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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Jun 14. 2022

그의 목소리를 찾아 하늘로 떠난다

은하수 여행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소리를 더 깊이 듣고 싶어 나를 보호해주던 우산을 떨구고 온몸으로 그를 맞이한다. 이마로 툭, 눈으로 툭, 입으로 툭, 코로 툭, 볼로 툭, 그렇게 나의 이목구비를 향해 그는 두드린다. 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는 내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를 더 느끼고 싶은 마음에 발에 온 힘을 주고 난 뒤 힘차게 하늘로 띄운다. 



혹여나 땅으로 떨어질까 싶어, 고개만 하늘로 향한 채 온몸에 힘을 뺀다. 간만에 끼고 나온 안경은 나의 동공을 보호해주고, 쌀쌀해질까 싶어 걸치고 나온 바람막이는 우비가 되어준다. 발에 미끌린 신발은 땅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그 신발은 바람에 의해 다른 곳에 고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한참을 떠오르다 보니, 세상이 멈춘 것 마냥 비 역시 특정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늘의 세계는 모든 것이 커 보이나 보다. 땅에서는 그리 작게 보이던 구름도, 빗줄기도, 위로 올라오니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손으로 잡히지 않던 빗줄기는 내가 건너갈 수 있는 계단 모양이 되었다. 난 빗줄기를 계단 삼아 상하좌우를 돌아다닌다. 어릴 때 구름에 한 번쯤 누워보고 싶었는데, 혹여나 텅 비어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했었는데 마침 잘 됐다. 가장 두꺼운 구름을 향해 걸어간다. 겁나는 마음에 손을 구름 안에 넣어본다.


쑤욱


이런 젠장

과학시간에 배우던 수증기로 이루어져 있는 게 맞다. 고로 난 구름에 누울 수 없는 거다. 이건 사기가 아닌가. 빗줄기는 계단으로 변했는데, 구름은 왜 여전히 수증기란 말인가. 아, 그래서 구름은 포근하고 빗줄기는 따갑다고 하는 건가. 구름은 거대한 산마저도 투명인간처럼 스쳐 지나가는 있는 듯 없는 존재인데, 빗줄기는 우리의 머리와 얼굴을 공격하는 아픈 존재라서? 그렇다면 납득이 된다. 나중에 땅의 세계로 내려가면 솜사탕이나 먹어야겠다. 자, 구름은 패스하고 더 위로 올라가 보자.


아니 아까는 몸이 떠올랐는데 왜 여기서는 내가 올라가야만 하는가.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위로 몸을 띄웠는데 목소리를 듣기는커녕 이상한 깨달음만 얻어간다. 위로 올라가다 보니 슬슬 덥다. 온갖 비를 맞던 나의 몸은 말라가고 슬슬 덥기 시작한다. 어디든 빨리 눕고 싶다. 저 위에 평평한데 푸근해 보이는 공간이라 해야, 입구 같은 곳이 보인다. 이놈의 빗줄기는 왜 이리 딱딱한가. 좀 부드러울 수 없는가. 아, 나란 인간 참 변덕스럽다. 아까는 구름이 형체가 없다고 투덜대놓고, 지금은 빗줄기가 형제가 뚜렷하다고 투덜댄다. 인간은 정말이지 참 모순적인 존재다. 그렇게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채 위로 올라간다.


숨을 고르며 오르니 신기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분명 바다인데 뚫려있는 바다다. 그리고 천장은 옅은 하늘색으로 가득하다. 아, 저건가 보다. 더워지기 시작한 이유가. 태양이 대놓고 공격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너무 무섭게 느껴지는데 편하게 쉬는 방법이 없을까. 이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아니 어두운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저 태양이 저 멀찍이 떨어졌으면 좋겠다. 문득 반대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소심하게 바다에 몸을 던져 헤엄쳐서 간다. 아, 무섭다. 정말 무섭다. 눈도 없는 존재인데 나를 보면서 따라오는 느낌이다. 태양이 저렇게 무서운 존재였던가. 가까이 있으니 무섭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 밑에서 헤엄치고 있는 느낌이랄까. 열심히 헤엄쳐서 반대편으로 가니 웬 스위치가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눌러본다. 


딸깍

밝은 하늘을 어둔 하늘이 밀어낸다. 그것도 아주 느린 속도로. 어둠이 오고 있음을 눈치챈 태양은 나를 향해 뜨거운 기운을 내뿜다 밤을 이길 수 없다는 듯이 후퇴한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빛은 어둠을 이길 수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저 에너지를 모두 써 버렸기에 후퇴해버린 것일까.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 존재인데 빛이라는 존재도 소진되는 걸까. 아니면 우중충한 어둠을 느끼기 싫어 피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내가 드디어 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바다에 몸을 띄워 쉴 틈 없이 빛나는 별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때 수없이 많은 별똥별이 떨어진다. 


비, 바다, 밤, 하늘, 별.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속 깊이 누려본다.



이후 이야기

https://brunch.co.kr/@geul-kangs/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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