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따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득 내가 엄마랑 닮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내 그림자는 나를 아득히 유년 시절로 데려가 엄마 앞에 늘어뜨린다. 나의 지금은 유독 그때의 엄마를 닮았다. 매일 오전 나는 너무 바쁘다. 아이들의 도시락, 마스크, 모자며 목도리를 챙겨야 하는 것들을 늘 깜빡 잊으니까. 현관 밖을 나가다 다시 들어오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자주 맨발이고, 잠옷 바람이다. 분주하게 손에 챙겨 다시 아이들에게 건넬 때면, 어째서 항상 내 앞에는 몇십 년도 지난 엄마의 눈빛이 생생히 생각날까. 늘 급해 보이던 엄마는 내복 바람으로 나를 챙겼다. 가장 빠르게 나를 도울 수 있던 방법이었을 거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직전, 내복 바람의 엄마는 슬리퍼도 채 다 신지 못한 채 손을 뻗어 무엇인가를 건네준다. 그럼에도 내가 모든 것을 챙기지 못했을 때에는 내복 위에다 점퍼만 빨리 걸치고 빠르게 신발주머니를 가져다줬었는데.
생각해보면 모두 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슬리퍼 윗등을 밟고 아이들에게 잊은 물건을 건넬 때면, 엄마, 잠옷 바람에 그게 뭐야, 빨리 들어가,라고 타박했던 말이 기억의 귓바퀴를 타고 콕콕 마음에 박힌다. 그게 너무나 미안해서, 엄마 나도 엄마처럼 나도 이렇게 잠옷바람인걸,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더 바쁘게 아이들을 배웅한다. 잠옷 바람으로 엄마가 되는 시간이 좋다. 엄마가 대충 밟다 만 슬리퍼를 밟고 팔을 뻗어 아이들이 잊은 물건을 건네는 아침에, 그렇게 내복 바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