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ing Surgeon Sep 11. 2021

나이 들면서 느는 것과 주는 것

Aging process

언젠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눈썹이 엄청 길어진 것을 보았다. 눈썹이 자라는 줄은 몰랐는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 정치인들의 포스터를 떠올려 보면 눈썹이 유난히 긴 분들이 있었던 것 같다.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면, 언젠가부터 헤어디자이너가 머리를 다 자른 후 눈을 감으라고 하고선 눈썹을 다듬어 주기 시작하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

일상 속에서 나이가 드는 것을 실감하면서 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내가 어릴 적 나와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이만 먹어 가는 것 같다고들 한다. 그러나, 신체의 변화는 늘 변함없을 것 같은 우리의 마음과 달리 소리 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찍힌 몇 해 전 사진들을 우연히 보다가, 지금과 달리 앳되 보이는 자신을 발견할 때, 지나가는 군인 아저씨가 아주 어리게 느껴질 때, 어릴 적 친구들이 엄청 나이 들어 보일 때, 불현듯 찾아오는 노화의 과정이 하나 둘 몸에 나타나는 것을 볼 때면,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아니 늙어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줄어드는 것들도 있지만, 늘어나는 것들도 있다.


처음 노화의 과정으로 다가오는 신체의 변화는 "노안"이다.

노안은 마흔이 갓 넘으면 찾아오는 것이라 “늙을 노”자를 붙이면 안 될 것 같지만 노화의 과정 중 생기는 일이라 생각하면 노안이라는 표현이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휴대폰을 보거나, 작은 글씨를 볼 때면 안경을 벗게 된다. 안경을 벗어야 상이 또렷하게 맺히는 것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결국 나이 듦에 따라 우리의 시력은 줄어드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마음 아픈 노화의 과정은 바로 "탈모"이다.

머리털이 가늘어지고, 머릿속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프다. 그래도 아직은 크게 표가 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만, 머리카락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 와중에 흰머리는 또 늘어난다. 줄어드는 것이 있으면, 늘어나는 것도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이렇게 줄어드는 것도 있고, 늘어나는 것들도 있는데, 늘어나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은 주름이다.

눈가의 주름, 이마의 주름, 코 옆 주름...

앞서 말한 대로, 눈썹 길이도 늘어난다. 머리털은 줄고 눈썹은 늘어나니 영 균형이 맞아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부터는 코털도 그 길이를 더해 간다. 정기적으로 코털 정리를 하지 않으면 지저분하게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이니 이미지 관리에 치명적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이가 드니 체중도 늘어난다. 몸매 관리를 위해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그저 젊을 때와 같이 생활하는 나는 체중이 많이 늘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말랐던 나의 20대와는 달리, 어떠한 태풍도 견뎌낼 것 같은 육중한 몸매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이 들면서 늘어나는 것들은 대부분 불필요한 것들이다. 눈썹, 주름, 코털, 체중.... 모두 젊어서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고, 현재도 필요 없는 것들이다. 생각해 보니, 이런 신체적 변화 말고도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것들이 많다. 우선 말이 많아진다. 불필요한 잔소리도 늘어난다. 쓸데없는 참견도 늘어가는 것 같다. 넉살도 좋아졌는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편하게 말을 한다. 어찌 보면 이런 것들도 나이 들면서 늘어나는 불필요한 변화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절실히 필요한데도 줄어드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시간이다. 초등학교 6년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의과대학 6년은 그보다는 짧았지만 그래도 긴 시간이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레지던트와 펠로우를 거친 6년을 돌아보면 무척이나 짧게 느껴진다. 어느덧 교수가 된지도 10년이 넘었다. 지난 10년은 그 어느 때와 비교해도 짧게만 느껴진다. 누군가는 시간의 가속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필요한 것 같은데도 점점 더 줄어들기만 한다. 불필요한 것들은 늘어나고 필요한 것들은 줄어만 가니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신체 변화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른 것들은 신경을 좀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이가 들면서, 불필요한 말들을 줄이고, 잔소리도 줄이고, 불필요한 관계들도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까?

그렇지만, 오늘도 수술실에서 젊은 사람들 앞에 놓고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다. 대부분은 옛날 얘기들인데, 듣는 이들은 관심도 없을 것 같은 얘기들... 말을 하면서 문득, 내가 저 자리에 있을 때 스승님들이 옛날 이야기 하시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젊음은 그 귀중함을 모르는 젊은이들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 조지 버나드 쇼 -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As your youth is not a reward from your effort, My agedness is not a punishment from my fault." -  Theodore Roethke -


Copyright(C) 2021 Dreaming Surgeon.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의 흔한 교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