 끝까지 세워 뾰족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죠. 여느 신발들과 달리 끝 부분이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 발끝으로 서는 것이 가능하고, 주로 여성 무용수들이 포인트슈즈 위에 몸을 의지해 온갖 테크닉을 구사하며 남들과는 다른 발레리나만의 우아한 발끝을 완성합니다.


 그러나 발레가 르네상스 시대 궁정 연회에서 유래한 것에 비하면 포인트슈즈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2020년 현재를 기준으로 200년이 채 되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포인트슈즈 이전에는 맨발로 발레를 했나, 그 오랜 시간 동안 발레를 잘하다가 갑자기 왜 아픔을 무릅쓰고 발끝을 세우게 되었을까 말입니다. 다시 말해 누가, 언제, 왜 포인트슈즈를 처음 신게 되었을까요?



* 화려한 구두를 신은 귀족의 춤

 시작에 앞서 아주 간략하게 발레의 역사를 훑어보면, 궁정 연희에서 시작된 초기 발레는 지금 우리가 접하는 발레의 형태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전문 무용수와 여성이 출연하지 않는, 높은 신분을 지닌 남성 귀빈들이 직접 추는 춤이자 전유물이었습니다. 주변 국가의 왕과 귀빈들을 접대하기 위한 잔치에서 추는 춤이었고 여성들의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 시대의 발레는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었고 신발 굽은 높았으며 거추장스러운 의상과 가발 때문에 움직임에는 많은 제한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인 프랑스 루이 14세(a.k.a 태양왕)의 신발을 보면 지금의 발레 슈즈와는 매우 거리가 멀고 오히려 펌프스(pumps)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루이 14세(Louis XIV), <밤의 발레 (1663년)>

 

 이후 전문 무용 교육이 1630년부터 시작된 후로 1681년에는 처음으로 여성이 남성과 같이 춤을 추었고 1600년대 말에 들어서부터 발레는 일반 무대에서 대중들도 즐기는 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리 카마르고(Marie Camargo, 1710~1770)라는 무용수가 등장하였죠.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약한 그녀는 더 높은 점프와 고난도 테크닉을 소화하기 위해 치렁치렁한 치마 길이를 짧게 자르고 자신이 직접 신발 굽을 뜯어 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불편하면 조금 바꿀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자른 치마는 미니 스커트 길이가 아닌 고작 발목이 보일 정도였음에도 당시에는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니 신발 굽을 직접 뜯은 일은 엄청난 사건이었겠죠.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무용수들은 동작에 맞춰 의상과 신발을 간편하게 바꿔나갔고 18세기 말의 발레 슈즈는 힐이 없고 바닥이 납작한 형태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 아쉽게도 현재 남아있는 마리 카마르고의 초상화들 속에는 그녀가 굽 없는 슈즈를 신고 있는 모습이 없다고 하네요.)


좌 : 마리 카마르고 /  우 : 18세기 말 ~ 19세기 초 프랑스 귀족 여성 신발

*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탈리오니


 그리고 1800년대에 이르러 역사상 첫 포인트슈즈가 등장하는 낭만주의 발레가 시작되었습니다. 혁명과 전쟁으로 불안한 현실을 벗어나 비현실의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내용을 담은 작품이 등장하였습니다. 요정, 님프와 같은 상상의 인물이 작품에 주도적인 역할로 등장하여 그들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자 관객들은 열광하였죠. 때문에 초현실적 존재를 더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가스등, 로맨틱 튀튀, 비행장치는 낭만 발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가스등으로 어슴푸레한 빛을 낸 무대 위에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로맨틱 튀튀를 입은 무용수가 비행 장치를 이용하여 공중을 떠다니면서 말입니다.


 여기에 ‘공기의 요정’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i, 1804~1884)가 1832년 낭만발레에 ‘포인트’로 등장합니다. 사실 그녀의 ‘포인트’는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었습니다. 무용수의 육감적인 외관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유난히 가늘고 긴 팔다리로 평범한 춤을 추었기 때문이죠. 특출난 재능도 보이지 않자 발레 교사였던 그녀의 아버지 필리포 탈리오니(Filippo Taglioni, 1777~1871)는 새로운 기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섬세한 발가락, 힘 있는 다리 테크닉, 발끝으로만 서는 '포인트(en pointe) 자세'를 주문하였고 <라 실피드(La sylphide)>에 요정 역으로 마리 탈리오니를 출연시킵니다.


 결혼을 앞둔 청년에게 공기의 요정이 나타나 파멸로 이끌어 뜻밖의 비극을 맞이한다는 내용은 ‘요정’과의 ‘환상’을 바라는 관객들에게 딱이었죠. 게다가 현실에 묶여 있지 않은 여성스러운 요정을 표현하기 위해 완벽한 포인트 자세로 무대 바닥을 떠다니고 동시에 긴 팔다리로 우아함을 표현하던 탈리오니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요정 그 자체였습니다. 이후 <라 실피드>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낭만주의 발레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고 포인트 테크닉을 안무에 있어 필수적인 동작으로 인식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결국 시공간적 도피를 꿈꾸는 분위기와 그녀의 차별화 전략이 만나 포인트슈즈의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좌 : 요정으로 분장한 마리 탈리오니 /  우 : 1821년 파니 비아스 그림

 사실 1830년대에 마리 탈리오니만 포인트 테크닉을 구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마리 카마르고 시대에 “환상적인 발가락으로 춤을 췄다.”라고 언급한 신문이 있고, 1821년에 인쇄된 그림은 파니 비아스(Fanny Bias)가 포인트로 서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요. 그러나 그들의 발끝 포인트는 기교적 과시를 위한 테크닉에 불과했습니다. 그에 비해 마리 탈리오니의 포인트 테크닉은 작품의 스토리, 안무와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동시에 특유의 움직임으로 발레 본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포인트 테크닉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한 거죠. 때문에 마리 탈리오니는 예술적인 포인트 테크닉과 포인트슈즈를 제대로 알린 첫 무용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누가, 언제, 왜 포인트슈즈를 처음 신었는지'에 대한 답을 이제 정리할 수 있겠네요! '마리 탈리오니가 1832년에 환상 속의 요정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다소 평범하던 그녀의 발끝에서 시작된 노력이 지금의 포인트슈즈로 이어져 발전해왔다고 하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참고]

김수연.『발레 포인트 슈즈의 시대적 발달사』. 한양대학교대학원 무용학과 석사학위논문. 2008

국립발레단.『즐거워라 발레』. 범조사. 2001


여기저기서 직접 경험하고 읽고 배운 내용들을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저와는 다르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댓글을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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