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본다. 도시의 어디에서부터 길이 시작되는지, 그리고 골목은 어디서출발하는지. 유럽 도시 곳곳의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 처음에는 모두 엇비슷하게 생긴 건물도 도시의 중심으로 갈수록 어느새 더욱더 높은 채도와 짙은 명도를 가진 건물로 스며드는 듯하다. 좁고 넓은 골목이 한데 모이는 느낌을 주는 도시 안쪽으로 진입할 때마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의 농도가 짙어진다. 점점 중심으로 닿아가는 느낌인데, 마치 방사형으로 퍼진, 보이지 않는 반원의 지붕이 도시를 덮고 있고 모든 길이 가장 가운데를 향하는 것 같다. 안으로 깊이깊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골목은 안으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밖에서 안으로 열리기도 한다. 오래된 성을 두른 성곽이 잘 보존된 도시의 경우는 더욱 특별하다. 무너진 성곽을 따라 걸으면 저절로 옛 도시 안의 공간으로 진입한다. 이때, 돌담으로 둘러쳐진 작은 경계는 길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돌담의 끝, 도시의 심장으로 진입하는 골목의 시작, 이런 곳의 끝에는 길을 지나온 사람이 모이는 작고 큰 공간이 언제나 있다.
목조 건물의 골조와 바닥에서 튼튼히 받치고 있는 주춧돌, 그리고 그것을 덮는 기둥은 거의 반세기마다 색이 더해져 세월의 두께와 너비만큼 선명해지고, 더욱 견고하게 지키던 사람들의 노력을 기념한다. 오래된 성곽과 성의 아치를 지나는 벽에는 세월의 가치를 보존했던 날의 기록과 함께 지켜가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청동판이 붙어 있다. 자연스럽게 성곽의 안쪽으로 진입하고, 또 성곽의 안쪽 문으로 계속 걸어간다. 곧 눈 앞에 펼쳐지는 공간에 오래된 미래가 공존하는 광장이 펼쳐진다. 상상하기에도 너무 먼, 오래된 세월이 잔뜩 묻어있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된다.
사진 1 : 도시 Idstein의 구시가지로 진입하는 성곽의 돌담, 본인 촬영
우리가 흔히 ‘구시가지’라고 부르는 알트 슈타트(die Altstadt)는 도시 어디에나 있다. 안으로 나 있는 길은 시간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방향으로 나 있는 듯 하다. 또 도시 외곽에서 심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자연스럽게 오래된 시간 속에 깊이 패 있는 주름 위를 걷는 것 같다. 누구나 도시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다. 걷다 보면 닿는다. 구시가지의 전경은 성곽이 끝나는 곳에 마주한 커다란 아치형 돌문을 지나 눈 앞에 펼쳐지는데 이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생경한 아름다움이다. 도시 속 가장 오래된 구시가지 중에서도 외부에서 가장 중심으로 열리는 길, 공동의 장소로 향하는 골목의 모음, 목적지는 한 곳으로 귀결되고 그곳에 다다랐을 때 펼쳐지는 광장을 제일 좋아한다.
마침내 닿는 광장에는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함께 존재한다. 이 시공간은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흐른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광장에 이르는 길을 종종 공평하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것은 오래된 시간을 현재의 우리가 나누기 위해서는 타인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께 순간을 향유하는 지금을 함께 느껴가는 것이다. 우리가 보존하는 아름다운 것들, 이 골목 끝에서 바라보는 오래된 건물, 그것의 푸르고 노랗게 칠해진 지붕, 부서졌지만 다시 일으켜졌을 돌담과 여전히 흘러나오는 우물과 분수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얼굴과 마음이 편안하다.
사진 2: 도시 Idstein의 구시가지 앞 작은 광장 전경, 본인 촬영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동의 것을 함께 공유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함께 지켜오는 중에는 꽤 많은 것이 비슷해진다. 표정이 가장 그렇다. 오래된 아름다움이 짙은 공간 속에서 우리는 여기에 여전히 존재하는 다행스러운 안도를 느낀다. 사람들의 표정은 절망보다 희망이 가득해 보인다. 울음 대신 웃음이 있다. 분주함 대신 쉼이 있다. 회색의 변주곡 대신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리듬 가득한 기타 소리가 흐른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골목을 걷다 이내 닿게 된 사람들에게 허락된 순간의 환희다. 그들의 표정을 보며 광장 한복판에 있는 교회 첨탑을 본다. 이내 정각이 되어 종소리가 하늘색 나팔을 불 듯 울려 퍼지고 광장에 흩어질 때, 아주 오래된 시간을 관통하며 지나왔을 삶의 메시지도 함께 퍼져나간다.
아마도 맨손으로 짜 맞춰졌을 돌계단의 끝이 이제는 반질반질 하다. 여기에는 천 년 동안 똑같이 생긴 돌멩이를 보던 사람들이 있었고, 나무의 나이테가 점점 늘어가는 것을 목격하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러한 나무의 생을 기억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했던 오래된 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모든 시간을 기억하며 걸을 만한 길이 있다. 우리는 이곳을 걸을 수 있다. 아주 오래된 미래를 걷는 지금 순간,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 길은 누구에게나 뚫려 있고, 가장 나중에 닿는 곳은 각자의 시간을 고단하고 힘겹게 걸어온 사람을 위한 작은 쉼터이다. 그리고 쉼에 닿는 모든 발걸음은 시대를 가장 다정하게 관통해 오던 시절의 증명이다.
사진 3 : 도시 Idstein의 구시가지 앞 작은 광장 전경, 본인 촬영
매일 경제에 연재하는 <박소진 시인의 독일 에세이> 오늘자 신작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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