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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Jul 02. 2021

우린 얼마나 서로를 안지 못했나


포옹의 색깔이 공중에 무지개처럼 퍼져나갔다. 흰 벽에 비친 아침의 빛을 그림자로 만든다. 물빛이 맺히는 절벽 같다고 생각을 했다. 아슬아슬하게 수직으로 깎인 각도에 닿은 후 부서져 버리는 찬란한 빛이다. 부서지는 찰나에는 경쾌하고 따뜻한 그림자가 생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를 안을 때 나타나는 품속의 그림자와 같았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를 잊고 사는 척했다. 너와 나  일 미터 남짓한 거리는 우주 속 어딘가를 떠다니는 행성만큼이나 가늠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가면 오랫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른 보폭, 그러니까 딱 한 발자국 남짓 뒤로 물러섰다. 서로는 서로를 만날 때면 발 뒤꿈치를 톡톡 쳤다. 그러면서도 넘어져도 닿지 못할, 영영 안길 수 없는 서로의 품을 기대하며 웃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는 희고 노랗고 검은 살갗이 부딪힐 다정한 장소는 없었다. 


다행히 길은 많이 건조해졌다. 비가 멈추다가도 이내 다시 내렸다. 그래서 땅이 마를 틈이 없었다. 이런 축축함은 지루하게 계속되었는데, 그러다 언제 적인지 모르게 땅은 두둑하게 단단해져 갔다. 그동안 굳게 닫힌 카페가 다시 오픈했다. 음식점의 야외 테이블에서는 이제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에도 길가 베이커리 카페마다 노인들은 빈 의자 없이 자리를 채웠다. 그들은 파라솔의 경사를 따라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보며 빗속에서도 커피를 마셨다. 커피잔에도 비가 튀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우기가 아닌 이곳에 수년 내내 비가 왔지만 이제 더 내리지 않을 모양이다. 땅은 금세 말랐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보폭보다 한 폭 더 가까이 서로에게 닿았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옷에 묻은 아주 작은 케첩 자국을 볼 수 있다. 


갑자기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것은 또 다른 태도 앞에 서는 일이다. 적지 않은 말수를 가진 사람은 더욱 말을 잃어가고, 세상을 방랑하던 사람은 갈 곳을 잃었다.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생전 처음 만나는 감정에 너무 빨리 외로워졌다. 많은 사람은 오랫동안 울었다. 울음이 터지지 않은 사람도 울음을 참았고, 울지 못하는 사람도 슬픔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감정을 타고 비처럼 내렸다. 비는 어디에나 내렸고, 누구나 맞았다. 아무도 우산은 없었다. 그러다 조금씩 비를 피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예전과는 너무나 다른 지금을 어떻게든 마주해 보려고 노력한다. 각자의 방식을 조금 바꿔 자신을 지킨다. 


카페 테이블에 앉은 노인의 은색의 머리칼 위로 또르르 물방울이 흘러 어깨에 닿았다. 앞에 있던 그의 친구가 그를 껴안는다. 거기에서 베개 같은 포근함이 어깨를 타고 허리를 타고 몽글몽글하게 퍼져나갔다. 내가 이 년 만에 보는 처음의 포옹이었다. 오늘의 포옹이 있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의 어깨를 기억했을까. 서로를 절대로 잊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기를 썼을까. 서로 말하지 않아도 모두의 마음을 알겠다는 너른 등 뒤로 앞에 선 이의 손이 포개진다. 어깨 위에는 얼굴이 낮에 뜬 환한 달처럼 눈부시다. 그의 얼굴 위로 무지개가 떴다. 비는 그쳤고, 땅은 벌써 굳었기 때문에 다행히 우리는 이제 더 많은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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