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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18. 2024

사랑하지 않았던 마음은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내 방 책상에 앉아 있었다.

곁에 있는 침대에 털썩 엎드린 아들이 배가 고프다고 내게 말한다.

이것 해줄까?

그럼 저거?

이것저것 메뉴를 주워섬겨 아들은 시큰둥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심통이 났는지 엄마는 밥도 해주고 식빵에 쨈도 발라주면서 왜 라면은 한 번도 안 끓여 주는 거냐고 묻는다.

그러게.

왜 나는 아들에게 라면은 한 번도 안 끓여줄까? 일주일이면 서너 번이나 저 혼자 끓여 먹는 라면이 미웠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친정에 들어가서 2년 동안 살았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집까지 내놓은 상태에서 쫓기듯 친정으로 들어간 곳.

하루는 노총각 남동생에게 라면을 끓여줬다. 동생은 라면물이 많네, 면발이 불었네, 맛이 없네 잔소리를 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먹을 것 외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라면을 끓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었는데, 아들은 라면을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끓여 먹는다.

그런데 굳이 내가 끓여주기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오늘은 그냥 물을 올린다.

그게 뭐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아무것인 양 지니고 있고 싶지 않았다. 그냥 털어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게임하는 아들 라면까지 끓여 바쳐?"


불 앞에 서있는 내게 비아냥을 단 남편이 입을 삐죽이며 말한다.

확 마!

그럼 공부하는 아들한테만 라면을 끓여 바쳐야 옳은 거냐? (영화 '해바라기' 속 태식이 버전으로!)

내 속에서 날카로운 대답이 불쑥 치받친다.


남편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나쁜 아빠가 지닐만한 말로 내 속을 뒤집는다.

두세 시간 주야장천 게임하는 아들이 얄밉기도 했겠지.

그래도 당신은 부모고 걔는 자식이잖니!

남편아, 사랑이 아니면 다 내게로 돌아오더라.

마음속 꿍쳐놓은 밥풀떼기만 한 미움 하나.

민들레 홀씨만 한 섭섭함 하나.

그런 게 내 가슴속에 내려앉으면 질긴 잡초 마냥  마음속 정원을 휘저어 놓더라고.

그러니 우리 사랑으로 하자.

챙겨 먹이는 것도 참아주는 것도 기다려주는 것도 다 그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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