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기념하는 식사 자리에서 이런 대화가 과연 맞는 걸까?
멀리서 사는 몇몇 손자녀가 빠지고 어렵게 시간을 맞춰 열한 명이 모인 시댁 가족.
그들과의 점심 식사를 막 마무리한 참이었다.
할 얘기가 있으니 네 남매 모두 커피 한잔하자는 시동생의 제안에 자리를 옮겨 함께 모여 앉았다.
짐작한 대로 점점 대소변이 어려워진 시어머니의 거취 문제다.
파킨슨과 치매, 그리고 암의 재발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화장실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자신이 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노라고. 낮에 요양사가 방문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두 시누이가 들여다보고 있지만 역부족이고 매일 진동하는 변 냄새도 고역이라고 했다.
지난주에 남편과 함께 방문해서 겪은 일이라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다들 직장에 매여 있고 두 누이 형편도 어려우니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좋겠다며 시동생이 형제들의 의견을 묻는다.
큰아들인 남편도 그 의견에 동의했지만, 두 시누이의 생각은 달랐다. 어머니를 그런 곳에 모시고 싶지 않고 아직 인지가 있는 어머니의 성격상 얼마 못 버틸 거라고 걱정했다.
오랜 정적과 한숨 끝에 큰 시누이가 자신이 모셔가겠다고 한다. 뒤이어 큰 시누이 맞은편에 앉은 큰 고모부가 화장실도 하나뿐인 자신의 집안 사정 이야기를 하며 반대하고 나선다.
큰아들인 남편도 서로 얘기된 거 아니면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맞받았다.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침통한 표정이다.
멀찍이 떨어져 손자 손녀와 같이 앉은 시어머니의 뒷모습이 아프게 다가온다.
긴장감과 당혹감이 창밖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우리 탁자 위로 내리 꽂힌다.
함께 이야기 나누던 도중 화장실 가듯 자리를 빠져나간 막내 시누이 부부가 얼마 후에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막내가 말한다.
자신의 두 딸과 남편과 넷이 나가서 따로 의논한 끝에 엄마를 자기 집으로 모신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신혼 때도 어머니와 5년을 살았으니 지금도 자기들이 제일 무리가 없을 거라고 덧붙인다. 막내 시누이는 자기 몸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두 딸이 종종 자기를 도와 외할머니 돌봄에 손을 보태겠다는 말도 전한다. 전기가 통한 듯 마음이 찌르르하다.
억지로 그럴 것 없다면서도 시동생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 된다. 형제들 각자 형편에 맞게 어머님께 소용되는 비용을 막내 시누네로 보내기로 마무리한다.
어쨌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이면에 며느리인 내 입장이 영 편한 것은 아니다.
4년 전 이맘때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던 일이 떠오른다. 친정엄마가 점점 쇠약해지고 매주 2시간씩 걸리는 친정행에 지쳐 있던 내가 남편에게 넌지시 우리 집으로 엄마를 모셔올까, 물었다. 남편은 큰처남 눈치도 보이고 우리 집엔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어렵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를 못 할 정도의 발언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아주 서운하고 속상했다.
평생 하나밖에 없는 사위라고 아들처럼 아껴주셨는데 사위는 역시 남이구나 싶었다.
그래,
이렇게 다 자기 일로 닥쳐야 그때 마음이 무너지던 내 심정을 알겠지. 엄마를 잠깐이라도 모시자는 내 말에 반대하던 남편의 표정이 떠오른다. 동시에 가엾어 마음 아프던 시어머니의 처지가 가슴속에서 서서히 지워지는 것 같다.
형제들 모두 자신들의 상황 때문에 고민하고 주저하는 사이에 그런 해결책을 갖고 들어온 막내 시누이 가족에게 어떤 표정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저 막내 고모부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생각이다. 그랬다가도 왜 내가 미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병들고 늙는 일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임에도 우린 애써 나 몰라라 할 때가 많다. 지금은 아니니까 밀쳐놓는다. 밀쳐 놓았던 거 끌어다가 서서히 그때를 대비해도 이르지 않을 것이다. 돈 이야기만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내 한 몸 거취 문제까지도 들춰보고 예비해야겠다.
안타깝지만 우린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