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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 Surgeon Apr 08. 2020

두 번의 합창대회

두 번의 지휘

작금의 사태로 벚꽃 즐기기도 어렵지만, 매년 이 맘 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벚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하면 학교 여기저기에서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매년 5월에 반별로 경쟁하는 교내 합창대회가 열렸다. 4월부터는 합창대회 준비로 반마다 합창을 연습하는 소리가 이 반 저 반에서 터져나왔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부반장이 었는데, 반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엉겁결에 지휘를 맡게 되었다. 지휘라는 것이 별개 없어서 그냥 반 친구들 앞에 서서 박자에 맞추어 손만 흔들어 주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친구들은 내 지휘를 보진 않을 것이고, 각자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나는 그저 친구들 앞에 서서 4/4박자 손 모양만 열심히 그리면 되는 것이다. 단지, 문제는 우리 반에 피아노 반주를 할 친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한 반 정원이 65명 정도였는데도, 남자학교인 데다가 당시만 해도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던 터라, 우리 반에는 피아노 반주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와중에 체르니 30번까지 배웠다는 친구가 한 명 있었으나,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는 피아노를 쳐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담임 선생님은 국어 과목을 담당하시는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다른 반과 달리 이번 합창대회에 큰 기대를 하고 계시진 않은 것 같았다. 아주 쉬운 곡으로 선곡을 하였다. "고향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아주 평이한 곡이었다.

합창 대회 한 달 전부터는,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음악실에 모여 한 번씩 연습을 하였다. 당시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같은 반 친구들 앞에 혼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졌는데, 피아노 반주자 친구는 연습 때마다 마치 처음 쳐보는 곡처럼 중간중간 반주를 끊어 먹기 일쑤였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무섭기로 소문난 분이셨는데, 어쩐 일인지 합창 연습 때만은 우리가 아무리 연습을 제대로 안 하고 반주가 끊어져도 크게 개의치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이 나올 때마다 몽둥이로 매를 맞고 단체 기합을 서는 것이 일상인 그런 시절이었는데도.  


드디어 합창대회 당일. 나는 몹시 걱정이 되고, 긴장이 되었다. 바로 어제 연습 때까지도 우리 반주자는 곡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만은 제대로 연습을 해 왔기를 기대하며 무대에 올랐다. 2학년 1반, 우리 반이 첫 번째 공연이었다. 드디어 전주가 시작되었다. 전주까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나의 손짓에 맞추어 우리 반 친구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나의 사알던 고향은~ 꽃 피...."는 순간 반주가 이탈을 하면서 버벅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짧은 순간, 32분 음표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머리에 떠 올랐다.

‘어떡하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다시 시작하면 잘 할 수 있을까?’

목은 바짝바짝 타고 이마에선 식은땀 한 방울이 콧등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그 사이, 나의 의식과 상관없이 내 손은 휘젖휘젖 계속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앗!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반주가 나아질리는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반주를 무시하고 지휘를 계속 이어나갔다.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에 당황스러운 것은 직접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도 매한가지였을 터. 지휘자가 그대로 반주에 상관 없이 손을 계속 휘저으니 친구들은 처음에 서로 눈치를 보다가 입을 뻥긋 거리며 계속 노래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피아노가 노랫소리를 따라 오려는 듯 이탈된 음이 몇 번씩 들리기는 했으나, 우리 노래를 따라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귀엔 더 이상 피아노 소리와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반주 따로, 지휘 따로, 노래 따로.

‘아~ 노래야 빨리 끝나라.’ 그 짧은 고향의 봄 노래가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빨리 이 순간을 모면하고 무대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관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귀까지 빨개지기 시작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머리가 멍해져서 어떻게 노래가 진행되고 끝이 났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드디어 노래가 끝나고, 뒤로 돌아 관객석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친구들에게 무대에서 내려가라는 신호를 내렸다.

이어지는 다른 반들의 합창과 지휘에 우리 반 모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반 지휘자의 손동작은 지휘가 아니라 마치 응원단장과 같이 절도가 있었고, 반주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상대적으로 우리 반의 합창은 점점 더 초라해져만 갔다.


그 날 오후 종례시간. 담임 선생님께서 반주자 친구에게 한 말씀 하셨다.

"녀석~ 연습 좀 해가지고 오랬더니..."

"동진아, 그래도 네가 흔들리지 않고 계속 지휘를 해 줘서, 그나마 노래를 다 끝내고 내려와서 다행이다."

다행이긴 했다. 그러나, 내가 흔들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융통성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굳어진 몸 때문에, 시작된 지휘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 날을 떠 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다음 해, 3학년이 되어 나는 또 지휘자가 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담임 선생님이 합창대회 한 달 전에 아이들 앞에서 물었다.

"자~ 이 중에 작년에 지휘해 본 친구?"






작년 합창대회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너무 컸기에 이번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등 떠밀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한번 지휘자가 되었다. 아마도 친구들은 작년 2학년 1반 지휘자가 나였다는 사실을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3학년 담임선생님은 역시 국어 과목을 가르치시는 여자 선생님이셨다. 합창대회에 매우 열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하셨다. 우리 반에는 다행히 피아노를 매우 잘 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 MBC 합창단 출신으로 가끔 아역배우로도 출연했던 매우 재능 있는 친구였다.

나도 이번만큼은 작년의 아픈 기억을 날려버릴 만큼 멋지게 지휘를 하고 싶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의욕적으로 합창곡을 선정해 주셨다.

"치리 비리 빈"


이탈리아 가곡을 합창곡으로 편곡한 곡이었던 것 같다. 아니 우리가 이 곡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합창대회 한 달 전부터 거의 매일 저녁 학교에 남아 연습을 했다. 파트별로 부르고, 다시 모여서 부르고. 아이들의 화음도 날이 갈수록 아름답게 들려왔다.

내가 지휘자이긴 하지만, 곡에 대한 이해도 없었고,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는 중학생이니 그저 허공에 삼각형만 열심히 그려대는 것뿐이었다. 이번엔 3/4 박자였다. 노래가 조금 익숙해질 무렵, 담임 선생님께서는 노래에 강약을 넣어 주셨다.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그리고 중간 쉼표에 다 같이 소리를 멈추고 숨을 쉬게 하셨다.

이런 것들을 지휘자인 내게 아이들이 눈치챌 수 있도록 손으로 표시를 하라고 하셨다. 작년 합창대회의 악몽이 가끔씩 떠올라 온 몸이 화끈거릴 때마다, 이번 기회야 말로 그 악몽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손동작과 팔 동작을 연마하였다. 그렇게 손동작도 조금씩 세련되어 갈 즈음, 담임 선생님께서 "동진아, 뒤에서 보니 카라얀이 지휘하는 것 같다. 얘" 라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이 맞겠지?


드디어 합창대회 당일. 나는 작년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다행히 이번 반주자의 실력은 우리 학교 최고였다. 곡은 난해하였으나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었다. 자~ 이제 지휘자만 잘 하면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왼쪽엔 소프라노, 오른쪽엔 알토 파트가 자리 잡았다. 나는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몸을 돌려가며 열심히 팔을 흔들었다. 손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큰 소리를 내야 할 땐 손을 활짝 펴고, 작은 소리를 내야 할 땐 손을 오므렸다. 숨을 쉬어야 할 땐 주먹을 쥐어 보였다. 노래가 끝이 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등 뒤에서 쏟아졌다.

뿌듯한 마음으로 무대를 내려오는데, 객석 구석에 앉아 있던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말을 걸었다.

"동진아, 지휘가 왜 작년하고 달라?"

녀석은 작년에 우리반 합창이 나의 지휘 때문에 망한 줄로 기억하나 보다. 젠장.


결국 우리 반은 학년 우승을 넘어 교내 우승을 차지하였다. 합창대회 우승을 기념하여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반 학생들 모두에게 학교 앞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2학기에는 관악구 합창대회에까지 나가게 되었다.

비록 구 대회에서는 입상하지 못했지만, 이 모든 과정이 꿈만 같았다.




그렇게 3년의 중학 시절 동안 두 번의 지휘를 하게 되었다.

너무나 극과 극인 두 번의 지휘 경험이었다.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등을 보이며 홀로 서 있는 지휘자였기에, 어찌 보면 깊이 기억되지 않고 지났을 수 있는 작은 경험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지.... 특히, 3학년 때 피아노 반주를 해준 친구,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던 백현진. 그립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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