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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과 샷 사이

비어 있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by 김정락

우리는 라운드를 돌며 수십 번의 샷을 한다. 드라이버를 잡고, 아이언을 바꾸고, 퍼터로 마무리하면서, 마치 정해진 순서를 따르듯 필드를 걸어간다. 그러나 그중 실제로 공을 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대부분 사람은 그것이 골프의 전부인 듯 착각하지만, 막상 계산해보면 공을 치는 시간은 라운드 전체에서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훨씬 적다. 실제로 우리의 대부분 시간은 샷과 샷 사이, 그 중간의 흐름 속에서 흘러간다.


우리는 그사이의 시간 속에서 걷고, 숨을 고르고, 어깨를 펴거나 구부리기도 한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거나 괜히 클럽을 만지작거리면서, 다음 샷에 대한 기대 혹은 불안과 마주친다. 눈앞의 바람, 뒤에서 들려오는 동반자의 농담, 그 와중에 불쑥 떠오르는 지난 홀의 실수가 그 공간을 채운다. 그리고 그렇게 메워진 잠시의 멈춤은, 어느새 마음을 조용히 졸여온다.


이 짧은 흐름은 골프가 우리에게 슬며시 던져주는 내면의 여지다. 하지만 그 숨결 같은 순간이 주는 기회를 우리는 자주 흘려보낸다. 대부분 사람은 그 빈틈을 견디지 못한다. 무언가로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듯, 끊임없이 생각으로, 후회로, 또는 성급한 계획으로 머리를 어지럽힌다.


“왜 그렇게 쳤지?”

“다음 홀은 반드시 만회해야 해.”

“방금 자세가 왜 그랬을까?”


샷 하나에 얽매여 자신을 몰아세우는 순간, 이 중간 구간은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소모의 시간이 되어버린다. 불안과 의욕이 동시에 고개를 들고, 마음은 이미 공이 떠난 방향과는 무관한 곳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전환의 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에 달려 있다. 샷은 한 번의 스윙으로 끝나지만, 그사이 흐름은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그 안에는 감정이 머무르고, 루틴이 흔들리며, 자아가 시험받는다. 그 머묾의 지점에서 우리는 다음 샷을 준비하는 동시에,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회복한다. 어쩌면 다음 샷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전의 나를 수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 비워진 순간은 단순히 빈 시간도, 의미 없는 공백도 아니다. 그것은 자리를 비워둔 채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드물고도 소중한 마음의 틈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유가 필요해”라는 말은, 알고 보면 바로 이런 정신의 쉼표를 갈망하는 말이다.

삶의 속도가 빠를수록, 이 완충의 순간들은 줄어든다. 쉼표 없는 음악이 숨 막히고, 여백 없는 글이 어지럽듯, 멈춤 없는 삶은 결국 지속 불가능한 반복일 뿐이다.

음악은 음표가 아니라 쉼표로 완성되고, 글은 문장 사이의 공간이 문장의 깊이를 만든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숨 고를 틈이 없다면, 샷은 기술의 반복일 뿐이다.

리듬이 없다면 경기는 단조롭고, 리듬을 읽을 줄 모르면 진짜 경기는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말한다.

“삶엔 여유가 필요해.”

“숨 쉴 틈이 필요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비워진 시간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헛된 시간처럼 느껴져서 자꾸만 뭔가로 덧칠하려 한다. 휴식 시간에 이메일을 확인하고, 산책 중에도 미래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가만히 있는 시간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삶. 우리는 정적조차 허용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압박한다.


하지만 비어 있음은 의미 없는 구멍이 아니다. 그 멈춤의 여백은 의미가 태어나는 틈이다. 샷과 샷 사이, 그 침묵의 시간에야말로 진짜 경기의 리듬이 있고, 그 리듬을 읽을 수 있을 때, 골프는 달라진다. 그리고 삶도, 마찬가지로 달라진다.

빈 곳은 견뎌야 할 공허가 아니다. 그 자리가 있어야, 그 외에 채우는 것들이 비로소 빛난다. 빛은 언제나 어둠 사이에서 더 선명해지고, 소리는 침묵 사이에서 더 또렷하게 들린다.


우리는 그 머무름에서 자신을 다듬고, 다짐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그러니 이 비워진 순간들을 흘려보내지 말자. 멈춤을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경기를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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