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아,
어제는 반강제로 세 모녀 단톡방 확인하라는 전화에, 뭐 하는 중간중간 참새 같은 너희들에게 소환되느라 엄마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글 쓰느라 바쁜 엄마 대신에 더 바쁜 큰딸이 동생 방 구하기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잖아.
하도 전세사기가 많다 보니 은행 업무도, 부동산 일처리도 두려워하는 동생을 대신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준 큰딸에게 엄마가 고맙다.
중간중간 임장한 집 사진을 단톡방에 보내고 월세 가격이라든지 그 지역 특성에 따른 부동산 정책까지 브리핑받느라 바쁘면서도 흐뭇해서 날씨와 마음이 비례하는 뜨끈한 하루를 보냈단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고명딸이라 자매가 없지.
할머니는 아들 셋 있는 집 늦둥이 딸이고, 엄마는 남동생만 둘이잖아. 그래서 이모 있는 아이들과 자매가 있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어.
그래도 엄마는 꽤 독립적인 성격이라 혼자서도 잘 지냈지만, 응석받이 공주과인 외할머니는 평생 여자 형제 없는 자신의 처지를 외로워하셨단다.
게다가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게 무뚝뚝하고 쌀쌀맞았으니 할머니의 외로움이 더 깊으셨을 것 같아.
그래서 너희들을 유독 사랑으로 끼고 사셨나 봐.
너희들이 서로 잘 지내서 엄만 참 든든해.
아빠엄마가 없어도 너희끼리 서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될 거라 생각하면 자매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생각하게 되거든.
클 때는 너희 둘이 성격이든, 취향이든, 삶의 방식이 너무 달라서 눈 흘긴 적도 많았어. 그땐 엄마도 속상하더라. 으레 형제는 싸우면서 큰다지만 얼굴만 보면 으르렁거리니 정말 난감했어. 부모는 다른 어떤 것보다 형제가 불화하는 걸 지켜보는 게 가장 마음 아프거든. 불화라기보다는 자매들 특유의 말싸움, 기싸움이었지만 나중에 들으니 다 큰 처자들이 몸싸움도 했었다며? 와, 진짜 너희답게 화끈하다.
호기심 많은 큰딸이 천방지축 왈가닥이고 둘째는 아량은 넓지만 걱정이 많아서 서로 부딪히는 게 좀 있었잖아. 눈만 마주치면 서로 싸우는 딸들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던 엄마도 매번 짜증깨나 냈었잖아.
그래도 엄만 믿었어.
아무리 어릴 때 싸웠어도 성장하면 자매는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너희끼리 잘 의지하며 살아가리라고!
역시 그렇더라. 동생이 처리할 일 생기면 언니가 나서 주고 언니가 어려운 일 생기면 자기 시간 빼서
조카들 돌봐주고 언니 이야기 들어주고.
곁에서 그런 모습 지켜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어렸을 때야 어쨌든지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장 깊게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건 자매고 형제며 남매인 것 같더라고.
때론 두 자매가 투닥거리면서 내가 엄마한테 선물한 물건들이 왜 동생에게 가 있느냐고 따지고, 지 언니한테 성격 이상한 사이코패스라고 놀려도 너희들은 서로를 의지해서 세상을 살아나갈 생의 동지임이 분명하니 엄마는 참 좋고 든든해.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서로를 불쌍해하고,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기 위해 마음 쓴다는 사실이 엄마에겐 구원의 약속만큼 벅차고 힘이 되는 일이란다.
지난번 아빠가 응급실에 갔을 때도 뒤늦게 연락한 엄마에게 화를 내며 부산에서 대전에서 서로 올라오겠다고 동동거려서 말리느라 애먹었잖아.
결국 너희들이 서로 연락해서 휴일 날짜까지 바꿔서 우리에게 달려왔고. 너희들이 그럴까 봐, 집이고 회사고 팽개치고 달려올까 봐 걱정돼서 연락 안 한 건데 말이지.
우린 우리대로 일상을 잘 지낼 테니 너희는 너희 일상을 잘 이어주길 바란다. 그게 아빠엄마가 바라는 거야.
딸들아,
너희도 자녀가 있고 , 또 둘째도 가정을 이루겠지만 형제가 서로 의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건 부모에겐 천국의 모습을 선물 받는 것과 같아.
그러니 지금처럼 지내렴.
지금처럼 행복하렴
하룻밤 두 자매가 알콩달콩 지내다 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겠지?
그렇게 예쁘게, 그렇게 서로를 위해주면서 나이 들도록 해라.
자매 없는 엄마는 부러움 반, 행복 반 같이 버무려 맛볼게.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