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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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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Nov 19. 2023

사랑하는 나의 야식 파트너

상향 평준화를 위하여

치킨? 운을 띄우는 건 대체로 나다. 안 돼. 지금이 몇 신데. 거리의 가게가 하나둘 문을 닫는 시간. 반사적으로 안 된다고 말하지만, 아내의 눈은 반짝이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간다. 말과 표정에 간극이 보일 땐 표정이 진실이다. 마음을 읽었으니 밀당을 시작한다. 그럼 안 시킨다? 아내는 눈가가 촉촉해진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괜찮아. 우리는 먹을 자격이 있어. 새벽부터 하루 종일 얼마나 일했는데. 칼로리 소모도 엄청났을 거야. 합리화라는 카드를 꺼내자, 우물쭈물하던 아내의 입이 마침내 떨어진다. 그렇겠지?


(아닐 줄 알았는데) 우리는 야식에 시너지를 내는 관계였다.


늦은 밤에 만나는 단짠의 향연이야말로 부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신혼 일 년간 야식을 자주 먹었다. 배달을 시키기도 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가 밤이 되면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다. 평소 생각만 하고 도전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요리를 뚝딱뚝딱해보는 재미. 주는 대로 잘 먹는 사람이 앞에 있느니, 만드는 입장에선 더 즐거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즐거움이 커지는 만큼 몸무게도 함께 불어나는 것을 막을 순 없었고, 우리의 체중은 앞자리가 바뀌고 말았다. 결혼하자마자 살이 쪘던 선배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게다가 늦은 식사는 다음 날 컨디션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다. 몸이 붓고 무겁고 속이 더부룩하고. 여러 모로 야식은 문제였다.




 


부부의 입맛은 닮아간다. 그리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 먹는 사람의 입맛을 닮기 쉽다. 식사를 책임진 사람은 먹는 사람의 반응을 기대하고, 입맛을 고려하기 마련이니까. 그저 먹기만 하는 당신이 요리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야지, 하고 밀고 나가려면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 필요한 법이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요리를 하면서 남편인 나의 입맛을 점점 닮아갔다. 무엇을 주어도 말로는 맛있다고 하며 먹기는 했으나, 좋아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 앞에서 나의 표정과 먹는 자세, 반찬이 사라지는 속도는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반찬 투정을 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반찬 투정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담백하고 건강한 식단을 고집했던 장모님의 노력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하던 아내였는데, 결혼하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남편의 초딩 입맛을 닮고 만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관계. 


이것은 분명 하향 평준화다 


결혼 전 아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기와 함께 살면 오빠도 건강해질 거라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던 연애 시절에는 우리가 함께 살면 서로가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어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계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며, 상승과 하강이 관계 속에서 대립하면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끊어낼 수 있는 관계는 상승이 하강을 멀리 하면 될 텐데, 사랑하는 사람이 관계의 하강을 담당하고 있다면 서로에게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글쓰기모임에서 육아를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부모가 된 사람은 자신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고치려 해야 한다는 것이 대화의 결론이었다. 바른말을 쓰려고 하고,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가 무심코하는 말과 행동에 온전히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회원은 모두 공감하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이어진 대화가 재밌다.


왜 어린 자식에게는 내가 미칠 영향을 고민하면서, 배우자에게 내가 미치는 영향은 고민하지 않는가. 


다들 웃음이 터졌다. 각자의 배우자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얼마간 이어진 대화 끝에 우리는 몇 가지 생각에 도달했다. 아이에겐 기대하는 바가 적어서 일방향으로 사랑을 베풀지만, 배우자에겐 무엇이든 쌍방향으로 주고받기를 기대한다는 것. 그나마 배우자와 쌍방향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나은 축이라 생각했다. 최악은 상대가 나에게 좋은 것을 일방적으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배우자도 어린 자식을 대하듯, 나의 영향을 걱정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을 바로 잡으려 해야 한다고, 우리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서로가 서로를 일방향으로 좋은 영향을 주려고 하면, 상승과 상승이 만나는 쌍방향이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신혼 첫 해에 연일 치렀던 야식 파티는 이제 추억이 되었다. 건강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으며, 나로 인해 아내까지 좋지 못한 식습관을 가지는 것은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일 테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성장하는 것. 상승과 상승이 만나 합을 이루는 것. 그 안에는 좋은 컨디션과 감정을 전염시키려는 마음도 포함된다. 


당신의 오늘이 좀 더 활기차기를.

당신의 오늘이 좀 더 기분 좋기를. 

당신의 오늘이 더 사랑스럽기를.


그 마음으로 오늘의 나를 다잡기를.

우리의 상향 평준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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