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울고나니 속 시원해졌어
거리 한복판에서 소리 내어 운 일이 있는가? 15년 전 공원 벤치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내 스무 살은 많이 뜨거웠다. 연극을 하기로 마음먹고 재수를 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실기 준비도 해야 했지만 부모님은 뒷바라지를 해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오후가 되어야 공부도 하고 실기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가게까지 40분 정도 걸리는데 나는 날마다 같은 길을 걸어 다녔다.
"너는 좋겠다. 하고 싶은 일 하니까."
연극을 한다고 말할 때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좋겠다고 부럽다고. 자기는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간다고.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꿈을 찾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날마다 뿌듯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나를 위해 무언가 도전해 본 일이 없다. 그래서 연극은 특별했고 특별한 선택을 하고 꿈을 찾아 살아가는 스무 살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내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한테 집중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알바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 뭐지? 뭐야. 장미꽃...."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나는 목놓아 울었다.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울면서 생각했다. 뭐지? 왜 울고 있는 거야?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는 소리 내어 울어본 일이 거의 없다. 슬픔은 표현하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생각했고 눈물이 나면 꾹 참고 속으로 울었다. 억울하고 분해도 나는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눈물은 사치였고 절망이었고 비참함이었다. 기뻐서 울어 본 일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내가 장미꽃 앞에서 울었다.
내 눈물은 억울함이었다.
"뭐야 장미꽃을 왜 이제야 본거야? 아까 아침에도 못 봤잖아? 장미꽃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나 뭐하면서 살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내 눈물은 절망이었다.
"이러려고 열심히 사는 거야?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면 뭐가 달라질까?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아?"
내 눈물은 외로움이었다.
"같이 울어 줄 사람이 없잖아. 혼자 버티고 있는 삶이 정말 외롭다."
내 눈물은 두려움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장미가 핀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살고 있는데 대학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연극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스무 살, 나는 인생을 뒤흔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 시선을 느끼지 않고 펑펑 울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며 지나갔지만 괜찮았다. 다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나 정말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어떻게 됐다. 어떻게 된 게 맞다.
스무 살, 뜨거운 눈물은 내가 살아온 20년을 애도하는 눈물이었다. 장미꽃을 보고 난 뒤 나는 잠시 떨어져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 거다. 그랬더니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었고 어른이 된 내가 이 세상에 똑바로 설 수 있는 힘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억울하지 않았다. 절망하지 않았다. 외롭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나는 당당하게 일어나서 걸었고 내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 미친 듯이 연극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