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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느린 글, 그 안에서 만난 나

by 김정락

예전에는 글을 쓸 때 조급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금세 사라질 것 같아, 정리도 없이 쏟아내듯 써 내려갔다. 연필을 흐릿하게 놀리거나, 글씨를 갈기며 따라잡으려 애썼다. 그런데 그렇게 쓴 글은 결국 나조차도 알아볼 수 없었다. 글씨도 흐트러졌고, 처음 품었던 생각은 어딘가로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생각은 글보다 앞서 달리지만, 예전만큼 초조하지는 않다. 떠오른 생각이 사라졌다고 해서 당황하지도 않는다. 잠시 멈추고 기다리면, 비슷한 생각이나 어쩌면 더 나은 무언가가 다시 떠오른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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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글은 생각을 완전히 따라오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선명했던 이미지도 막상 글로 옮기면 흐릿해지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렀을 때는 실패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순간에 글쓰기가 가장 살아 있다고 느낀다. 글은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 아니라, 생각을 탐색하고 발견하게 만드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글을 쓰는 태도에도 변화를 주었다. 예전에는 ‘잘 쓰는 것’이 중요했다. 문장이 매끄럽고, 논리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솔직하게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솔직한 글은 때때로 거칠고 투박하다. 감추고 싶은 감정이나 망설이던 생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통해 나의 부족함을, 흔들림을, 때로는 비겁함까지도 마주했다.


그 솔직함은 단순히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써보려는 태도다.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조심스럽게 적은 한 문장, 솔직하게 꺼낸 하나의 고백이, 때로는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글이 자기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듯, 우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며 쓰다 보면, 처음에는 몰랐던 진심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되었고, 글쓰기가 나를 변화시킨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결국, 글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완성도 높은 글이 아니라, 나 자신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솔직하게 쓰려는 그 마음이,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정확히 바라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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