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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Aug 03. 2022

숨막히는 회사생활이 별 수 없을 때

출퇴근길에 변주를 주는 비밀 리츄얼

인생의 변화가 절실할 때

그치만 당장 줄 수 있는 변주가 너무나도 제한적일 때

그래서 답답할 때

새로운 무엇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금 더 쉬운 길은, 뭔가 새로운걸 하는 것보다
늘 똑같이 하던 어떤걸 다르게 하는 것이다.




인생의 비수기요 악삼재의 한창에서, 회사가 숨이 막히는데 마땅한 출구가 없을 때

내가 효과를 본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한다.


판교에서 종로까지.

말은 괜찮다 해도 재택이 끝나고 매일 왕복 최소 6천원씩은 쓰는 짧지 않은 길은

에너지가 누수되기 딱 좋았다.

누수되는 에너지를 막기 위해 출퇴근길을 어떻게하면 단축시키거나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잔머리를 쓰기 시작한게 시초였고,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소개하고 싶어졌다.


매일 가는 출퇴근길을 덜 지옥같이 만드는 방법

출퇴근길을 다르게 가는, 변주를 주는 것이다.


출퇴근 방법에는 세 종류의 변주를 줄 수 있겠다.


첫째. 운송수단을 바꾼다.

가장 쉬운 방법이다.

운전하던 출근길을 대중교통을 타고 간다던가

혹은 그 반대로 한다던가

서울역에서 환승하던 것을 종로2가 삼일교에서 환승을 한다던가


팁이 있다면 다른 루트를 경험해보면서 시간을 재볼 것을 추천한다.

다른 길과 시간에 따라 달리 소요되는 시간을 보면 의외의 효율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른 시간에는 집에서 회사까지 30분 이상 절약할 수 있다는 것, 시간에 따라 최적화된 루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출퇴근 시간을 어떻게 하면 빠르게 만들지에 대해 변태같이 작은 실험을 거듭했고, 꽤 재밌었다.

숫자로 측정되는 시각화는 게이미피케이션의 주요 요소기도 하다.


둘째. 가는 동안 멀티태스킹 요소를 바꾼다.

그동안 출퇴근길에 대충 멍 때리거나, 웹서핑 유튜브로 시간을 태웠다면

다른 습관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꼭 생산적인 출근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 요소를 만들라는 것은 아니다.

듣는 음악의 종류를 바꿔보거나 어느날은 어떤 음악도 듣지 않을 수도 있고,

눈을 감고 눈알을 돌려보거나 상상을 할 수도 있고,

전자기기 자체를 꺼버릴 수도 있다.

의지가 있다면 나처럼 글 한편 쓰는걸 목표로 하거나 책을 읽어볼 수도 있다.



시간을 바꿔보는게 마지막.

출근길은 앞으로 땡기는 거 말곤 선택지가 없다.

기상 시간과 수면 시간도 앞으로 당겨야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이른 출근의 장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빈 자리에 먼저 앉는 경험은 생각보다 더 좋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더 나은 점은 좀 더 우쭐대는 것 뿐이라는 말이 있던데

인정한다. 그 시간에 뭘 더 하고 안하고를 떠나 승리한 기분이 든다는 건 하루의 질을 바꾼다.

<아침 6시 반에 나오면 보이는 것들>
비온 뒤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가 좋다.
매일 보는 풍경이 새삼스럽게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로 꽉찬 파란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운이 따르면 앉을 수도 있다.
나에겐 특별했던 오늘 아침이 평범한 일상인 사람들이 있다.
차가 덜 막혀서 조금 더 일찍 서울을 가로질러갈 수 있다.
늘 급하고 미어터지던 출근길에 조금 틈이 생긴다.
틈 사이로, 보이지않던 평화로운 풍경이 보인다.




이것만큼은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통제권을 갖는다.


늘 같은 루틴을 다르게 한다는건,

그 중에서도 출퇴근에 변주를 주는건

통제권이 제한된 일반적인 회사원이 시도할 수 있는 도전 중 허들이 낮은 선택지에 속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평범한 삶 안에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경제적 자유를 아직 쟁취하지 못한 입장에서는 내가 원하는 일을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때 하기 힘든 것은 하는 수없이 감내해야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바꾸기 힘든, 아직 제한적 상황 하에서 우리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생이 힘들 때,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떠나버리고, 여행을 가는 것이 물론 제일 이상적이겠지만,

말이 쉽지 이런 선택지가 사치스러울 때가 있다.

멈출 수는 없고 앞은 가야하는데 갈 길이 너무 버거울 때도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회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도저도 꼼짝하기 힘든 마음과 상황.


매일 가는 같은 길을 다르게 가보기로 한 작은 도전은

"이것만큼은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통제권은

지지부진했던 삶에 생기를 주기 시작했다.


정말 별 거 아니지만, 별 거 아닌거라도

매일 조금이라도 뭐라도 앞으로 가는게 있다는게

성취가 목말랐던 내게 적잖은 위안이 됐다.

시작은 출퇴근길 좀 현명하게 가자는 거였지만 그 시간을 그저 태우지 않고 있다는 그 사실이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을 만들었고, 내일은 어떻게 가볼 지, 어떤 음악을 들을 지, 무슨 일을 할 지, 하지 않을지 생각하며 약간 기대되는 루틴이요 리추얼이 되기도 했다.


인생에서 때때로 찾아오는 지겨움에 대해

인내하고 버티고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담대하게 버티고 기다려야만 다음이 있을 때도 있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져버리고 떠나버릴 무모함과 용기가 없다면, 무튼간에 때가 올 때까지 지루한 시간을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당신의 출퇴근길이 특별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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