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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 Surgeon Aug 17. 2020

어느 외과의사의 고민 (1)

쌀쌀맞을 것 같은 외과의사도 고민을 한다.

"수술만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환자인데, 수술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수술을 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자인데,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외과의사로 살아가다 보면 맞닥뜨리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냉철하게 판단하고, 다소 쌀쌀맞아 보일 정도로 결론만 이야기하는 외과의사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다.


얼마 전의 일이다.

60대 여자 환자가 내원하였다. 폐동맥 고혈압과 간경화를 앓고 있었는데, 넘어지면서 대퇴골 골절이 발생한 상태였다. 대퇴골 골절은 통증이 심하여 수술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질병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경화가 심하여 혈소판이 낮고 혈액응고인자가 잘 생성되지 않는 상태라 정형외과에서는 수술이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간이식을 받기 위해 내원하였으나, 또 다른 문제는 폐동맥 고혈압이었다.

폐동맥 고혈압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환자는 간경화로 인해 2차적으로 발생한 폐동맥 고혈압이다. 오랫동안 간경화를 앓게 되면서 그로 인한 혈관의 변성 및 심장 주변 혈류량의 변화 등으로 폐동맥 고혈압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간이식을 해 주는 것이 근본 치료가 되겠지만, 이미 폐동맥 고혈압이 매우 심하게 진행된 경우는 간이식 자체를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이렇게 간경화와 폐동맥 고혈압이 동반되어 있는 환자가 흔하지는 않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언제 이식 수술을 결정하고 어떠한 경우 이식이 불가능한지 아직까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 회상 ]


아주 오래전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간이식을 앞두고 마취과 선생님들과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었다. 간경화가 심해져서 뇌사자 간이식을 기다리던 중, 뇌사자 장기 기증이 선정되어 한 밤 중에 응급으로 간이식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마취과에서는 이러한 경우 수술대 위에서 사망할 가능성이 90% 이상이라 마취를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심장내과 선생님은 간경화가 폐동맥 고혈압의 원인이므로 어렵더라도 이식을 진행하라고 답변을 주셨다. 이런 경우 실제로 간이식 수술을 집도해야 할 외과의사는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된다.

"선생님, 마취과 선생님이 죽을 수도 있는 수술이라고 하시는데, 간이식이 성공할까요?"

"100%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간이식을 받지 않고서는 환자는 결국 간경화로 인한 여러 증상 들로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떡하지요?"

"매우 위험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환자의 회복을 위해 달리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 이 위험을 넘어서서 회복의 길로 갈지, 아니면 그냥 간경화로 인한 환자의 사망을 지켜만 볼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수술을 받게 되면, 수술 후 지난한 회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환자가 그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환자는 수 일 내에 돌아가실 것이다.

수술을 받지 않고 며칠을 더 버티는 것이 좋을지, 위험하더라도 수술을 받고, 적으나마 회복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볼지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다. 마치 도박과 같은 순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주사위 조차 던지지 않고 포기하는 쪽 보다는 주사위라도 던져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어렵게 수술이 결정되었고, 마취과 선생님께서 건네신 '특별 동의서' - 즉, 수술 중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고 이해하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 진행에 동의한다 - 까지 받고 환자는 수술대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간이식은 성공적이었다. 수술대 위에서 폐동맥의 압력이 70mmHg (정상인 경우 30mmHg 이하)까지 상승하였으나 큰 출혈도 없이 예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이 종료되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데굴데굴 구르는 주사위가 멈출 때 우리에게 유리한 숫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되었다. 이제 환자를 마취에서 깨우고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환자의 자발 호흡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고 폐동맥 압력이 너무 높아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중환자팀과 상의를 끝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폐동맥압을 낮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바로 그날, 환자는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아, 이 환자의 간이식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어차피 돌아가실 환자인데, 괜한 부담만 더 드린 것은 아닐까?'


한동안 나는 매우 의기소침해져서 이러한 위험부담이 있는 환자들에 대한 간이식에 매우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시금 내게 폐동맥 고혈압 환자가 온 것이다. 더구나 이 환자는 기증자인 딸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해야 했다. 즉, 수술 전에 혈장 교환술 등 추가로 심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과정들을 더 거쳐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항 혈액형 항체의 수치가 너무 높아서 여섯 번의 혈장교환술을 해야만 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의지는 대단했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반드시 이식을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전의 아픈 기억이 있어서, 가족들에게는 간이식의 성공 가능성 반, 이식이 실패하여 돌아가실 가능성 반으로 설명을 드리고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혈장 교환술을 시작하였다. 수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 이번에도 마취과에서 연락이 왔다.

"교수님, 이번 환자의 폐동맥 고혈압이 너무 심해서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엔 심장내과에서도 조금 더 약물 치료를 하고 간이식을 진행하자고 의견을 주셨다.


환자는 몇 주간의 추가 치료를 하기로 하고 퇴원하였다.

퇴원하고 한 달 후 외래에 내원했을 때, 환자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는 듯이 보였으나,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해 보였고, 간이식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도 매우 위축되어 보였다. 상황이 좋지는 않았으나 격려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더 치료받고 안전한 상태에서 간이식을 하려고 합니다."

"네, 저는 선생님만 믿어요. 간이식밖에는 방법이 없잖아요."


그렇게 간이식을 기다리는 동안, 환자는 식도정맥류 출혈이 발생하여 토혈을 하며 응급실을 통해 내과로 입원하였다. 이젠 더 물러설 곳이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시금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입원했을 때, 환자의 복수는 더 심해졌고, 의식도 점점 혼탁해지고 있었다.

한 가닥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간이식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포기해야 할 것인가. 아직도 마음이 확고히 결정되지 않았다.

수술 전날, 가족들과의 면담.

현재 상태에서 간이식을 안 받게 되면 대개는 며칠 내로 사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간이식을 하더라도 회복할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는 지난번 수술을 준비할 때 보다 그 성공 가능성이 더 낮아 보였다. 보호자들에게 다시금 어려운 점들을 설명드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하기는 어려우셨으리라.

"선생님, 단 1%라도 회복의 가능성이 있다면, 저희는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겠습니다."

가족들의 결의는 대단했다.

나는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 수술은 너무도 위험한 수술입니다. 이 큰 위험을 저 혼자 짊어지고 가기에는 부담이 너무 큰 것이 사실입니다. 가족들이 함께 제 짐을 나누어 주신다면, 함께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간이식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간이식은 진행되었다. 혈소판과 백혈구 수치가 매우 낮아 비장 적출술까지 동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출혈도 있었지만, 고가의 비급여 약물의 효과 때문인지 폐동맥압이 50-60mmHg 정도로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로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이 잘 마무리되고 다시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동하였다.

'이번엔 잘 회복해야 할 텐데...'


며칠이 지나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마취약을 끊자 환자는 매우 답답해하며 온 몸을 흔들고, 명료한 의식 상태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협조가 되지 않으면,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이 위험한 상황. 그렇게 몇 번의 시도를 하였으나 결국, 인공호흡기를 떼는 데에 실패하였다. 그렇게 2주간이 흘렀고, 기관지 연골의 손상을 막기 위해, 성대를 통해 기도에 삽관한 관을 빼고, 기관절개를 하여 새로운 관을 목에 꽂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보호자들도 다소 낙담한 듯이 보였으나,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기로 하였다.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해 심장에 피가 정체되어 우심방의 압력이 올라가자 간에도 충혈이 발생하여 간 기능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이 더 흘렀고, 결국 환자는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뒤로 몇 주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을 후벼 파고 고춧가루를 뿌려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사망 선고를 할 때의 그 가족들의 원망 섞인 눈망울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 이 환자의 간이식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어차피 돌아가실 환자인데, 괜한 부담만 더 드린 것은 아닐까?'


몇 해 전의 그 질문이 다시금 뇌리에 울려 퍼졌다.



( 2편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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