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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메신저 Aug 09. 2020

얘는 왜 이렇게 갖고 싶은 게 많아?

생일이 기쁘지 않은 아이

엄마, 이제 엄마 생일 지났으니까
다음은 내 생일이지?
엄마 생일 아직 안 지났거든?    


생일이 그렇게 기다려지는 날인가? 내 생일날 자기 생일을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여보 주아는 생일이 그렇게 좋을까?”

“당연하지 나도 생일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래? 나는 왜 안 그러지?”


생일 전날이라서 잠이 안 오는 딸. 그 마음을 이해하는 신랑과 이해가 안 되는 나.

그러고 나서 나는 우울했다. 나는 왜 내 생일이 기다려지지도 않고 생일이라고 축하를 받아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던 걸까? 생일 전날이라 기뻐하는 딸을 보면서 왜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있을까? 나 나쁜 엄마 아니야?


내 생일은 딱 세 번 기억난다.

첫 번째는 생일잔치에 초대한 친구들이 많이 오지 않았던 열 살 열한 살 즈음의 생일. 휑하게 생일잔치를 치러야 했던 속상했던 날.

두 번째는 열아홉 살 생일날.

고3 쉬는 시간 창문 옆 맨 앞자리에서 따듯하게 자고 있었다. 아마 수업시간에 이어서 푹 자고 있었겠지?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표향미 생일 축하해!!!”

2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케이크를 들고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아 뭐야.” 

잠이 덜 깬 척.

친구들은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줬고 교실에 있던 친구들도 같이 축하해줬다. 그리고 종이 울렸다. 친구들은 반으로 돌아갔고 동시에 나는 눈물이 터졌다.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내 생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동받은 생일 축하였다.      



내 생일은 늘 동생들과 함께였다. 우리 삼 남매는 6월 14,17,18일 연이어 생일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생일잔치를 같이 했고 케이크도 한 개, 촛불도 같이 불거나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불었다. 내 생일이 아니라 우리 생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생일이 특별히 기다려지는 날이 아니었다. 생일이라서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원래부터 갖고 싶은 게 없던 착한 딸이었으니까. 기억에 남는 생일 선물도 여태껏 하나도 없다. 내 나이 서른다섯. 기억나는 생일 선물이 없다니..     


“엄마 나 어린이날에는 이거.
칭찬스티커 다 모으면 이거.
생일에는 세 개 고르면 안 될까?
크리스마스 때는 이거.
그리고 또..... 언제 선물 받을 수 있어?”     


때마다 받고 싶은 선물도 분명하고 선물 받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가 마냥 귀엽다가도 금세 이해할 수 없어진다.


얘는 왜 이렇게 갖고 싶은 게 많은 거야?


나는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게 없던 아이로 유명하다. 엄마한테 사고 싶다는 말도 해본 일이 거의 없다. 그런 나를 어른들은 착하다고 말했고 사고 싶은 게 많고 갖고 싶은 게 많던 내 동생한테는 욕심이 많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나는 왜 갖고 싶은 게 없었을까? 갖고 싶은 게 없었던 게 아니라 갖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던 거 아닐까? 우리 집은 가난했으니까.

부모님은 어렵게 우리 삼 남매를 키웠고, 엄마는 특히 막내를 임신했을 때 날마다 뭘 먹어야 할지도 걱정했단다. 우리 엄마는 세 끼니를 꼭 챙겨주는 엄마였기 때문에 다 커서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그 정도로 우리가 어려웠던 건가? 하고 생각했던 날이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걸 알았던 거 같다. 엄마의 푸념이나 한탄을 넘겨듣지 않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로 컸다. 어른들이 보기에 향미는 기특한 딸, 착한 딸이었지만 확실히 아이답게 자라지는 못했던 거다. 어린 시절 아이답게 자라지 못한 나는 내 아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가 됐다. 아이다움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아이를 이해하는 일이 진심으로 어렵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기쁘지 않았다. 나를 낳고 1년도 되지 않아 아빠와 이혼을 생각했다. 이렇게 사느니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나한테 털어놓은 엄마 이야기... 그때 나는 어렴풋이 알았다. 내가 생일을 기뻐하지 않았던 이유를.


어린 시절, 정확히 초등학교 2학년 통지표에는 ‘다소 우울감이 있는’ 아이로 나를 표현한 글이 있다. 아홉 살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우울감이 있는 아이로 보였을까? 작년인가? 책장 정리를 하다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봤는데 거기에 쓰인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적극적' '밝고 씩씩하고' '꿈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고' '리더십' '책임감' '친교' 따위의 밝은 표현은 물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가득했다.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면서 잃어버렸던 나를 찾은 거 같아서 혼자 한참을 울었다.



8월 9일은 내 딸 생일이다. 나는 딸이 받고 싶다던 선물을 준비했고 아주 예쁜 케이크도 샀다. 아침이 되면 기쁜 마음으로 생일을 축하하려고 한다. 하지만 8월 8일 지금, 내 마음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 작년 아이 생일 전날, 나는 많이 아팠다.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이 나를 힘들게 했고 오늘은 감정이 많이 힘들다. 아이 생일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딸을 많이 부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빠 엄마한테 받는 사랑, 축하와 축복, 많은 사람들한테 받는 사랑, 선물.. 모든 걸 가진 내 아이가 부럽다.

나도 아빠 엄마한테 갖고 싶은 걸 마음껏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나만 주인공인 생일잔치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한 번이라도 살아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서글펐나 보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꽃을 샀다. 내가 고생해서 아이를 낳은 날. 아이의 생일과 함께 나의 수고를 축복하고 싶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바로 딸을 낳은 거다. 내가 맘껏 그날을 축하하고 기뻐하기로 했다.

두 딸 중에 큰 딸은 특히 나랑 많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딸을 보며 나를 본다. 내 인생 스승이 되어 나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내 아이. 내가 했던 어떤 일보다,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사람보다 나를 나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고귀한 존재. 오늘은 마음껏 아이의 생일을 축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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