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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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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Mar 17. 2024

부부의 데이트는 무엇을 남기는가

설렘보단 애틋함

퇴근하고 집 근처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난 도착했는데 어디쯤이야. 먼저 들어가서 주문해놓을게. 홀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곳은 횟집이다. 신혼집을 계약한 날에 들렸던 곳. 그날 우리는 단골이 되리라고 이곳을 점찍었다. 가게로 들어오는 아내의 모습에 남편 표정이 밝아진다. 소주잔을 비우고, 광어를 한 점씩 먹고, 손 씻었다는 괜한 말을 하며 쌈을 싸서 건넨다. 오늘 하루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우리 둘만 사는 집이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기뻐한다. 데이트 중에 언제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부부는 손을 잡고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느릿느릿 둘만의 집으로 향한다.


이것은 우리가 결혼하며 꿈꿨던 일상 속 데이트의 한 장면이다. 말 그대로 꿈이었다. 이사를 갈 때까지 단골이 되고 싶었던 횟집에 단 한 번도 다시 방문하지 못했다는 게 현실이었다. 상상했던 소소한 데이트의 약속은 촘촘하게 진행되는 생활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사실 우리가 기대한 신혼의 데이트는 여러 버전이 있었다. 주말엔 핫플레이스 맛집과 카페에 다녀오기. 때때로 제철 음식을 먹으러 휴가를 잡아 국내 여행 떠나기. 계절이 바뀔 때면 함께 쇼핑하기. 이 중에서 무엇도 실현되지 않았다.






아직 아이가 없음에도 맞벌이 부부의 시간은 왜 이렇게 촉박한 것일까. 혹시 가정 경제를 꾸려간다는 공동의 목표가 생겨서가 아닐까, 하고 우리는 생각했다. 열심히 일해야 가정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목표의식. 여기에 둘 다 자영업자인 탓에 일 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일을 해두어야 한다는 부담도 한몫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집안일은 후순위였다. 쌓인 설거지를 미룰 수 없어서 마지못해 하는 날도 늘었고, 빨래는 그냥 건조기에서 바로 꺼내 쓰는 날도 많았다. 시간이 생기면 밀린 집안일을 해야지. 데이트는 다음에 하자. 기약 없는 말만 하며 부부의 데이트는 집안일에도 밀려 가장 후순위가 되었다.


영어 단어 Date는 '날짜'라는 뜻에서 '이성끼리 교제를 위하여 만나는 일. 또는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교제를 위해서 만난다는 것은 아마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거나, 호감을 키워가는 일쯤이 될 것이다. 오랜 연인에게는 마음이 여전한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할 테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에게 데이트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길래 우선순위에서 이토록 찬밥 신세가 되었을까.






아 몰라. 그냥 나가서 먹자. 어느 날 우리는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무작정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데이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반복해서 먹는 일상의 메뉴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검색해서 찾은 곳은 예약이 필요한 핫플레이스의 레스토랑이었다. 다행히 당일에도 예약할 자리가 남아있었다. 자리에 앉아 둘러보니 우리가 꽤 연장자인 것 같았다. 예쁘게 꾸민 20대 여성 일행이나, 여자친구 손에 이끌려 온 커플, 그리고 소개팅 중인 남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의도치 않게 우리 부부도 데이트를 시작했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아내와 나는 눈을 맞추고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선가 두 남녀의 어색한 소개팅 대화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괜히 귀가 쫑긋해졌다가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 것이다. 우리도 저렇게 설렐 때가 있었지, 하며 아내는 아련해지는 눈빛을 하기도 했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놀러 나온 젊은 사람들, 데이트 중인 연인들, 소개팅하는 청춘들 사이에서 우리 관계의 잊었던 모습이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부의 데이트는 낯섦을 주고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것일까. 그게 핵심은 아니다. 문득 다른 테이블에서 느껴지는 활기와 들뜸, 그리고 설렘들 속에서 우리 부부의 자리만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세월이 주는 안정감과 같은 그 느낌에서 서로에게 애틋함을 느꼈다. 그동안 우리 부부가 데이트를 찬밥처럼 여긴 것은 데이트는 곧 설렘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부부의 데이트는 부부 사이의 안정감을 확인하는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언제 어디서도 당신과 함께 있다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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