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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Nov 19. 2022

보글보글 마법의 수프

잘가라. 미녀의 꿈이여

육아 7년 차. 임신까지 합치면 8년 차가 된다.

아이를 낳기 전엔 나름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땐 화장하지 않으면 절대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매일매일 다른 옷 다른 액세서리를 둘렀다. 

그리고 아웃핏이 완벽해야 그날 하루 일도 잘 되었다. 

그래, 그땐 그랬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아니 아이 둘을 낳기 전까지는.

나는 400대 1이라는 우연의 확률을 뚫어가며 일란성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유전자는 실로 놀라웠다. 아이들은 예민한 엄마아빠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났다.

잠을 안 잤다. 조리원에서는 잠도 잘 잔다는 아이들은 그곳을 나오자마자 이상하게도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울어댔다.

그때마다 자다 말고 일어나 분유를 타고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고 무한 반복했다.

아이들이 깨서 울 때는 정말 같이 울고 싶었다. 미치도록 자고 싶었다. 

늘 잠이 부족한 엄마이니 거울을 보며 내 옷매무새를 다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머리는 질끈 묶고 옷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을 입고, 어쩌다 씻을 시간이 생기면 얼굴에 아무거나 바르고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나를 볼 시간에 두 아이들을 봤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 보니 매일 하던 화장도 어떤 날 하게 되면 어색하기만 했고, 

그렇게 매일 찍어대던 셀카도 영 만족스럽지 않아 확인 후 바로 지워버리기 일쑤였다.

출산 전에는 36개월까지는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고 꼭 엄마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쌍둥이 육아를 하다 보니 내가 아주 사치스러운 신념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20개월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고 결정하고, 결심했다. 달라지기로. 예뻐지기로. 날씬해지기로.

그리고 골프연습장을 등록하고, 집 앞에 새로 생긴 필라테스에도 기웃거렸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욕심을 좀 과하게 부린 듯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때.

아이들이 감기 기운이 있어 소아과에 갔는데, 곧 크리스마스라 데스크에 큰 오르골이 

여러 개 돌아가고 있었다. 

자기 키 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뭔가가 돌아가니 그걸 보고 싶은 아이들은 안아달라고 난리였다.

안 안아주면 난동을 부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에 차례로 안아줬다. 여러 번 많이. 

그리고 다음날 필라테스에 달려가 폼 폴러로 옆구리를 마사지를 했다. 열심히 세게. 

또 다음날은 골프장에 달려가 채를 휘둘렀다. 공의 거리가 잘 안 나와 화를 내며 휘둘렀다. 몸을 쥐어짜듯.

그리고 사달이 났다.

그날 이상하게 기침이 나고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다. 

옆구리가 유난히 욱신거려 우선은 감기에 근육통인 줄 알고 한의원에 가서 찜질도 하고 약을 타 왔다. 

하지만 계속 아팠다. 뭔가 이상해서 정형외과를 갔다.

엑스레이를 보시고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갈비뼈가 부러졌네요. 여기요. 어~ 그런데 하나가 더 부러졌네요. 갈비뼈 두 대에 금이 갔습니다!!"

쌍둥이 초음파 봤을 때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 "여기 아기집이 있어요. 어~ 그런데 여기 하나 더 있네!!"

역시 난 뭘 해도 두배구나. 당시 뭔가 굉장히 서러웠다. 열심히 나를 가꿔보려고 했는데. 

그 결과가 이런 거라니.

당시 남편은 해외파병중이었다. 그래 난 쌍둥이 엄마에 바쁜 군인의 아내이다.

친정은 멀리 있었고, 가까이 있는 시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그런데 사정 얘기를 하면서 왜 이리도 눈물이 나던지. 어머님이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요양이 시작됐다.

하지만 누워도 누워 있는 거 같지 않았다. 

시어머님께 받는 병수발이란. 게다가 아이들은 엄마 사정도 모르고 안아달라고 계속 떼를 부렸다.

그렇게 거의 한 달을 역시 거울 볼 새도 없이 누워서 또는 기어 다니며 정신없이 생활했다. 

그리고 갈비뼈는 다시 붙었지만 의욕이 사라졌다. 야무진 계획 따위 세우기가 겁이 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커나갈수록 또 거기에 맞는 문젯거리와 보살핌이 따라다녔다. 그러다 누가 선물로 준 웅진 주니어 전집에서 아주 보석 같은 책을 발견했다. 

 


    

바로 <보글보글 마법의 수프>라는 제목의 책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라타투이라는 마녀가 잡지에 예쁜 여자 사진을 보고 자기도 그 여자처럼 예뻐지기 위해

마법의 수프를 만든다. 미녀가 되는 레시피가 없어 다양한 레시피를 연구한다.

그렇게 탄생된 수프. 혹시 바로 먹으면 잘 못 될 수도 있으니 시험 삼아 주변 개구리 고양이 부엉이 등에게 

미리 먹여본다. 

그리고 다음날 잔뜩 기대를 하며 금고를 열어보고 라타투이는 깜짝 놀란다.  

미녀는커녕 자기와 똑같이 생긴 리틀 라타투이가 7명씩이나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리틀마녀 일곱은 바로 소리친다. "배고파 죽겠어" "빨리 수프를 내놔"

아뿔싸. 라타투이는 미녀가 되는 꿈을 잊은 채, 새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허둥지둥 일을 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잘 가라. 사진 속의 여자여!' '잘 가라 미녀의 꿈이여!' 

내 얘기잖아?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아니, 예뻐지고 싶고,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고, 또 날씬해지고 싶지만, 육아에 지쳐 그 결심은 늘 상상으로만 끝이 나는 모든 엄마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장에 감자를 깎는 라타투이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7명의 리틀 라타투이들이 배가 고파 마녀 라타투이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 

라타투이 얼굴은 당황스럽지만, 슬프지는 않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미녀는 못 되었지만 대신 엄마가 되었으니까. 

라타투이는 오늘도 미녀가 되는 마법의 수프 대신, 리틀 라타투이를 먹일 맛있는 수프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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