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야,
어제는 네 마음이 좀 무거웠을 것 같아 내내 마음 쓰이더라.
엄마가 네게 투덜거리고 나서 좀 미안했어.
우리 문제는 우리 선에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어린애처럼 너에게 투정하듯 얘기하고 말이야.
그렇단다.
어른이라고 해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철딱서니로 살아가는 어른이 많아.
부모여도 너희들에게 모범적이기보다는 그냥 인생을 조금 더 겪은 세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때가 있단다.
근데 걱정하지 마.
어제 기도하고 나니까 엄마의 무겁고 우울한 마음에 지평선 하나 그은 것처럼 많이 가라앉았어. 언제고 저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위로 떠오를지는 모르지만 기도하면서 내 안에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게 단순히 아빠의 말 때문만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거지.
가장 큰 이슈는 내 속에 자존감이 많이 구겨져 있었던 거야.
내가 나를 생각할 때 스스로를 효용감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지 못했어. 그런 의식 자체가 옅어졌던 거지.
글도 제대로 안 써지고 일에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돌봄 일도 그렇고, 엄마가 가끔 하는 알바도 당당히 자존감을 갖고 하기엔 스스로에게 좋은 명분을 제시하지 못한 거지.
마침 너와 통화하는 중에 화를 참지 못하고 벌컥 나와버린 거야.
엄마가 나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너희들에게 스스로를 절제하라고 했던 게 무색해졌네.
미안.
기도하면서 이 마음의 배후와 정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어.
그게 오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란다.
나는 나와 나의 일을 사랑하지 못하고 잠시동안이지만 부끄러워했더구나.
그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데 아빠가 그까짓 일 그만둬버리라고 하는 말에 트리거가 되었지 뭐야.
사실 내가 제일 문제였지.
내가 나와 나의 일을 사랑하고 조화롭게 여기기 위해서는 마스터 마인드가 필요한 거였어.
마스터마인드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 안의 여러 마음 상태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협력을 하는 상태'를 말하는 거거든. **
그걸 알고 난 후 아빠가 어제처럼 얄밉지도 않더라. 아빠도 어떤 면으로 서툰 사람일 뿐이니까 원망스럽지가 않더라고.
사실 너도 알다시피 엄마도 그런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잖아.
정말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고통에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주어진 것을 뛰어넘었고 더 이상 그 흉터에 집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승리자들이니까. 과거의 어둠은 베이스캠프에 묻어두고서 더 위쪽 좋은 것들이 기다릴 풍경으로 담대하게 걷겠다고 결심하는 탐험가들이니까.*
엄마는 엄마도 너도 그런 탐험가라고 믿어.
그래서 아주 자주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해.
너도 지금 그렇게 걸어 나가는 사람이고.
마스터마인드가 형성되면 한 개인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과 연합을 맺고 명확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경험, 교육, 계획, 아이디어를 이들 각자로부터 얻을 수 있어.**
엄마가 요즘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작가님들과 이 마스터마인드를 실천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마음 쓰지 말라고.
네 일만 해도 정신없고 힘들 텐데 엄마가 거기다 짐 하나 더 얹어준 꼴이잖아.
도움도 못되면서 염려하게 해서 미안해, 딸.
그리고 하나 더.
너와 있던 시간이 너무 좋았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고맙다고 인사도 못했어.
그리고 용돈도.
고맙다.
엄마도 점점 나이 먹어가니까 자꾸 너와 언니한테 기대게 되는 것 같아.
아직은 우리가 너희의 울타리로 남아있고 싶은데 말이야.
자연스럽게 너네와 자리바꿈 하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도 우리 자리에서 잘 성장해 볼게.
그러니까 너도 우리 걱정하지 말고 어떤 일이든 서로 의논하고 대화하자.
힘든 시기를 인내하고 이겨내면 너도 나도 삶에 필요한 통찰력을 얻게 될 거야.
그러면 그 통찰력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가보도록 하자.
함께 했던 시간 참 즐거웠어.
자주 그런 시간 만들지 못해도 그런 시간 만들 수 있는 지금을 많이 감사해하자.
사랑해, 딸.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 건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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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정. 더 좋은 곳으로 가자. 문학동네.
** 나폴레온 힐. 결국 당신은 이길 것이다. 흐름출판
이 글은 2024년 7월에 기록한 글로 다시 재구성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