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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May 12. 2021

날씨의 은유, Aprilwetter







일 년 전, 이맘때 즈음, 빨갛게 익은, 아기 손가락만 한 딸기를 따러 다녔다. 짧은 소매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작년 5월은 참 따뜻해서 산책로에도 장미가 일찍 봉우리를 터뜨렸고, 튤립은 피자마자 일찌감치 다음 계절에 필 꽃에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시간을 등에 업은 계절은 늘 갑자기 훅, 하고 다가 온다. 언제나 자연의 무엇을 듬뿍 담아 온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연속적인 자연스러움은 어차피 다시 여기에 올 다음 풍경에 대해 당연한 기대를 하게 한다. 지금의 여기에서 오늘의 날씨를 가늠하거나, 지난 계절의 오늘을 복기하거나, 또 아주 오래전 그 언제 적의 이야기를 들출 수 있을 잔잔한 정경 속에 있는 것, 찬란하고도 고요한 봄의 계절 5월이 왔다.



그런데 올해 5월은 조금 쌀쌀하다. 초겨울에 입을 법한 패딩 점퍼를 입어야 한다니! “5월인데 너무 춥잖아? 올해는 겨울이 정말 길다. 날씨가 정말 왜 이럴까?”라는 말을 수시로 한다. 어떤 날은 반소매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고, 그다음 날은 다시 털모자를 쓴 사람이 보였다. 여름에 제철일 과실을 쉬이 기대하기 어렵게 체리 나무나 사과나무의 꽃은 너무 쉽게 비에 젖어 떨어졌다. 4월에 이미 가열차게 겪어야 했던 날씨가 5월이 되어서도 여전하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 있자니 무료할 틈도 없다.



지금의 날씨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예년의 봄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조는 망중한을 닮은 기분 좋은 무료함을 떠올렸다. 종종 나는 이것을 포근한 무료함이라고 말하곤 한다. 포근한 무료함 속, 지금을 기억하라는 두드림이 있다. 마치 격렬한 움직임 같은 것, 계속 깨어있으라는 신호 같은 것이다. 그것은 4월, 5월을 관통하는 중에 자주 찾아오는데, 이를 부르는 독일어 단어가 있다. ‘4월의 날씨’, ‘아프릴 베터’라고 독일식으로 발음한다. 영어로는 April shower, 에이프릴 샤워라고도 한다. 비가 오다 그치고, 번개가 치다가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하게 복귀하는 태양, 잠잠해지다가 다시 찾아와, 계속 전진해나가는 바람. 아프릴 베터 기간에는 꽤 시원하고 청량한 공기가 가득하다. 이 시절, 잠깐 내린 비 끝에 개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하루는 최고 온도 영상 9도, 이튿날은 최고 온도 27도,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날이 계속된다.



매일 변화하는 날씨 덕분에, 시원하고, 태양은 높고 하늘은 푸르며, 그러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소나기와 짧은 뇌우를 하루에도 여러 번, 꽤 긴 기간 동안 경험한다. 물론 눈도 내린다. 4월에 이곳을 훑고 지나가야 했던 분주한 보챔이 5월까지 이어진다. 아프릴 베터 속에는 포근한 무료함을 깨트리는 유쾌한 삶의 리듬이 숨어 있다. 이 변덕스러운 날씨는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가득한 삶의 모습과 꽤 닮았다. 언제고 다시 찾아올 희망 같은 마음도, 다시 으스러지는 기대도, 또다시 꿋꿋이 버티고 걸어가는 용기가 날씨의 기분의 오름과 내림 사이에 맺혀있다. 요란하고, 때론 설레는 날씨가 일상을 훑고 가면 아주 짧고 무거운 적막이 찾아온다. 나는 이것을 잠깐 ‘쉬어가는 삶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겨울이 지나 꽃과 햇빛에 취한 계절 속에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 좋은 소란을 닮았으니까. 이것이 지나면, 아기 병아리같이 노란 유채꽃은 어른 키만큼 자라나 있고, 호수 위는 언제 바람이 불었냐는 듯, 더욱더 잠잠하며, 강한 뇌우에도 살아남은 여린 들꽃이 여전히 사랑스럽게 그 자리에 있다. 아프릴 베터는 경쾌한 삶의 리듬이자 훌륭한 문학적 영감을 주기 충분하다.


<사진 1 : Aprilwetter 가 지나간 후 한창인 유채꽃 밭, 본인촬영>


삶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는 것은 한 개인의 경험에 관한 역사에 따라, 또 지금 무엇을 보고 느끼는 것에 따라 나만의 은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포근한 봄빛 속을 강렬하게 뚫고 가는 기분 좋은 자극 속에 삶의 다양한 장면을 꺼내 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요동치는 감정과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우박은 어딘가 닮았으며, 다시 오르막을 올라 삶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소나기 후 금세 깨끗이 갠 하늘이다. 지금 이곳의 공기는 청량하고 약간 쌀쌀하다. 갑자기 비바람이 올 것 같기도, 또 바람이 빠르게 구름을 밀어내 말간 해가 얼굴을 내밀 것 같다. 내일은 또 어떤 날씨를 기대해볼까, 포근한 무료함이 또 얼마나 유쾌하고 경쾌하게 나를 위한 춤을 출까.


<사진 2 : Schlosspark, Bad Homburg, 본인촬영>



글의 원문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로 가시면 됩니다.

날씨의 은유, Aprilwetter - 매일경제 (mk.co.kr)





매일경제신문에 연재하는 에세이 중, 오늘 5월 12일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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