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쪽지에 쓴 강아지풀

by 캐리소


새벽 등교하는 여고생

이른 자율학습 때문에 미처

도시락도 준비하지 못한 나날


딸과 엄마는 서로의 청춘을 주고받았다

점심시간 전에 따끈한 밥 먹이려는 엄마는
새끼에게 밥을 먹이듯
교문 앞에서 목을 쭉 늘이고
뜨거운 보온도시락에
꽃잎처럼 피어난 쪽지 하나

우유만 머꼬가서 배고파지
바찬이 두개뿌니라 미안하다
사라해 딸

서투른 글씨로 한 자 한 자 쓰느라
엄마의 집중한 입이 잔뜩 나왔을 것이다
삐뚤빼뚤 맞춤법을 잃어버려도

행간에 놓인 엄마 마음이
씨앗처럼 고숩다

씨앗 콕콕 쪼아 먹고 산 딸은
여적지 엄마 냄새를 따라간다

그리고도 오랫동안
엄마는 쪽지에 자기 설움을 쓰고

생활의 외로움을 쓰고
저버리는 꽃을 쓰고

손끝으로 훑어 내린 강아지풀을 썼다


사라해 딸


거기엔 엄마가 새겨진 인사말이 적혀있고
지금까지 딸 속에서 꿈틀거리는데 아무것도

자란 건 없다
강아지풀이 길가나 들에서 이름 없이 자라듯
하염없이 나는 나로 자란 것뿐이다

지금 엄마는 어디쯤 걷고 있을까
샤라락 훑는 손으로 강아지풀을 찾아 나섰을까나
어쩐지 오늘만큼은 도꼬마리 풀도 엄마를

따라왔을 것 같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새벽등교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옆에 바짝 붙은 부속고등학교였지요.

무슨 특별활동은 아니었는데 3학년들은 새벽에 등교를 해서 자율학습 후 아침에 정상수업을 들었어요.

그래서 아침은 못 먹고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올 때가 많았죠.

이른 새벽이라 미처 점심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엄마들이 점심시간 전이면 교문 앞에 장사진을 치고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느라 북새통이었습니다.

까만 타원형 보온 도시락통 속에는 종종 엄마의 쪽지가 들어있었어요.


도시락통 윗부분의 지퍼를 열고 보면 하얀 국통 위에 딱지모양으로 접은 엄마의 쪽지.

거기엔 오늘 하루 힘내라는,

반찬이 두 가지뿐이라 미안하다는,

엄마의 육성이 고스란히 적혀 있네요.

삐뚤빼뚤 맞춤법도 문장도 맞지 않은 엄마의 글씨.

쪽지 끝에는 언제나 '딸, 사랑해.'라는 인사말이 우리 엄마의 맺음말입니다.

서투른 글자를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쓰느라 집중의 입이 나왔을 엄마를 생각하면 그 입가의 주름까지 생각납니다.

세상 잘하는 것도 없고 엄마한테 다정하지도 않은 딸이건만 그저 엄마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찰랑이는 사랑을 주셨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 양옆 주름 사이에 나를 향한 애정이 주렁주렁합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