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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Jul 15. 2021

가끔 먼지, 가끔 우주, 가끔은 사랑이 이런 모양





나풀거리는 작은 먼지는  속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아주 작은 것이 날아다니네, 싶은 순간이 있다. 햇빛이 내리는 작은  줄기 안에서, 까만  책상 위에 홀로 켜놓은 주황빛 전구 아래에서, 어두컴컴한 이불 동굴 속에서 꺼낸 손전등 앞으로 비치는  속에서 작고 작은 소멸의 모양이 날아다닌다.  손톱만  편린의 것은 저기에도 있었고, 여기에도 있었다. 빛은 자신이 호위하는 세상에서 가장 볼품없고, 작고 가벼운 것을 품는다. 어떤 각도로 비추든 환한 공간에서 퍼져가는 반짝이는 섬광 속에 엉켜 붙은 먼지 덩이가 봄날의 꽃씨처럼 날아다닌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손잡이를 돌려 창문을 연다. 증기가 가득 채워진 밥솥의 압력을 뽑아내는 ,  틈에서 쉬익, 소리가 터져 나오더니 작은  같은 바람이 인다.  속에 공기가 들어온다. 창을 활짝 열었다. 밤새 비가 오더니 축축해졌다. 새벽의 이슬이 땅별처럼 내려앉았다. 방안의 먼지들이 바람이 하얗게 빛을 내며 일렁이는 쪽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간다. 빛이 창을 넘어 방으로 쏟아지니 이곳에 이만한 먼지가 가득했었나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 밀알만큼의 한숨이 떠다니다가 창을 넘어  찬란한 곳으로 날아간다. 이불 정리를 하다 말고 침대 위에 눕는다.  위로 일상의 조각이 눈의 결정처럼 떠다니는 것을 보다 이내 천장에 눈을 맞춘다.   


  , 오늘처럼 해가 집안으로 쏟아질 때가 있었다. 그때 아이는 스핑클로  작은 지갑을 탁자 위에서 가지고 놀았는데, 글쎄, 아이가 반짝이는 지갑을 이리저리 옮길  천장과  벽에 반사되어 스미는 빛은 잊히지 않는다. 반짝이는 스핑클은 천장에  있는 우주의 빛이었다. 나는 소파에 누워 벽에 비친 찬란한 빛을 호수에  아지랑이를 바라보듯 넋을 잃고 보았다. 지금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위를 나풀거리며 유영하는 먼지와 스핑클이 만드는 분홍빛 우주는 성격이 같다. 빛이 이곳을 비추기 전에는 영영   없는 존재이다. 반대로 밝아지는 곳에 있는 모든 것은 빛으로 하여금 그것을 바로 보게 하거나 더욱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존재는 가끔 꽃씨처럼 날아다니고, 아이의 스핑클 지갑이 되기도 하고, 결코 아무것도   없는 먼지가 되기도 한다.   


곁에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그곳을 밝게 비추지 않았던 것뿐이다. 무채색의 음영이 밝아지는 순간, 그제야 우리는 원래  자리에 있던 존재를 바로   있거나, 영원히 알지 못할 순간을 눈앞에 둔다. 나는 이때를 사랑의 모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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