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소진 Jul 01. 2021

친밀하고 낯선

여름의 바다와 호수,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




설렘이 여름을 닮아 뜨겁게 일렁인다. 여름 특가 광고 속의 카약, 보트, 캠핑용품과 물놀이용품이 마트마다 가득하다. 주말이면 근교 호수는 나가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다시 일상을 회복해가는 듯하다. 초록의 숲과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나도 여름철의 여행에 대해 생각한다. 이 계절의 활기가 일상을 설레게 한다. 어쩌면 이것은 안도감이다. 지금을 향유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안락함에 대한 안전한 보장이다. 태양이 몰고 오는 더위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는 듯, 여름은 절대로 천천히 스며들지 않는다. 갑자기 찾아온 더위, 아프리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는 가끔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아래에 앉아 선선하게 머문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빠르게 와 빛을 공평하게 퍼뜨리고, 오랫동안 꽉 잡아둔다. 그래서 하루의 일몰은 여름의 빛은 긴 그림자를 가장 늦게까지 곁에 둘 수 있다. 


‘하지’ 태양이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 절기이다. 나는 ‘하지’를 일 년 중 가장 정직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수직으로 뻗은 태양이 가장 가까이에 온 것 같다. 가장 뜨겁게 비추는 찌는 듯한 계절의 빛은 곧장 앞으로 뻗어 나간다. 우리네 절기인 ‘하지’처럼 독일에서도 특정한 날짜에 여름이 시작된다. 6월 21일, ‘Anfang des Sommers’ 여름의 시작일 정도로 우리말로 번역된다. 해마다 하루 이틀 정도의 오차가 있으나 이날을 보통 여름의 시작으로 기념한다. 사람들은 데워진 대지 위를 시원하게 적실 푸른 물결을 생각하며, 바다나 호수로 향하기 시작한다. 북쪽으로만 바닷길이 열려 있는 이곳 독일에서는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호수에서 여름 수영을 만끽한다. 이런 호수는 꽤 바다처럼 넓고, 경우에 따라 모래사장도 펼쳐진다.  


바다와 호수를 일컫는 독일어 말, See. 이 단어는 동일하게 발음되고 쓴다. 대신 바다와 호수라는 의미의 구분을 남성형, 여성형 관사를 앞에 붙여 한다. 이 의미는 비단 여자와 남자의 생물학적 요소로 구분 짓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성의 사유를 넘어 더욱더 깊은 철학적 성찰을 꺼내 준다. 우리가 부르는 것, 즉 명명하는 대상 혹은 불려지는 것, 명명되어지는 것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근거한 사유부터 시작한다. 대상의 특징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일부터 시작하는 일. 그래서 남성, 여성, 중성을 뜻하는 라틴어 알파벳의 음소로 내뱉어지는 소리의 단순함보다 각각의 관사가 특정하는 대상 안에 품어진 성격을 더욱 생각하게 된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둘 다 갖는 동일 단어, See. der See, 그리고 die See. 단어 See는 동일하게  ‘제-‘라고 발음하고, 동일하게 쓴다. 바다와 호수 동일한 이 단어는 단지 ‘물’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바다를 말하기 위해 여성성을 담은 관사 die를 붙이고, 호수를 일컫기 위해 남성 관사 der를 사용한다. 그래서 같은 See라고 말을 해도, 관사를 꼭 사용해야 하며 그 사용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구분된다. 즉 바다와 호수를 분명히 명명하기 위해서는 der나 die를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 된다. 왜 바다라는 거대한 대양으로 퍼져나가는 공간을 여성형의 관사를 사용했는지, 그 반대의 경우 호수는 왜 남성형인지 정확한 근원은 없다. 단지 사유에 달려있다. 자연스럽게 굳어진 법칙처럼 “그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문학적 상상력으로 꽤 근거 있고 유쾌한 상상을 해볼 수 있다. 바다와 호수의 친밀하고 낯선 관계를. 


작년, 독일 북해를 다녀왔다. 독일 남부와 중부의 남부의 호수도 종종 간다. 확연히 다른 것은 바다와 호수에 이는 물결의 성격이다. 호수에는 내 쪽에서 뭔가 나지막하게 읊조리면 부드럽게 응답하는 듯한 파문이 인다. 파도 대신 파문이 있다. 안전한 기분이 든다. 그 이유는 밀물과 썰물이 만드는 긴장보다도 진동이 그려지는 원의 친밀한 곡선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호수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밀고 오는 소란스러운 파도는 없지만 잔잔한 물빛이 내뱉는 하품처럼, 세계를 둘러싼 고요한 정적이 있다. 파도처럼 밀며 들어오는 분주한 열정은 없지만, 포근함이 잔잔하게 떠다닌다. 이러한 포근함을 남성성의 근거로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조금 더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지만 소란스럽게 넘실거리지 않을 물결을 가졌기 때문일까? 호수를 보면 불안보다는 공감을 떠올리는 건 왜일까? 눈을 뗄 수 없을 찰나의 순간에도 밀려오는 파도가 부는 바다는 왜 여성형의 관사를 붙이는 것인지. 


사진 1: 독일 북해 (Nordsee), 본인 촬영 


문학에서의 바다의 여성성은 생명 잉태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징적 사유에 더해 남성성을 갖는 호수를 함께 생각하거나 또는 대상이 갖는 특징에 관해 자신만의 해석은 자유롭게 하다보면 개인의 상상력이 문학적 사유 안에서 커다란 자유로움을 주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결이 만드는 소리와 파문의 진동과 파도가 밀어오는 물결의 소리는 개인에게 어떤 감각을 열어주는가? 사유의 차이는 대상에 맺히는 상상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 놓는다. 바다와 호수가 시원하게 열려있는 여름, 태양에 비치는 물결 위 하얀 빛 줄기 위에 지금 순간에만 향유할 수 있는 사유를 비춰본다. 여기 있는 지금이 또 어딘가로 흘러갈 수도, 혹은 이곳에 영원히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사유가 촉발한 상상이 호수 위에 기분 좋은 풍경을 만들며 떠 있다. 우리의 주변, 수많은 존재에 대한 작은 생각이 상상의 자유의 물꼬를 트는 일이 많아졌으면 한다. 각각의 존재가 가진 성질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습관이다. 바야흐로 물의 정경을 담은 계절, 여름의 시작이다. 


사진 2 : 트라이스 호르로페어 제 (Trais-Horloffer See), 본인촬영 






이전 16화 가끔 먼지, 가끔 우주, 가끔은 사랑이 이런 모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