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환경> 연재 3
겨울 아침의 어둠은 천천히 사라진다. 아이들은 해가 뜨는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집을 나선다. 독일 대부분의 학교가 8시 이전에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빠르게 하나의 불빛으로 자전거들이 움직인다. 아이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다. 거리가 조금 있어 나는 매일 운전을 해서 아이를 학교로 데려다 주는데, 학생들의 지나가는 자전거들을 안전하게 기다려 주느라 시간을 꽤 할애한다.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양보하면 상대편에서 보답의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자전거에 탄 아이들도 손짓으로 저마다의 신호를 보내준다. 건널목을 걷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예쁜 안녕은 어른의 그것과는 조금 더 기분이 좋다. 세상에 대한 고마움을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눈빛이 있다.
고마움을 경험한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 배려를 받는다는 것의 다른 이름. 어린이를 존중하는 사회. 독일의 일상에서 어린이들이 거치는 환경에 짙게 깔린 마음가짐이다. 얼마 전 나는 독일인 친구에게 한국의 어린이 제한 구역 (No Kids Zone)에 대해 알려줬다. 친구는 몹시 놀랐다. 금연 구역인 노스모크존 (No Smoke Zone), 알레르기 유발 방지를 막기 위한 프리 넛츠 존 (Free Nuts Zone)이 아닌, 어린이는 올 수 없는 장소를, 그리고 아이들을 거부하는 노키즈 슬로건에 대해서. 이미 많은 논쟁과 논란을 낳고 여전히 수긍하기 어려운 이 표식을 보는 어린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랄 것인가? 어른들이 어린이의 행동을 미리 판단하고 부정한 후 답을 내린 노키즈존에서 어린이들은 전혀 공동체의 배려를 경험할 수 없다. 주홍 글씨를 보는 어린이들은 포용이 아닌 거절을, 배려가 아닌 거부를 먼저 알아버리기 때문이다.
사진 : “한 송이 바나나들은 종종 외로워요!” 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가져가도 되는 바나나 바구니가 슈퍼마켓 한쪽에 있다. (직접 촬영)
독일에서 아이를 양육하면서 많은 곳에서 어린이를 향한 배려를 만나고 있다. 마트 한쪽에는 커다란 바나나 송이에서 떨어져 나와 팔지는 못하지만, 성한 바나나를 바구니에 모아 놓고 아이들을 위해 가져가세요, 라고 써놓는다. 또 아이와 함께 고기 코너에 가면 소시지를 하나씩 준다. 카페에 가면 커피를 마시는 부모와 함께 마시라고 우유 거품을 담은 잔을 하나 더 주기도 한다. 일상에서의 배려의 눈높이 너머에는 어린이를 향하는 마음이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작은 하나를 더 마련하는 마음, 작은 자리를 한 자리 더 따스하게 데워 놓는 마음이다. 유난하지 않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배려의 마음으로 어린이들의 마음은 데워진다. 배려를 경험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삶의 고리에서 어린이들의 삶은 순환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교육을 시작하면서부터 그 순환은 돌봄으로 증명된다.
독일의 돌봄 중, 가장 가까이에서 돌봄의 미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교육이다. 교육과 보육을 가르지 않고, 가정과 학교를 아우르는 돌봄의 장소가 있다. 교육과 돌봄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대부분 12시 전후로 수업을 끝내는데, 공립 초등학교든 사립이든, 정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학교와 가까운 지역 내의 방과 후 돌봄 시설로 간다. Hort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방과 후 학생 보육 기관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학교보다 이곳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어린이 보육의 공동체의 거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Hort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지역 내 유치원 혹은 지역 내 어린이, 청소년 회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센터, 숲 놀이터, 학교 안의 방과 후 센터 등이 학교와 연결되어 돌봄의 역할을 한다. 시설은 무료는 아니고 시에 일정의 금액을 내면 된다. 여기서는 아이들이 따로 학원에 가지 않아도 만들기, 목공, 축구, 체스, 요가 등을 할 수 있다. 다양한 활동 이외에 아이들이 센터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학교 숙제를 하는 시간을 따로 갖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학교 숙제를 해야 하는데, 이 시간은 항상 규칙적이고, 숙제를 돌봐주는 일은 지역 시니어 봉사자들이 맡는다. 학교 과제를 공유하는 보육의 영역에서 인적 돌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여기서 공동체의 협력이 어린이와 공존한다. 사회가 품는 어린이들은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자라난다.
어린이들은 돌봄 공동체 속에서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나의 자녀들도 이곳에서 따스한 돌봄을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린이를 건강하게 돌본다면 아이들은 따뜻하고 예쁜 안녕을 건넬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고마움을 경험하는 마음의 고리는 마치 배려를 빚지는 것처럼 보답의 약속을 남겨둔다. 공동체로써의 돌봄 속 경험의 기억은 유년 시절을 아름답게 만들어 내고, 이로부터 다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할 것이다. 사회가 나를 배려한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 돌봄이 잘 작용하는 환경 속에서 어린이의 마음은 희망적으로 자라 날 것이다. 그러한 어린이의 눈빛은 더 따뜻하게 빛날 수밖에.
박소진 (시인, 글쓰기 교사) 매경 우버칼럼니스트
《어린이와 환경》이라는 주제로 교육-학교-가정-교사-자연-지역사회 등 아이들을 둘러싼 독일의 다양한 환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시인의 눈으로 따뜻하게 전합니다.
<어린이와 환경> 연재3 돌봄을 경험하는 일 :: 우버 人사이트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