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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Aug 05. 2021

공감은 꼬리가 긴 그림자



예고되는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자주 그 범위를 벗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상황과 예측의 결과는 생각지도 못한 미래를 가져온다. 사건 속에는 삶이 있고 희로애락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 흐름은 물결을 만드는 파도처럼 사람의 마음을 더 깊게 때리고 파고든다. 올해 여름, 얼마 전 독일 서북부의 도시에 비가 멈추지 않고 내렸다. 뉴스에서는 100년 만의 재해라고 했다. 일세기 동안 쉽게 범람한 적 없던 도시는 예고된 바 이상의 강수량을 기록했고,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터전을 일구던 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가족은 서로를 잃어버렸다. 일상은 복귀의 기약을 쉽게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현지 언론에서는 폐허가 된 집과 농장과 건물과 도로의 모습과 함께 사람의 쏟아지는 눈물을 내보냈다. 




사진 출처 : https://de.euronews.com/


평생 일구던 땅 위에서 갑작스러운 종말을 맞은 울음소리는 나를 울렸다. 비단 비가 퍼부은 곳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이었고, 그곳에 나의 가족이 있거나 아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왜 나는 그들의 상실을 아파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함께 공통된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이유가 나의 삶의 모양과 우리의 그것이 마음으로 닿아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삶의 장면 속에는 다양한 감정의 파도가 친다. 너와 나, 이 개인적인 낱말보다 조금 더 무거운 ‘우리’라는 단어 위에 소통과 공감을 올려놓고 줄타기시키는 이유는 바로 스스로 외롭지 않기 위해서 일지 모르겠다. 지금의 나를 어디선가 이해하고 함께 웃고 울어줄 나와 비슷한 내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많은 사람의 일상을 읽을 수 있는 시대이다. 여러 다양한 소식이 들려오고, 듣는 삶이다. 전해지는 소식, 들려오는 이야기, 삶의 얽히고설킨 매듭의 장면은 삶의 조각난 파편에 맺히는 실루엣이다. 함께 사는 우리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고 엉켜 서 있듯 친숙하고 낯선 이의 소식은 매 순간 사람과 사람에게 구전된다. 뚜렷한 원인과 결과라는 발생의 기원을 논리적으로 따질 수 있는 사건도 있고, 우연함이 장악하는 슬프고 아픈 사건도 가득하다. 도덕성을 상실하고 미움의 무게를 따져야 하는 낯선 장면도 많다. 반면 늘 행복한 모습이 가득한 웃음도 있다. 추운 날씨이지만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날처럼 따스한 소식도, 또 돌 사이를 비집고 핀 민들레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장면도 있다. 존중과 배려가 가득해 절로 미소가 가득 해지는 삶의 모습도 많다. 이렇게 우리에게 맴돌다 맺히는 소식의 공통점을 생각한다. 그것을 나는 이렇게 부른다. 공감이라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고. 


 올림픽이 한창이다. 왜 우리는 어째서 전혀 만나보지도 않은 티브이 속 선수를 가슴 터지도록 응원하는가? 왜 우리는 SNS에서 해시태그를 달며 각종 이슈가 되는 캠페인에 동참하는가? 왜 우리는 하루를 기록하고 자신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표현하는가? 수없이 다양한 모양의 삶 속에서 누군가의 의식은 공감을 갈망하게 돕는다. 아무도 예고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삶의 우연 속에서도 언제나 외롭기만 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가진 공감의 그림자가 서로 겹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지 않는 태양에 밤늦도록 그림자는 길어져 끝까지 서로의 삶 위에 포개지고 싶다. 그림자를 만드는 감정의 작은 불씨를 하나씩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와 나, 작은 불씨의 합은 더 큰 그림자를 비쳐줄 수 있다. 


파도가 몰아치고 날카로운 절벽에 세상 사람이 한꺼번에 서 있는 듯했던 코로나 위기의 진흙 밭을 철벅철벅 걸어 나오던 우리는 더 자주 서로에게 마음을 접붙였다.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것보다 그곳에서 앞으로 계속 걸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마음의 그림자로 너와 나를 포개는 따스한 장면 속에 살아보는 일. 각자의 방식으로 결국 자신의 삶을 갈구하는 울음과 희망은 어떠한 절망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방식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아름답게 전염되고 있다. 



사진 출처 : https://www.op-online.de/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하는 박소진 시인의 에세이 8월 3일자

더 많은 에세이를 읽으실 수 있어요 

매일경제 박소진시인의 에세이 -> 바로가기 링크 : 우버人사이트 매일경제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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