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제 키만한 고깔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선다. 이제 커서 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었어, 라는전통적 기념 장면이다. 공교육이 시작되는 첫 공립학교 입학식의 주인공, 어린이들은 각자 자신의 고깔을 들고 새로운 책가방을 메고 한껏 상기된 얼굴로 서 있다. 고깔은 아이가 좋아하는 색이나 캐릭터로 만들었고, 이 행사의 주인공인 아이의 이름도 한 땀 한 땀 디자인해 붙어 있다. 가장 신선한 축복을 쏟아 지는 이맘쯤, 많은 아이들이 새로운 시작에 선다.
8월은 절정과 막이 동시에 내려지는 듯한 묘한 일상의 곡선을 지나는 듯 하다. 마치 모든 것이 절정으로 치닫다가 급변하는, 그래서 일상의 흥분된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롤러코스터처럼 가변적인 스펙트럼이 있다. 게다가 요즘 이곳 유럽의 여름은 여전한 코로나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생기와 활력이 곳곳에 묻어난다. 특히 8월은 일 년 중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시작이 되는 달이기도 해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한국에서는 3월이 신학기를 맞는 시기라 겨울과 봄이 겹쳐 만물이 솟아 오르듯 싱그럽고, 또 시간 앞에 기지개피는 느낌이 있다. 반면, 독일의 신학기는 여름이 끝나감과 동시에 시작한다. 한 해의 허리에서 새로움이 꽃핀다. 그래서 요즘 더욱이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아진다.
독일에서 어린이를 향한 인식은 제도와 문화를 넘어선 모두가 동의하고 인정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닮았다. 이 마음의 근원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한다. 이곳의 어린이를 생각하자니 이곳 어른들의 결이 또 다른 거울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이에게 제일 큰 미소를 보내는 어른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분명 누군가를 향하는 다정한 마음이 있다. 태도에 그러한 마음이 흠집 없이 배어 있다. 그래서 그러한 어른의 거울에 비치는 아이는 따뜻한 마음을 가득 받고 산다. 거울에는 어린이를 향한 미소가 가득 차 있다. 이 미소에는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듬뿍 들어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다. 특별히 독일에서는 이 시선을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데, 바로 공간이다.
독일의 대부분의 공간에는 아이를 위한 한 켠이 마련되어 있다. 독일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대학교 도서관을 자주 갔다. 그곳에서 나는 얼마나 놀랐었던가. 고요함과 난처함이 공존하는 도서관 한가운데 가장 크게 자리잡은 것은 커다란 책상도, 질서 정연한 의자와 큰 책상이 아닌, 유아들이 놀 수 있는 작은 간이 놀이터였다. 딱딱한 의자가 아닌 누울 수도 있는 빈백 (bean bag)이 있고, 기어 다니는 유아를 위해 울타리로 둘러 쌓인 낮은 아기 침대도 있었다. 물론 어린이 책상과 의자도 함께 있었다. 그 공간에서 엄마는 자유롭다. 시청, 시립 도서관 등 관공서는 물론 상업적인 공간에도 마찬가지다. 병원, 레스토랑은 물론, 대학교 학생 식당, 규모가 크고 작은 카페테리아, 안경점에도, 여행사 사무실에도, 하물며 카센터에서도. 어디에나 어린이의 자리는 있다. 책상이 없어도 아이들의 그림책을 꽂아두는 위한 책꽂이는 있다. 수많은 곳, 그 어떤 곳에서도 어린이의 공간을 찾지 못한 적이 없다.
어린이는 어른 의자가 아닌 자신의 앉은키에 맞는 의자에 앉아 제 눈높이에 맞는 순간을 즐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른들의 부드러운 미소가 공존한다. 도대체 어떤 유대감으로부터 이것이 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이 가능할까? 어린이는 어른과 함께 지금을 즐기고, 같은 시공간에서 아이의 감정을 부모가 고스란히 받아 순간을 공유한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 속에 설 때면 나는 어째 작아지면서 한편으로 독일의 이러한 태도가 부러워진다. 계몽 이후부터 수 세기를 겪으며, 어린이는 존중 받기 충분한 가장 존재임을 원초적으로 느끼고 교육해왔을 테지만 이렇듯 실제로 일상 속에서 목격할 때 마다 감탄과 환기를 주기 충분하다. 어른인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약간의 쉼을 너희들도 함께 우리와 느끼자고. 이러한 어른의 존중과 배려가 아이에게 전해지는 순간, 삶의 깊은 곳부터 경험이 쌓여 자신만의 장면을 만들어갈 어린이의 생은 더욱 반짝일 것이다.
카페에 가면 커피를 주문하는 엄마를 위해 아이를 위한 따뜻한 우유 거품을 함께 제공한다. 커피잔과 커피 받침도 어른의 그것과 비슷한 크기이다. 같은 테이블에서 소중한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배려의 마음은 공간 이외에도 일상 곳곳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동일한 인격체인 어린이에게 어른은 한 켠을 위한 틈을 내주고, 그들의 미소와 배려의 행동은 이 사회에 존중으로 엮일 유대감을 주기 충분하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독일, 이라는 것이 비단 학습과 의료에 관한 제도적 복지뿐이 아닌 그 속에 배어있는 사랑과 존중 속에 살았던, 어른 자신이 가지는 유년 기억의 반증일 지도 모른다. 긴 세대 동안 어린이의 자리가 계속 생기고, 더욱 넓어지기를 바란다. 너른 마음 속에 나, 너, 우리라는 이름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서로 각자의 꿈을 안고 시도를 하며 세계의 조각을 하나 하나 맞춰 넓혀 갈 것이다. 아주 작은 어린이의 의자가 놓인 곳으로부터 시작되는 연대가 당연해지길 바란다. 사랑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존중과 배려의 거울을 통한 모두의 미소가 어린이를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직한 미래의 우리를 위해.
지난달 매일경제에 발표한 에세이 연재 <어린이를 위한 배려의 곁>을 브런치에도 함께 옮깁니다.
어린이를 위한 배려의 곁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