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바이저에게 질문을 받았다.
멍~했다.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은하수가 흩뿌려진 하늘을 목을 꺾고 바라보듯
입을 벌리고 생각의 구덩이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그동안 맘에만 잠시 머무르다 민들레 씨앗처럼 날아가버린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소풍가방을 싸놓고 열어보고 또다시 살펴보고 챙겨놓은 것들을 거듭거듭 챙기는 아이마냥 자꾸 생각해 본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계속 생각하다가 생각이 안 나면 억울할 것 같아서 그냥 생각을 놓아버린다.
그래, 오늘 안에 한 가지라도 생각나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러면 된다.
어쨌든 기어이 찾아보리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내는 게 이리 즐거울 일이야?
그때 화단 곁을 지나면서 반짝~!!
밑에 층 할머니가 화분 속에 오골오골 심은 시금치들.
시장에 다발로 쌓인 시금치를 떠올리고 한번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을 떠올렸다.
눈으로만 보고 '이럴 것이다' 짐작했던 것.
생각했던 것보다 시금치는 도톰했고 적당한 수분을 머금고 있다. 윤기 흐르는 잎사귀 표면이 갈라진 강줄기 같기도 하고 잎맥들이 뻗어가는 방향이 모두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 시금치가 시금치로 완성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매발톱꽃? 갯기름나물?
이름은 모르지만 얘도 자신의 존재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보라색 꽃이 지고도 잎사귀는 여전하다.
세 갈래 잎사귀의 앞면은 보드라웠지만 뒷면은 건조한 소년의 발뒤꿈치처럼 강단 있는 거침이 느껴진다.
꽃잎이 달려있을 땐 자못 흐드러지게 예뻤을 모습을 짐작해 본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은 버석거리고 끝이 건조하게 말라서 잎사귀나 봉오리 끝으로 가면 거친 느낌이 든다.
반면에 봉오리의 둥근 부분은 남은 수분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듯 잔뜩 움켜쥔 모습이라 앙증맞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나도 이 겨울 무엇을 응축시켜 내 안에 품어야 할까?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이 아이들을 손끝으로나마 쓰다듬으며 그들의 언어를 들어본 기분이다.
지나온 계절의 에너지를 모아 또다시 피어날 날들을 준비하는 네가 떠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보여도 아주 간 것은 아니다.
지켜볼 누군가의 눈길과 귀애하는 마음을 남겨둔 것이다.
아들을 안고 깡마른 등과 피부를 쓰다듬어 본다.
허리부터 등위로 동그란 척추뼈를 따라가며 쓰다듬는다. 피부 안에 어떤 지방도 허용하지 않은 듯 가죽과 뼈만 느껴진다. 살아있음. 손의 감각이 확인하는 살아있음.
이 피부세포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빨리 낡고 빠른 속도로 새것으로 대체된다지?
지금 내 손바닥이 지나간 피부는 며칠이 지나면 새것으로 대체되어 있겠지?
우리 존재가 매일 새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감각이 매 순간 달라지고 새로워지는 독보적인 존재.
인류의 긴 진화기간 동안 일란성쌍생아 이외에 단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나와 같은 사람이 태어날 확률은 없다*고 한다.
오늘 내가 만져본 생명들의 진화와 생성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