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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사라지고, 이야기는 남는다

샷은 지나가고 나의 이야기는 머문다

by 김정락

그 순간을 몸으로 느낀다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샷을 치는 순간, 손끝에 남는 미세한 울림, 귓가를 스치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 어깨에 맴도는 묘한 긴장감. 그 모든 감각이 합쳐져, ‘좋았다’라는 확신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걸 가장 솔직한 증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상하다.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그 확신은 흐릿해진다.

기억 속의 좋은 샷은 점점 더 아름답게 포장되고, 아쉬웠던 샷은 더 뼈아프게 각인된다.

분명 손끝이 ‘좋다’라고 속삭였는데,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튈 때도 많다.

반대로, 불안한 마음으로 휘둘렀던 샷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그린을 감싸며 멈추어 설 때도 있다.


감각은 순간의 신호일 뿐, 완벽한 답이 아니다.

그리고 기억은 그 신호 위에, 나만의 해석을 덧칠한다. 우리는 그 해석을 ‘진실’이라 믿고 살아간다. 때로는 그 믿음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때로는 나를 속인다.


골프를 오래 할수록, 이 사실을 더 자주 마주친다.

샷의 손끝 감각, 스치는 바람, 공의 궤적, 모두가 분명한 듯 하지만 결국 남는 건 희미한 기억뿐이다. 결국, 감각도 완벽하지 않고, 기억도 진실만을 남기지는 않는다.


스윙 노트 작성.jpg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건, 그 순간의 감각을 고스란히 옮겨 적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감각을 다시 들여다보고, 기억을 천천히 의심하며, 그 사이에서 진짜 '나'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적어 내려갈 때, 비로소 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은 사라지고, 감각도 흐려지지만, 글로 남긴 이야기만은 오래 남는다.

그 이야기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나를 붙잡아준다.

그리고 그 흔적 위에 또다시 새로운 나를 쌓아갈 수 있다.


기억은 감각을 지나간다.

감각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글로 남긴 그 한 줄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당신의 골프’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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