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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락 Apr 27. 2023

골프 첫 순간과 몰입 과정을 통한 변화

 이 글은 LIFESTYLE LAB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이며, LIFESTYLE LAB VOL6. 기재된 내용입니다.


은은한 핑크빛 석양이 내려앉은 저녁, 골프연습장 한쪽 구석에서 나는 스윙 연습에 한창이다. 며칠 전 다친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고, 손바닥이 그립과 한 몸이 되어 찢기고 벗겨져 쓰라린다. 고통은 심하지만 나는 스윙을 멈출 수 없다. 아니, 멈추지 않는다. 차라리 손이 아픈 게 낫다. 나의 더 큰 고통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안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를 떨치기 위한 몸부림이 내 손에 난 상처가 아닐까. 나의 연습 스윙은 보이는 완벽함을 갈구하는 게 아니라 내적 성장 바라며 자신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분투의 정성이다.      

나에게는 늘 나와 친밀하게 붙어있으려는 친구가 있다. 그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친구다. 이 녀석은 나보다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가까운 거리에서 날 지켜보다가 냉큼 달려온다. 심지어 오지 말라고 거부해도 너무나 스스로가 당당하게, 유들유들하게 내 허리를 잡아채 나에게로 쏙 안겨버린다. 특히, 이 녀석은 내가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어떤 시도를 작정할 때 더 심하게 나에게 달라붙는다. 이 친구의 이름은 불안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다. 어림잡아 30년 전이지만, 나에게 ‘첫 골프 필드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고 잊을 수 없다. 설렘도 있었지만, 불안, 초조, 긴장이 더 많았다. 한쪽 마음만 드러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처음 시도였지만 인정받아 노력한 성과를 뽐내고 놀라게 해 주고 싶었다. 나 ‘이정도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불안한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항상 나는 이 공식을 벗어날 수가 없다. 욕구와 불안은 비례한다는 나만의 공식이었다.     


이런 나의 성격은 ‘첫 골프 경험’ 하루 전 준비과정에서 나를 철저하게 옭아맸다. 불안이 불편과 불쾌로 변질하는 속도만큼 나는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자는 고급스러워 보이면서도 누구나 알만한, 옷은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신발과 볼도 최고급으로 그리고 속옷까지 마치 이런 것들로 날 포장하지 않으면 내면에 칼처럼 날을 세운 감정이 튀어나올까 봐, 나를 잠식시켜버릴까 봐, 두려웠다.     

준비물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누웠지만, 걱정으로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머릿속은 기대감과 두려움으로 골프 코스를 마음으로 구체화하며 나름 전략을 세워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불안한 생각은 계속 불안을 더 키울 뿐 뚜렷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잠을 이루지 못해 몸은 고단하고 지치고, 정신은 몽롱하고 흐릿흐릿해져 마음은 더 심란했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다음날 일어나게 되었다.     


골프 코스는 골프연습장과 달랐다. 그 광경은 거대한 산에 나무, 풀, 물로 이루어진 웅장함, 탁 트인 넓은 초록의 해방감, 자연과 현실이 어우러진 신비감으로 압도했다. 이 순간부터 불안한 감정은 더 요동쳤다. 골프 복장으로 갈아입고 내 발에 밟히는 잔디의 푹신푹신한 감촉이 몸 전체가 땅에서 살짝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 나를 땅속으로 끄집어들이는 듯 불안감이 극도로 솟구쳤다. 나의 첫 골프 필드 경험은 ‘불안’과 ‘설렘’의 경계에 미묘하게 서 있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골프장은 불안과 설렘의 공간이다. 첫 티샷을 위해 티 박스에 올라서는 순간 심장이 벌렁거려 튀어나올 듯한 느낌을 다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시선이 오롯이 나에게 향하는 부담감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볼 하나, 한 번의 스윙에 집중을 요구하면서도 불안한 감정으로 인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생생한 기억이 뚜렷하다. 처음 경험한 필드의 세계는 내가 평생 풀어야 할 숙제를 안겨주었다.     


숙제는 불안을 처리하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스며들 때마다 다스리기 위해 애썼다.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일상생활과 달리 골프만큼은 자신 있었고 ‘누구보다 잘 친다’고 생각했다. 불안한 감정은 매번 반복되었다. 하지만, 나는 불안을 다루는 연습이라고 관점을 바꿔봤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필드 출전 횟수가 많을수록, 자신감은 상승했다. 하지만 나는 또 알았다. 사람들이 내게 거는 기대가 커지는 만큼 불안도 커졌다. 결국, 나의 필드는 골프와의 경쟁이 아니라 불안과의 경쟁공간이었다.     


파올로 코엘료1)는 ‘인간의 탄생과 함께 불안도 태어난다. 불안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는 불안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불안 자체는 사람에게서 지울 수 없는 감정이다. 나는 서서히 불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불안은 결코 없앨 수 없고, 자신감은 불안과는 무관한 감정이었다. 나는 감정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을 골프를 통해 배워갔다. 불안은 관심을 두지 않으며, 자신감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나 자신만의 기준이 세워졌다. 내가 골프로 바라는 바를 이루려면, 골프를 내 평생 동반자로 곁에 두려면, 나에게 고착된 불안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잊고 지내야 한다. 불안은 잘 다독거려서 데려가며 자신감은 자신감대로 키워나간다. 자신을 마주해야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골프에 한정 짓지 말고 자기 일상생활에 적용해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나와 섞이고 변화가 일어난다.     



골프장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내 삶을 크게 바꿔갔다. 샷을 위해 티 박스에 섰을 때 불안을 데려가면서도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고 되뇌었다. 불안이라는 이 친구랑 긴 시간 함께하면서 이 녀석의 정체를 이해했고, 이해하면 할수록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를 키우거나, 일을 하거나, 사람을 만날 때 늘 함께 하는 이 친구는 나의 편안함을 아는지 얌전하게 굴었다. 즉,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나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자신감을 얻게 되면서 골프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고 행동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지 않고 이 시간 안에서 언더파를 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여유가 생기면서 관찰력도 좋아졌다. 최선을 다해 정성을 쏟으면 몰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경험도 하곤 했다. 연습하면서 볼을 얼마나 쳤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내가 스윙을 얼마나 한 것인지 기억이 없었다. 그저 행동만 반복했을 뿐이었다.


필드에서는 고수면서도 행동과 언어의 격이 떨어지는 사람을 가끔 마주친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동반자를 이기기 위해 볼을 살짝 옮겨 놓거나, 심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한 저질스러운 화법을 쓴다거나, 규칙을 바꿔 자기 이익을 실현하려는 위선을 보인다거나, 심지어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 발언도 우리는 겪어봤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상대 의도대로 이성을 잃고 무너지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상황을 당하면 울화통이 터지고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평소 나는 극한 훈련을 통해 몸에 체화된 고통의 흔적, 불안으로 단련된 내면의 강인함을 키웠다. 이 모든 것이 고통과 불안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받아들인 그 시점부터 내 것이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불안과 함께 성장했다. 아울러 신사의 스포츠, 골프에서 정말 신사답게 플레이한다는 것은 선(善)을 지키려는 내적 기준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 또한 나는 알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골프와 나 자신의 성장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골프장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한다. 골프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상황은 인생을 살며 겪는 세상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혀 내가 예상치 못한 일들, 사람, 날씨, 환경과 같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늘 등장한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 가능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에서부터 비롯된다.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는 지금, 나는 자신을 다시 돌아본다. 나를 반성하고 점검하여 다시 판단해보려 한다. 나의 습관의 근원은 불안에서 시작된 의식적 행동이며, 행동의 반복이 느닷없는 많은 상황을 무시해버릴 용기까지 길러줬다. 골프를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한 나에게 필드에서 겪는 경험적 지식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닥칠 많은 것들을 대비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에게 골프가 그렇듯, 불안이 이러했듯,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무언가가, 어떤 감정이 자신을 키우는 근원이 되기를 바란다.


1) 아크라문서. 파올로 코엘료. 공보경 옮김. 2013. 문학동네


#불안 #골프장 #몰입 #설렘 #롯데 #롯데라이프스타일랩 


https://culture.lotteshopping.com/community/magazine/view.do?webMgznSeqno=43


글_김정락 일러스트_아울다

LIFESTYLE LAB 매거진 VOL.6

기획.편집.제작 어라운드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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