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장에서 애덤 스미스는 감정의 불규칙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사람이 하는 행위에 의해서 결과를 판단하고 그 사람의 의도나 계획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말하는 보편적인 행위준칙은 행위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결과 외에는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행위준칙에 어긋나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이 불규칙성을 띄고 그 행위를 시도할 때 신중했는지 여부로 결과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기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꽂힌 문장은 이렇다.
인간은 본래 행동하도록 창조되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처한 외부적 환경의 변화를 촉진하여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행복에 가장 유리하게 변하도록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도덕감정론/애덤스미스 P. 202
행동하도록 창조되었는데도 창조의 본유를 망각하고 지냈다는 찔림이 내게 왔다.
소극적 행위에 만족했던 과거가 떠오르며 가책이 느껴지기도 했고. 그동안은 선한 일들에 대해 직무유기의 상태였다는 자각이 든다.
관념으로만 했던 일들을 머릿속에서 꺼내 행동으로 옮겨보는 중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한 마음으로 대하기.
한번 더 웃고 인정해 주기.
선한 행위는 신속하게 하고 악의 감정은 계속 신중하고 느리게.
지금 부여된 역할 잘하기.
내 마음 잘 들여다보고 관찰하기.
상대에게 솔직하기.
잘못을 바로 인정하기.
적다 보니 꽤 여러 일들을 잘게 자주 행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조물주가 우리에게 준 건 자신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정력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자기 자신과 타인도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만큼 나의 존재 목적은 나 자신과 타인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임을.
에머슨도 우리가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돈이 드는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에 진 부채를 변제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공동으로 자신의 역할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먹여 살리는 생계 이상의 더 큰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났으면 부자가 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에머슨도 그렇고 몽테뉴도 실증주의자였다. 자신들이 세상에 남겨야 할 것들을 행동으로 이행하고 남긴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니 그들이 말한 것을 지키는 것이 옳겠지.
인간 감정의 불규칙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자연의 모든 부분을 살펴보면 조물주의 섭리가 나타나 있다.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 속에서도 신의 지혜와 인자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내 경우 그동안의 실수와 실패 안에서도 커다란 신의 지혜와 섭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고통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땐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 정도의 시간과 거리가 생기면 보인다.
적재적소에 만나게 하는 사람들,
내가 계획하지 않았지만 어디론가 이끌렸던 우연들,
여러 신기한 경험 안에서 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생활에 적용할 내용도 많고 비교적 쏙쏙 이해되기도 한다.
살짝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