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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06. 2024

서른 살이 넘은 그녀를 축하합니다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를 읽고


그녀는 목련과 닮았습니다.

흰 피부에 이목구비가 아주 올망졸망 귀엽거든요.

아,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것은 아니랍니다. 그냥 제가 생각하는 그녀의 이미지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녀가 사는 곳은 파주라는 곳이지요. 전 그곳이 낯선 곳이지만 그녀 덕분에 팥죽 맛집이 있어서 어르신들이 친구와 오손도손 그곳을 찾아가는 정감 있는 곳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오빠같이 듬직하면서도 푸바오처럼 귀여운  남동생이 하나 있고요. 딸 같은 엄마도 있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의 가족을 만나본 사람이 아닌가 하시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랍니다.

그녀의 문장에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런 이미지가 반짝하고 떠오른답니다.

아마 여러분이 읽어보셔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는 농담을 아주 잘해요. 곁에서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곳곳에서 의사 선생님들께 농담을 던지는 장면에서 그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하니까요.


[서른 살이 되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라는 책은 그녀의 첫 번째 책이랍니다. 사실은 저보다 훨씬 전부터 글을 쓰셨고 씩씩하게도 출간을 위해 출판사 투고도 여러 번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그녀가 텀블벅으로 이런 당차고 어여쁜 책을 펴내다니 대견하고 기쁩니다.


종착역인 동네 역에 내렸다. 우리 동네 전철역은 이게 문제다.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인데 심지어 어르신들보다 내장 기관이 더 늙어버린 나 같은 사람도 살고 있는 이 동네에 엘리베이터가 하나밖에 없다. 거기까지 갈 힘이 없다. 저기 저 할아버지도, 나도. 음? 그런데 어느새 회복된 나는 길고 긴 계단을 성큼성큼 오른다. 마지막 몇 계단을 남겨두었을 때 잠깐 다리에 힘이 빠졌으나 힘차게 무사히 올랐다. 잠깐 울컥했다.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힘찬 걸음이 나를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이 작은 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P.100

엄마 살아 계실 때, 전철로 버스로 갈아타기를 하시고 우리 집에 오신 날 제말했어요.
환승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릴 때 엄마도 그 무리에 끼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고.
그때 엄마는 오래된 심장 질환을 잃고 있어서 신장이 서서히 쇠약해 가는 상태였지. 그러면서 이렇게 자신의 다리로 사람들 속에 섞여 비슷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고 하셨어요.
엄마는 자신의 삶이 전과는 다르다는 걸 아프게 체감하고 계셨나 봅니다.
누구는 다를까요?
비단 정연님뿐만 아니라 중년인 의 시간도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잖아요? 점점 노년으로 가는 이 길에서 내 다리로 이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 걸 알게 될 날이 자꾸 다가오고 있습니다.

스에서 내려서 또 힘차게 걷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겉옷을 벗어두고 소파에 누워, 귀가하는 한 시간 동안의 기록을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동안 마음껏 부정적이 되었던 나를 버리고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P.100


그녀의 긍정적인 마음에 허그를 보냅니다. 그녀를 안타까워하기보다 유머러스하고 씩씩한 그녀와 함께  친구가 되어 주고 싶어서지요.


신장이 망가지면서 겪은 고혈압성 망막박리도 반년 간의 비참한 시간을 뚫고 사라졌고, 내 인생은 불행하지만 늘 기적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아파도 큰일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중간에 특별히 아픈 일이 생겨도,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했던 날들도 많았지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거든요. 그때부터 사고처럼 하나씩 튀어 오르는 사이드 메뉴들에 절대로 기죽지 않았습니다.

P.107


오히려 이 문장들이 아팠습니다.

그냥 울고불고하며 누군가에게 종주먹을 들이대었다면 이해했겠죠? 그래봤자 달라질 건 없다는 그 행간의 고통이, 그걸 아프게 받아들였을 시간이 마음을 때리네요.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요정이 되나 봅니다.

비록 모든 걸 되돌릴 수 있는 요술봉은 없지만 그녀는 더욱 삶 속으로 파고듭니다.


주문하지 않는 병이 자꾸 식탁에 놓이는 삶이니까 더 재미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아프니까 삶에서 도망쳤던 그때처럼은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플수록 더 아파 보이지 않는 나는 계속 더 삶 속으로 파고들어서 남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자꾸 아픈 일에 또 아픈 일이 더해지는 나를 당신은 지겨워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번의 사이드 메뉴 추가까지는 얘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P.111


자기 자신을 이처럼 치열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직까지 제 주변에는 없는 것 같아요. 작가를 내 주변인으로 포함시킨다면 말입니다.


살아만 있다면, 앞으로 무슨 좋은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절대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P.115


진료를 기다리는 30여 분 동안 글을 쓴다. 아픈 것은 나의 콤플렉스다. 결코 바꿀 수 없을 현실이지만, 기왕이면 아주 오래오래 이렇게 특별한 환자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가는 세월도 막을 수가 없고, 해마다 바뀌어 가는 나이도 어찌할 도리는 없지만 오늘 밤에는 팩을 해야겠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젊고 귀여운 희귀 난치병 환자로 살아야겠으니까.

P.115


어떤 무지막지한 상황에서도 그녀의 웃음이 빛납니다. 삶이 다큐로 그녀를 넘어뜨릴 때도 그녀는 유머로 그 상황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거든요. 그래서 정연씨가 좋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아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저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에게 투석환자라는 이름이 붙어있다면 엄마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 되어서 그랬다는 걸 고백합니다. 도저히 그녀의 엄마가  마음으로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자꾸 무너져 내려서 말이죠.

신장병에 대해 많이 무지한 저는 그녀의 이식 검사 입원 기를 읽으며 그녀가 겪는 아픔의 과정과 고충이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얼마나 삶에 성실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요.


세상에, 꿀맛! 위장이 차오르니 살 것 같다. 산도를 먹고 있는데 "이정연 님~" 하더니 간호사 선생님이 나타났다. 커튼을 열고는 내가 과자 먹는 모습에 놀란다. 내가 아까 배고프다고 어필을 했었거든. 근데 아무것도 없으니 물 마시며 버티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가 과자를 먹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겠어? "가방을 뒤져보니 이게 있더라고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미안해요.)

"와, 잘됐네요. 뭐 드릴 수 있는 것도 없고 걱정했는데. 얼른 드세요~"

P.201


귀여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병원 관계자들이 그녀의 귀여움 덕분에 힘든 일을 조금은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합니다.


7월 14일의 저녁 식사는 최고였다. 최악과 최고가 같은 날이라니. 어쩌면 인생도 이런 건지 모르겠다. 최악이라고 생각하고 기분이 처져 있는데, 바로 다음 순간에 최고의 일이 찾아올 수도 있는 거지!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만났다고 해서 마냥 실망하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저 평온한 마음으로 감내하고 버티면 이렇게 다음 순간 맛있는 밥을 먹을 수도 있는 거야!

P.203


바로 네~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할게요~ 하고 대답할 뻔했습니다. 젊디 젊은 그녀는 나보다 더 너른 산이 되어서 내게 조언하고 있더군요.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여 줍니다.


지금의 불행이, 영원히 지속될 리 없다. 분명하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오롯이 혼자이므로 내가 나를 먹이는 일, 씻기는 일 같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의 유일한 보호자니까. 나를 잘 돌보아 주어야지.

P204


이 문장 읽으며 혼자 있으면서 자기를 잘 돌보지 않는 내 친구에게 정연님 얘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어린 정연 작가님이 더 언니같이 얘기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말이죠. 


이렇게 어린 친구가 왜 콩팥이 망가졌을까, 하며 마취과 선생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다. 그분의 예상은 하나도 들어맞는 것이 없었다. 나는 신장이 망가질 만한 일도, 기저질환도 달리 없었다. 그 수술 대기실에서 생각했다. 세상 모든 일이 인과관계가 분명한 것이 아니구나. 몸이 망가지고 나서 아주 큰 교훈을 얻었다. 건강한 삶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지 모른다.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인생 앞에,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을 잃은 인생 앞에 절로 겸허한 마음이 되었다.

P.231


복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엄마의 인생, 차마 자식을 먼저 보낸 불쌍한 어미까지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몇 번이고 죽고 싶었지만, 몇 번이고 죽지 못했다. 한 번은 죽으려고 약을 털어 넣으려는데, 동생이 낮은 목소리로 나를 말렸다. "존경하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엄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누나야. 지금까지 누나가 씩씩하게 버티는 거 보면서, 내가 누나였다면 어땠을까를 항상 생각했어.. 나였다면 누나처럼 버티지 못했을 거야, 절대로. 내가 존경하는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정말 싫다." 나를 위해서라도 한 번만 더 참고 버텨줘. 제발."

동생이 하염없이 울었다.

P.238


딸을 만나려고 대전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이 책을 펴놓고 창피하게도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작가님을 만나면 왜 나를 울리느냐고 막 때찌해주고 싶었어요. 진짜 그러고 싶네요.

그녀의 가족이 되어서 그녀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그녀를 위해 더한 것도 해주고 싶지만 홀로 아프게 둘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힘든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2024년 새해가 되면 꽉 찬 12년의 투병 생활이 된다. 12년 동안 참 많이 아팠고, 참 많이 울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이 웃었다. 나는 늘 생의 마지막에 대해서 생각했다. 늘 해보지 못한 것들, 아쉬운 일들이 떠올라 결국은 살아기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즐거운 일들을 미루지 않고 했다.

P.240


마음 누일 곳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글을 쓰며 싱긋 웃는다. 혹시 당신이 마음 누일 곳을 찾지 못해 힘들다면, 나는 이 글로 당신을 위한 이불을 짓겠노라. 버티기 힘든 순간, 나 자신조차 버티는 이유가 되어주지 못할 때 분명 곁에 사람이든 무엇이든 나를 버티게 하는 존재가 있다.

그리고 살아만 있으면 언제든 좋은 일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믿는다. 그래서 당신을 위한 글 이불을 지으며 생각한다. 희망을 믿는 한, 우리에게는 반드시 기적처럼 좋은 날이 찾아올 것이다.


이미 그녀는 나의 글이불입니다. 그녀의 브런치 글을 읽으며 그녀의 팬이 되었듯이 내가 마음 누일 곳이 필요함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내 마음을 따북따북 그녀의 이불이 덮어주니까 말이죠.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들어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는 스스로가 싫어서 모든 관계가 싫어졌는지도 모른다는 말이 어떤 마음인지 아주 진하게 공감되기 때문이지요.


정연님의 말대로라면 요즘 는 신포도를 마구 만들어내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난 글을 못써.

나이 들어서 아무것도 새로 시작하지 못할 거야.

이런 성격에 뭘 할 수 있겠어?

그러다가 퍼뜩 정연님의 여행 이야기랑 알콩달콩 연애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시 추스릅니다.

그래. 신포도도 나름 맛있을 거야. 일단 먹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산미 가득한 커피 맛이 날지도 모르잖아.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름날의 호떡집 같은 인생이라도 내게 어울리는 나의 계절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인생도 꽤 멋질 거라 생각합니다.

바로 서른 살을 멋지게 넘긴 정연 작가님처럼 말입니다.


브런치 이웃이며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인 정연 작가님의 첫 책인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희귀 난치병인 신장병으로 투석의 삶을 이어가는 정연 작가님의 자기 인생 응원가입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치병에 절망했던 이십 대와 결코 삼십 대를 넘기지 못할 줄 알았지만 거뜬히 넘기고 깨달은 소중한 생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녀가 가진 의연함과 씩씩함이 거저 얻어진 건 아닙니다. 투병의 나날을 하루하루 살아가며 자신의 마음과 싸우고 자신의 현실과 깊이 조우했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눈곱만큼도 그녀를 도울 수 없기에 생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작가의 곁에서 응원하는 두 주먹으로 오래 있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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