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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진 Jun 01. 2021

빛의 요람 속에서 쏟아지는 웃음

매일경제 박소진 시인의 독일 에세이

 


여름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눈 부신 태양 아래, 푸른 빛의 호위 속에서 한 시절을 나른하게 보내는 여름이라는 계절은 유럽에서 세대를 초월하고 누구나 바라는 풍경이다. 먹구름이 가득한 잿빛의 궂은 날씨를 겨우내 겪고, 그렇다고 해서 예년보다 춥고 비가 많이 내려 여전히 겨울 외투를 벗지 못하는 요즘인데, 마음만큼은 긴 고독의 터널을 천천히 빠져나와 온몸으로 따뜻한 햇볕 속에 있는 느낌이다. 코로나로 돌아 오지 않을 것 같던 일상이 거짓말처럼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독일은 대부분의 도시가 활기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다. 규제 완화를 실행하는 날짜의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 테스트를 하고 음성 결과를 받으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카페는 물론 레스토랑에서 영업점 내 식사는 불가능했던 이곳에서 거의 여섯 달 만에 가능하게 된 요즘의 상황이 있기까지 모두는 고군분투했다. 많은 이가 고통스러웠고, 상실을 경험했다. 그러다 락다운의 효과와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며 점점 감염률이 줄어들었고, 다시 일상으로의 회전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는 독일에서 아름다운 고성으로 유명한 유수한 관광 도시이자 대학 도시인 하이델베르크(Heidelberg)가 있다. 오래된 시절과 현재가 공존하며 여전히 역사를 만드는 유럽의 도시의 광장은 노천카페와 중앙에 놓인 분수대, 작은 계단, 그곳에 모인 사람들로 사각의 공간이 가득 채워진다. 구시가지가 큰 경우, 골목 몇 개만 지나면 광장이 펼쳐지는데, 광장 안쪽의 건물은 덧칠을 여러 번 한 파스텔색의 벽이 다채롭고, 구리로 만들어져 녹이 멋스럽게 슬어버린 앤틱한 간판이 조화롭게 오래된 역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스 신화에나 나올 법한 신을 닮은 동상이 서 있는 분수, 정교한 조각 사이로 뿜어 나오는 물줄기, 노천카페의 라탄 의자와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유리컵이 내리쬐는 햇살을 반사해 눈부시다. 뻗어 나가는 빛이 분수의 물줄기에 부딪힐 때마다 작지만 찬란한 무지개가 만들어진다. 나는 이러한 광장을 빛의 요람이라고 불렀다.

<5월 어느 토요일의 하이델베르크 광장 모습, 사진 : 본인 촬영>




 코로나 테스트 후, 음성 결과지를 가지고 오랜만에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고, 여기 저기를 구경하고 광장을 걸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고 낯선 서로는 지금의 행복에 합의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을까? 초록에 비친 햇빛과 함께 여름만 기다리던 마음, 찬란한 햇빛 속에서의 휴양, 광장에서 햇빛 아래 일광욕을 하러 나오는 발걸음, 그러한 일상의 습관을 헤집어 놓았던 록다운의 절망감이 한꺼번에 사라진 듯한 날이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건강했고, 일상의 순간을 향유하길 원했다. 오후의 노천카페에는 청춘들이 가득했다. 날씨는 완벽했고 광장은 온기로 가득 메워졌다. 축제도 아닌데 매일이 하루하루가 중인 날 같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커피’와 ‘아이스크림 접시’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를 친밀하게 나눴다. 얼굴에는 연신 안도하는 듯한 편안한 웃음이 가득했다. 하이델베르크 성 (Heidelberger Schloss)에서도 웃음은 빛을 타고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서로 웃었다. 늘 보아오던 곳에서 낯설게 느끼는 ‘다시 찾은 일상’을 한껏 즐기는 순간을 목격하다 보니 코로나가 마치 종결된 느낌도 들었다. 그것은 감염자 수치가 더욱 많이 줄어 들어 다시 새로운 일상을 차츰 찾아가는 요즘의 흐름이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고, 동시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웃음과 일상이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하이델베르크 성의 망루에 오른 사람들. 5월 22일 토요일, 코로나로 인해 닫혔던 성문이 다시 개방되었다. 사진 : 본인 촬영>



다시 찾게 될 일상

 행복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다. 안전하고 풍족했고, 고독하지 않던 일상에서 찾던 작은 행복과 오래도록 외롭고 고난이었던 상황에서 찾게 되는 작은 행복의 크기는 서로 견줄 수 없다. 각자의 모양에 담긴 의미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후자에 가까운 요즘 일상의 작은 행복은 세계의 우리가 함께 처절했던 마음의 연대에 맞춰 더욱 벅차오른다. 곳곳에 스며든 작은 것에 담긴 소중한 순간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차츰차츰 찾아가는 지금, 광장의 햇살과 노천카페에서의 식사와 커피 한 잔, 하늘 아래 케이크 한 조각, 서로의 친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언제나 그토록 가장 바라는 일상이었다.

 그러므로 요즘의 광경이 더욱 소중하다. 결핍과 절망이 길어 올린 충분함과 안도감이 힘껏 말한다. “지금만큼은 그저 사치스러워도 좋아.” 일상을 다시 찾은 광장, 빛의 요람 속에 가득 모인 사람들에게서 마구 쏟아지는 웃음을 모아 본다. 일상에 가득 채워진 완벽한 웃음이 봄과 여름을 가르는 5월의 끝자락에서 다시 찾게 된 행복을 줍는다. 아이의 웃음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이 아니라, 오래도록 무언가를 기다렸다가 결국 드디어 만나게 된 순간의 설렘과 환희의 웃음, 기쁨과 함께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웃음, 이것은 더욱 우리의 일상을 ‘일상답게’ 기대하게 할, 아주 작지만 거대한 마음의 신호탄이다.


<골목이 다시 북적인다. 락다운이 일부 해제된 하이델베르크. 사진 : 본인 촬영>




매일경제 5월 28일자  박소진 시인의 독일 에세이 글입니다. 

원본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800729?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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