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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도혁 Aug 05. 2022

감성과 이성 사이. 세상에 이성적인 사람은 없다.

감성과 이성에 대한 이야기는 일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특히 진지하거나 다소 무거운 주제로 대화가 이루어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들어가며.



감성적인 사람,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본인의 생각과 비교하며 읽어봐도 좋을 듯 하다. 참고로 감정과 감성은 다른 의미의 단어이지만 해당 글에서는 크게 구분 없이 작성할 예정이다.



감성과 이성.


먼저 감성과 이성이란 인간의 본질이자 진지한 자기 성찰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의 옳고 그름, 선택과 망설임에 있어서 판단의 근본이 되는 것은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이기 때문이다.


최근 감성과 이성의 적절한 조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느끼게 된 것이 많다. 사람은 누구나 감성과 이성을 갖추고 있다. 이 두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헷갈리기 딱 좋게 되어 있는데 두 단어 모두 철학에서 좋아하는 단어이기에 철학적 정의가 있고 동시에 일반적 정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철학에 별로 관심이 없기에 일반적 정의에만 집중을 해보았다. 먼저 감성은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능력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기분을 느끼는 능력이 감성인 것이다. 그리고 이성은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일컫는다고 한다.


말은 어렵지만 감성이 뭐고 이성이 뭔지 느낌적으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주관도 있을 것이다. 평소 자신이 감정과 이성에 대해서 어떤 대화를 나눴었는지 생각해보자. 친구 또는 연인 등과 함께 감정과 이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기억을 잠시 떠올려보자.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곤 했나. 혹시 아래와 같은 말을 해본 적이 있지는 않은가.


"난 이성적인 사람인데, 넌 좀 감정적인 거 같아."


"넌 이성적이어서 좋겠다. 난 감정적인 편이라 가끔 스스로를 통제하기조차 너무 힘들어. 너처럼 이성적인 사람은 내 마음, 내 감정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할 거야."


"난 감정적인 사람이라 너처럼 그렇게 논리적이지 못해. 그게 정답이 아닌 걸 알면서도 잘 못하겠어."


위 세 가지 말은 모두 모순적이다. 이성적인 사람과 감정적인 사람으로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는 것, 이성적이면 감정을 공감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이성적인 사람은 무조건 논리적이라는 것. 이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런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거나 이와 비슷한 대화 상황을 겪어봤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모순적인 사람이다. 한 때는 이런 말도 내뱉곤 했다. "난 조금 이성적인 편인 거 같아. 근데 이성적인 게 꼭 좋은 건 아니더라. 난 내가 좀 더 감정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대화 속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감정적인 게 뭐고 이성적인 게 뭔가. 사람은 둘 중 하나로 치우쳐야만 하는가? 감성과 이성의 합은 늘 100이고 4:6, 5:5, 7:3 이렇게 나눠질 수 있는 것일까. 감정적인 사람이었다가 이성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면 감정 70, 이성 30에서 이성 70, 감정 30으로 변한 것이고 100이라는 총량은 변화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감정 70 이성 30에서 감정 70 이성 80으로 총량도 함께 커지는 것일까.


늘 그랬듯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똑같은 사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김새마저 모두 다른데 하물며 감정과 이성의 크기가 똑같은 크기를 지닐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고 그렇기에 사람마다 감정과 이성의 합, 총량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총량 또한 일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도 해볼 수 있다.


감정이 30, 이성이 40인 사람 A와

감정이 60, 이성이 50인 사람 B가 있다.


이렇게 되면 누가 감정적인 사람이고 누가 이성적인 사람인가. 개인마다 상대적인 것이므로 A는 이성적인 사람, B는 감정적인 사람인가?

 

그럼 아래 둘의 대화를 살펴보자.


B : 나는 진짜 감정적인 사람인데 넌 이성적인 것 같아. 내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해줘서 정말 고마워.

A : 맞아. 나는 조금 이성적인 편이야. 네가 감정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거 같네. 스스로 감정을 잘 통제해야 해. 그것도 연습이야. 힘들면 나한테 말해. 나는 이성적인 편이니까 현실적으로 조언해줄게.


이 대화에서 A와 B의 상황은 뭔가 모르게 어색하다. 분명 B의 이성이 50으로 A의 이성 40보다 높다. 그런데 역으로 A가 B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고, B는 그런 A에게 고맙다고 하고 있다.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나는 위에서 설명한 각종 상황들과 A, B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보고 싶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밀려오는 감정들에 허덕이는 순간을 겪곤 한다. 그런 감정들은 보통 '이성'이라는 말로 통제하며 조절하고 억누르게 된다. 감정이라는 파도에 이리저리 치이고 흔들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이 감정들을 빠르게 억누르고 요동치지 못하게 제어하는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감정적인 일을 겪고 나서는 내가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됐다고 위로하며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적인 행동을 취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성적이지도 않은, 그렇다고 감정적이지도 않은 스스로를 마주하게 되고 메말라가는 감정과 지나친 이성으로 자신을 압박하고 숨 막히게 조이게 된다. 또는 반대로 반복되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매번 똑같은 감정에 휘둘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그냥 편하게 아무런 힘듦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는 연습 부족에서 오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연습하지만 반대로 감성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한 연습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감성적인 능력을 키우는 연습을 하지 않을까? 보통 감성이라 하면 본능에 가까운 것이고 사람 그대로의 것,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와 반대로 이성은 후천적인 능력인 것처럼 받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일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요구받기에 이성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감정이 요동치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해버리는 사람이 많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며 제어하는 것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닌데 우리는 모든 감정들을 이성으로 지배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무시하고 남의 일인 것처럼 행동하며 합리적인 사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게 되면 모든 일의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감정이 아닌 이성이 되고 만다.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은 감정 자체를 미성숙한 것으로 여기고 어린 사람이 가지는 대표적인 성향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강조하며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한다. 동시에 그렇게 해야만 옳고 성장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객관적인 사실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에는 정말 강하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자기에게 발생하는 감정들을 올바르게 해결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서는 공감 능력이 부족해지는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이게 논리적으로 맞다, 옳다라는 착각에 끝없이 빠져버리게 된다.


고민 해결에 관한 흔한 조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 자신의 고민은 멀리서 보라."라는 말이다. 제삼자가 조언해주는 것처럼, 친구의 일을 조언해주는 것처럼 멀리서 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엔 맞는 말인 줄 알았지만 정답은 아니더라. 가끔은 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직접 마주할 필요가 있다. 부딪혀봐야 내 감정의 흐름과 변화를 알 수 있다.


이성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 있다. "저는 이성적인 사람인데 가끔 감정 조절이 안돼요." 이 말을 듣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성적인 사람은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하는 걸까?'


아마 이런 사람들은 이성으로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마주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들때면 멀리서 지켜보며 반복해서 억압해왔기에, 그 쌓인 감정들을 내가 가진 이성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때 큰 시련과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글을 작성하다 보니 이성에 대해서만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게 되었는데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무시하고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상황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정이라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감정은 억압하고 통제해야 하는 부분이 아니다. 내 감정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감정 보살피기를 통해서 가장 소중하게 다뤄줘야 하는 부분이다.


즉 이성에만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 힘든 일이 있을 때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하던 사람들은 아래에서 셀프 진단을 해보자. 왜냐하면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조차 쉽게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1. 평소 자신이 감정적이기보단 이성적인 편이라고 생각한다.

2. 주변 사람들에게 이성적인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3. 주변 사람들과의 즐거웠던 순간들이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4. 힘든 상황에서 감정이 요동칠 때, 합리적인 감정인지 옳고 그름을 따지며 벗어나려 한다.

5. 감정적인 고민을 말하는 사람에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조언을 해주는 편이다.

6. 공감, 리액션에 다소 약하다.

7. 이 상황에서 내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게 맞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8. 감정에 힘들어하는 나를 납득하지 못하며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중 몇 가지나 해당되는가. 개인의 생각을 적은 것이기에 명확한 기준은 없으나 많은 부분에 해당된다면 앞으로는 내 감정에 좀 더 집중해 보도록 하자.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정들을 존중하자.

먼저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정들을 존중하자.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글로 적어보자. 아마 적기 힘들 것이다. 평소 내 감정,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로 적기 어렵다면 편한 누군가에게 말해보자. 그것도 어렵다면 카메라를 켜고 내 감정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촬영해보자.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다.



2. 부정적인 감정이 존중될 때 자아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부정적인 감정. 즉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은 감정이 들 때면 우리는 흔히 그러한 감정을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러한 감정을 존중해주자. 인간이기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기에 그런 생각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내가 왜 그러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올바르게 바라보며 자아를 성장시키자.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보자.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는 공감을 받아보자.



3. 이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키워나가자.

감정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고 이성이 안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무시하면서 이성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올바르게 바라보며 이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내 감정을 나 스스로가 정확히 알 때 진짜 이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러한 감정을 옳고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생각과 행동,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목표를 세워보자. 그대로 연습하다 보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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